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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Y Mar 02. 2024

선택의 즐거움

#14

팀동료가 출근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굿바이 인사를 위해 팀원들이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다. 가끔 회사에서 외식할 때 그 동료는 다른 사람들이 고른 걸 먹어왔기에, 이번에는 본인이 먹고 싶은 걸 먹게 해주고 싶었다. 그는 자신이 배려한 게 아니라 정말 뭘 먹든 상관이 없었던 거였다고 했지만, 메뉴, 장소, 방식 어떤 것도 상관하지 않고 고를 수 있게 해 주었다.

“어떤 걸 골라도 상관없어요. 왜냐하면 다 맛있을 거거든요.”

난 혹여 가질 수 있는 부담을 내려줄 수 있는 한마디도 얹어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일본가정식당을 간 후 대기줄이 길면 근처 중국집으로, 거기도 자리가 없으면 떡볶이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일식당은 나름 유명한 동네맛집이었고 조금 일찍 도착했음에도 20분 대기를 해야 했다. 우리는 원래 계획대로 대기하지 않고 근처 중식당으로 향했다. 그는 “저는 먹는 거를 특별히 가리거나 하지 않는데, 단 하나, 기다리지 않는 원칙이 있습니다.”했다. 그의 표정과 말투를 보니, 대기하지 않고 다른 식당에 가는 거에 만족한 듯 보였다. 중식당은 비어있었고, 우리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하나씩 원하는 메뉴를 골랐다. 짜장 둘, 잡채밥 하나. 그리고 그가 좋아한다는 깐쇼새우와 탕수육도 주문했다. 요리가 먼저 나왔고 우리는 식사를 시작했다.


식사를 하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선택의 즐거움을 새삼 느꼈던 일이 생각났다. 그건 작년에 다녀온 안동여행이었다.      

난 여행을 그리 많이 다니지 않고 즐기는 편이 아니다. 막상 여행을 가면 재밌어하지만, 먼저 어디를 가고 싶다 해서 가는 일은 거의 없는 거 같다. 그래서 친구가 여행을 가자고 했을 때는 ‘좋아’라며 잘 따가라는 편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어디에도 가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고, 여행을 가면 내가 모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동은 내가 한동안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고, 나의 결정으로 가게 되었다. 가고 싶었지만 사실 안동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기에, 당일 검색과 친구의 의견을 조합하며 1박 2일을 여행했다. 예전처럼 유명 관광지를 다니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안동의 마늘갈비, 간고등어, 참마 수제돈가스, 안동찜닭, 카페음료는  맛있었고, 하회마을, 한옥카페, 맘모스베이커리, 예끼마을, 도산서원, 월영교는 새롭고 즐거웠다. 그런데 예전과 비슷한 여행방식이고 예전의 여행도 재밌었지만,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즐거움이 생생했고, 여행과정이 그저 재미있었다.      


난 그때 다시 느꼈던 거 같다. 선택의 즐거움을.

다른 이가 준비한 것을 즐기는 즐거움도 있지만, 내가 선택한 것을 통해 느끼는 즐거움은 또 다른 종류인 거 같다. 그리고 그 경험은 더 밀착되고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또한 혹여 그 결과물이 퍽 괜찮지 않더라도, 선택의 결과를 바라보는 즐거움과 경험을 얻게 되는 거 같다. 그리고 그것은 선택하고 경험한 사람들만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난 선택권을 주는 걸 배려의 한 방식으로 삼은 것 같다. 작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메뉴를 고르는 것, 가게를 가는 것, 선물을 먼저 고르게 하는 것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퇴사하는 동료를 위해 식사를 함께 하는 것도 좋지만, 그에 더해 선택의 기쁨도 선물로 주고 싶었던 거 같다.      


함께 먹은 음식은 역시 맛있었다. 그곳도 동네맛집이었고, 검증된 메뉴들이었다. 우리는 음식을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그릇을 비웠다. 그렇게 우리는 굿바이 식사를 마쳤다. 어찌 보면 우리가 늘 먹던 것이고 아는 맛이라 별다를 것 없는 식사였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가 한 선택이 회사 마지막 날인 그에게 식사 이상의 즐거움을 주었기를, 그래서 그 식사가 조금은 특별했기를 바란다. 그리고 인생에서도 또한 그러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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