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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Y Jun 16. 2024

0612 대부도

2024년 여름일기

2024.06.12.(수) 흐리고 맑음.


친구와 대부도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오후 반차를 쓰고 친구네로 출발. 오전에 갑작스러운 일이 생겨 마음이 불편했지만, ‘그래도 오늘은 휴가를 낸 날이니’ 하며 나왔다. 친구 집에서 친구와 강아지를 픽업하고 대부도로 향했다.     


늦은 점심으로 대부도에서 바지락 칼국수를 먹었는데, 국물이 진하고 수프맛이 났다. 칼국수가 거기서 거기지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 가게에서는 이걸 먹어야 한다며 서로 맛집 인정. 추천한 친구도 맛있음에 안심하고 뿌듯해하는 거 같아 내 마음도 좋았다.     


식사 후에 바로 옆 동남아 휴양지 느낌의 커피숍에 갔다. 이 친구와 두 번째 방문이었다. 카페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한껏 꾸미고 사진을 찍는 20대 아가씨들, 3대가 같이 와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가족들, 가만히 노트북을 하는 사람, 라이딩 복장을 하고 카페 사진을 찍는 커플, 강아지 3마리를 데리고 온 커플, 조금 큰 소리로 들뜬 듯 이야기하는 50대 남자분들. 20명이 안 되는 거 같았다. 비어있는 수백 개의 의자들을 보자 주말에 꽉 차있을 모습이 그려져, 평일 낮시간에 와 다행이다 싶었다.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는데, 16살 요크셔인 ‘아지’는 피곤한지 의자에 누워 계속 잠만 잤다. 사람도 그렇고 강아지도 나이가 들면 모든 게 힘들고 피곤해지는 거 같다. 눈도 귀도 잘 안 들리는데 차까지 탔으니 더 그러겠지 싶었다. 그런 모습을 보는 친구의 마음도 좋지 않을 거 같았다. 아지에게 바닷바람 쐬여 주자고 온 것도 있는데 무리한 건가 싶어 미안하기도 안쓰럽기도 했다.     


친구와 이야기하며 주변을 돌아보면서, 이 사람들은 평일 낮에 어떻게 오게 된 사람들인가 싶었다. 난 1년 17개의 연차에서 5시간을 내고 겨우 나왔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저 여유롭게 그 시간에 존재하는 거 같았다. 난 내일 출근해야 하고 오전에 갑자기 생긴 일로 마음이 불편했던 터인지 약간 긴장돼 있었는데 말이다.


내가 혹 쉬는 것도 일처럼 하는 건가 싶었다. 분명 지금 평일 낮에 시간을 보내는데도 느껴지는 긴장감과 불안함은 무얼까. 일로 인한 긴장감이 길어져 이제 쉬는 게 어떤 건지, 진짜 쉬는 상태가 어떤 건지도 잊어버린 건가. 어쩌면, 이 휴식은 정말 잠깐이고 내일 다시 원치 않은 일을 하러 가야 한다는 것이 나를 그렇게 만드는 거 같기도. 난 긴장을 풀고 쉬는데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라, 중간중간 이렇게 쉬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 거 같기도 하다. ‘온전히 쉬고 싶다. 여행도 온전히 하고 싶다. 온전히. 모든 것을 하면 좋겠다. 온전히 살면 좋겠다.’ 오늘도 그런 생각이 든다.     


집에 돌아오는 길, 요새 누적된 피로 때문이었는지 운전하며 아찔한 순간이 있었다. 눈에 힘을 주고 중간중간 강아지를 쓰다듬어 가며 다행히 무사 귀환하였다. 친구는 자기가 운전할 걸 그랬다며 미안해했다. 참 착한 친구. 매번 그 친구의 차를 타고 다녔고 오늘이 나의 첫 드라이빙이었는데 말이다. 운전하면서 친구들이 얼마나 나를 배려해 줬는지 알게 된다. 오늘 나도 그 친구에게 그런 배려를 해주었을까. 그랬다면 좋겠다. 그러면 오늘의 일정에 조금은 더 의미가 있었을 거 같다.     


집에 돌아와 영화모임을 하는 친구와 함께 ‘레이디 버드’ 영화를 보았다. 감상을 이야기하고 나니 11시. 오늘은 그냥 자기로 했다. 총 4시간의 운전이 만만치 않았던 거 같다. 평일 한가운데에 이런 여행이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마음먹고 중간중간 시간을 내야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거 같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흘러가버리고 마는 날이 되어버릴 수 있으니.

바빴지만 그래도 오늘 친구와 대부도의 순간을 만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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