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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Y Mar 01. 2024

우쭐하면 다친다

#13

십여 년 전, 멀리 사는 사촌언니의 결혼식에 가게 되었다. 다시 학생이 되어 공부하고 있던 나는,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정장 원피스를 입고, 화장을 하게 되었다. 버스와 전철을 한참을 타고 가다 결혼식장 근처에 도착했고, 버스에서 내려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결혼식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당시 학업과 대인관계로 인해 한참 작아져 있던 나는, 오랜만에 꾸며본 것만으로도 길에 지나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이쁘다고 생각할 거 같다는 말도 안 되는 자기만족의 경지까지 이르렀었다. 그렇게 우쭐한 마음으로 한 5초를 걸었을까,

‘철퍼덕’

보도블록에 구두가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만화주인공들이 맨홀에 빠져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속도로 엎어진 거 같다.     


놀랐다 그리고 아팠다. 스타킹 신은 맨다리와 손이 거친 보도블록에 인정사정없이 부딪혔고, 타는 듯한 아픔이 전해졌다. 뽐내고 싶던 정장은 창피함을 더해주는 요소가 되었고, 아픈 몸을 엉거주춤 추스르며 할 수 있는 한 빠르게 일어났다. ‘나를 봐요’란 마음은, ‘못 본 척 어서 그냥 지나가요’라는 마음으로 바뀌었고, 난 다시 아무렇지 않은 듯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몸도 아팠지만 마음도 아팠다.

잠시나마 나에 대한 자신감을 채워가려는 참이었는데, 무방비상태의 내 마음도 추락하듯 넘어진 것이다.     

아픔과 창피함에 상처를 제대로 볼 여유가 없었고, 난 아무렇지 않은 듯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걸음을 걷는데 종아리가 간지러웠다. 뭔가 하며 다리를 보니, 스타킹은 찢어지고, 양 무릎에선 시뻘건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난 부끄러움에 가방으로 무릎을 가리고 절뚝이며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 200m 정도 걷자 정형외과가 나왔고, 난 무사히 응급처치를 받고 늦지 않게 결혼식에 참여할 수 있었다.     


무릎의 상처는 몆 주의 시간을 지나며 아물었지만, 당시의 사건이 나에게 준 심적인 충격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던 거 같다. 내내 쭈그러져 생활하다가 겨우 5초 정도 우쭐했던 거뿐인데, 그게 그렇게 잘못인 건가, 내 인생에는 그것조차 허락이 되지 않는 건가 싶었다. 나는 그때를 곱씹으며, 내가 뭘 잘못한 건가를 생각했다. 그 5초의 짧은 시간 동안 내가 다른 사람을 내려다보았나, 외모로 잠시나마 으쓱하려는 가벼운 태도의 잘못인가(실제 외모가 그렇다는 건 아님을 밝혀둔다)하는 수없이 생각했다. 나도 남들처럼 자신감 있게 으쓱하며 살고 싶은데 난 그러면 안 되는 사람인 건가, 남들은 그렇게 사는데 왜 나한테만 이러는 건가, 난 자신감을 가지면 안 좋은 일이 생기나 보다는, 안드로메다로 향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5초의 넘어짐으로 난 내 생의 전반에 대한 자괴감까지 느끼게 된 거다.


어쩌면 단순히 길 가다 넘어진 일일 수 있지만, 그렇게 사건은 내 마음에 강렬히 남게 되었다.

    

 그 후, 섣불리 나서려 하고 잘 보이고 싶은 순간이 오면, 나도 모르게 그 순간이 떠올랐고, 그런 때면 난 잠잠히 ‘아니다’라며 한발 물러서며 조심하게 되었다. 뜨거운 거에 덴 사람이 조심하는 것처럼 말이다. 난 그때 ‘우쭐하면 다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던 거다.     


그렇게 십수 년이 지나며 그 사건은 내 안에서 숙성되어 갔다. 당시에는 그저 원망스럽고 괴로운 사건이었지만, 잘 보이고 싶고 뽐내고 싶어 하는 순간 조금은 겸손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브레이크 장치가 되어갔다. 물론, 내가 겸손한 고매한 인격이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전보다 나의 가벼움을 조심할 수 있게 해주는 경각심을 조금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사건이 없었다면 어땠을까도 생각해 본다.

어쩌면 자신감에 차있는 사람이 되어있을 수도 있고, 유치하게 뽐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다. 또 다른 경험을 통해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을지도 모르고, 그런 상황에 대해 인식조차 못하고 사는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일은 일어났고,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행동하는 건 내게 맞지 않고 의미도 없으며, 상대방을 내 만족을 위한 대상으로 취급하면 안 된다는 걸 생각하게 해 준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 ‘겸손’이라는 브레이크장치 역할을 하고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날 때, 당시에 일어난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는 거 같다.

좋고 행복한 일보다는 힘들고 아픈 일은 받아들이기 어려워 더 그런 거 같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며 당시 힘들고 아픈 일들이 좀 더 나은 모습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는 것을 경험하기도 한다. 당시 일로 나의 몸과 마음은 다치고 아팠지만, 십수 년이 지난 지금 내 영혼에는 괜찮은 처방이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지금도 가끔 약속이 있어 예쁘게 입고 나가면 기분 좋게 거리를 걷는다. 하지만 그 오래전 ‘나를 봐요’라 외치는 마음이 아니고, 나 스스로 내 모습에 만족하며 고개 숙이는 마음으로 걸어간다. 언제든 넘어질 수 있음을 기억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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