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HY Jun 08. 2024

0602 주차하기

2024년 여름일기

선생님댁에 갔다가 문구점에 들러 몇 가지 용품을 사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 평소처럼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 '삐빅' 문을 잠그고 차를 돌아봤는데, 옆차 범퍼에 찍힌 자국이 보였다.


'혹시 내가 주차하다 그런 건가?'

초보에, 후방카메라 없이 주차하는 나는 순간 불안해졌다.


평소처럼 주차했고 경고음도 부딪힐만한 건 아니었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불안감이 올라왔다.

'경고음 타이밍보다 늦게 브레이크를 밟은 걸까? 부딪힌걸 내가 못 느낀 걸까?'

내차의 뒤 범퍼를 확인하기로 했다. 쭈그려 앉아 자세히 범퍼를 보는데, 다행히 부딪힌 자국도 페인트 흔적도 없었다.

'아, 다행이다. 아니구나'

그래도 혹시 부딪힌 게 맞다면 연락이 오겠지 생각하며, 불안함을 주차장 한켠에 두고 집으로 올라왔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놀란 나는 주차상황을 계속 복기하기 시작했고,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찜찜함이 더해졌고 수많은 상황이 떠올랐다. 실은 부딪힌 걸 느꼈는데 무섭고 당황해서 아니라고 생각하려는 게 아닐까란 생각까지 들었다. 불안함도 짜치는 내 모습을 보는 것도 힘들었다. 이 상태로 가만히 기다릴 수 없었다. 난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뭘 어떻게 할지는 모르지만 가면 알게 되겠지.'


주차장계단을 내려가자, 영화 '관상'에서 수양대군이 등장하는 것처럼 내차와 상대의 차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난 제법 비장한 마음으로 검증을 위해 현장으로 다가갔다.

상대차의 상흔을 다시 확인 후, 내 차 윗범퍼의 높이를 쟀다. 범퍼와 상대차의 흔적의 위치가 같다면, 차들이 부딪혔다는 가능성을 염두하고 대처를 해야 할 것이었다.

조심조심 옆차의 상처의 높이와 비교해 보았다.

두근두근


... 아니었다!


범퍼보다 높은 곳에 스크래치가 있었다. 내차로는 낼 수 없는 위치였다.

아아... 마음속을 무겁게 누르던 수톤의 불안감과 부담감이 한순간에 연기처럼 사라졌다.


다시 보니 그 스크래치는 단단한 것을 긁어 페인트가 뭉쳐 벗겨진 흔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날 수 있는 형태가 아니었다. 심지어 벗겨진 방향도, 부딪혔다 하더라도 맞지 않는 반대 방향이었다.

경험이 많았다면 흔적을 보기만 해도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을 텐데. 아직 난 겁 많고 무서운 게 많은 생초보였다. 난 초식동물의 두려움과 내가 한 게 아닌데 덮어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겹쳐져 제대로 상황을 보지 못했던 거 같다. 그래서 어쩌면 찜찜함을 안고 그 자리를 피한 거처럼 된 게 아닐까 싶었다. 제대로 대처할 수 있게 해주는 이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오늘 든 생각.

혹 찜찜한 상황이 있다면 우선 확인하기. 두려울 수 있지만 말이다. 그게 나를 심연 깊은 곳의 불안함으로 데려가지 않게 하는 방법일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 믿고 의지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이가 있으면 좋겠구나.


앞으로 좀 더 안전거리를 더 유지해야겠다. 초보가 가장 조심해야 한다는 1년이 다가오고 있으니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0601 여름일기 시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