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HY Jun 16. 2024

0614 존 오브 인터레스트

2024년 여름일기

친구의 강력 추천으로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급 보게 되었다. 언젠가 봐야지 했었는데, 워낙 경력하게 추천해서 오늘 바로 보기로 했다.


동네 메가박스에서의 상영시간은 밤 10시 35분. 저녁 먹고 쉬다가 영화관으로 출발했다. 밤이라 영화관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얼마 전 개봉한 ‘인사이드 아웃’, ‘퓨리오사’도 상영 중이었다. 이것도 보러 와야지. 포스터에 홍보 중인 개봉예정 ‘콰이어트 플레이스’도 궁금해졌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관객은 나까지 5명. 이 시간에 영화를 보러 오다니. 찐 영화팬인 듯. 4명은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커플과 장년 부부 커플이었는데, 서로 취향이 맞아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나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살짝 스며들기도 했다. 앉아 기다리는데 점점 졸음이 오는 게 살짝 걱정되었다. 하지만, 영화는 시작.     


...     


평대로 엄청난 영화를 본 거 같았다.

직접 보여주지 않고, 슬쩍 스며들 듯 보여주는 저편과 의식들.

그를 통해 마주하는 불편한 인간의 모습들.

 

...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 분명 ‘아니다’라는 걸 알고 있지만, 안온한 삶을 위해 그저 ‘직업’이다, 다들 이렇게 산다, 평범한 일이다 라며 스스로를 설득하고 넘어가 버리는 모습들. 형태는 다르나 나에게도 일어나는 일인 거 같다.


수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 일이 나에게 맞지 않은 거 같은데 그래도 남들이 말하는 일상을 살 수 있게 해 주니까, 월급이 나오고 생활하게 해 주니까, 다른 대안이 당장 보이지 않으니까, 하며 많은 것을 외면하는 내 모습. 점점 뜨거워지는 물에 있는 개구리 같은. 진짜 봐야 할 것을 외면하고, 벽을 치고 애써 꽃으로 가리고, 평온한 일상을 사는 거처럼 생활하며, 이 삶을 정당화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자신과 인생에 대한 외면이자 학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 남들이 보는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벽 뒤에서 고통받고 죽어가는 영혼을 외면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일하며 다른 이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해야 하지만, 어쩌면 무감해져야 있을 수 있는 곳이라 더 그런지 모른다. 모든 것을 느끼면 힘들고 아프기에, 그것을 덜 느끼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감정을 분리하고 공감을 덜 하게 되는 거 같다.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이제 그런 마음마저 퇴색되어 사라지는 거 같이 느껴졌다.

  

다른 이들이 하는 행동이 불편하게 느껴지고 그건 아닌 거 같다 생각하지만, 있다 보면 나도 그렇게 되는 것들. 나도 모르는 사이 ‘그렇게 해도 되나 보다’ 하게 되고, 그래야 일이 편히 진행되니 그리하게 되고, 그렇게 해야 그 안에 있을 수 있으니 그리하며, 동화되어 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나도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데, 애써 아직 아니다 하고 외면하며 지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오늘 지난주 뵈었던 분이 사망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갑작스러워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주 그분이 많이 불안해 보였기에, 그게 사실이라는 건 의심되지는 않았다. 객관적으로 보면 내가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정말 스스로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까? 좀 더 강력히 입원을 권유했더라면? 며칠 아니 몇 시간 먼저 전화했더라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났더라면? 물론 생과 사는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는 건 안다. 그래도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거 같다. 그러다, 결국 제일 힘든 건 그 가족일 테니, 더 깊이 들어가 스스로를 탓하려는 오만을 멈추었다.


누군가의 힘듦을 계속 봐야 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다른 이는 아닐지 모르나 최소 나에게는 그렇다. 내가 불안정해서 그런 모습을 보는 게 힘든 것일 수도, 혹은 내가 다른 이의 감정이 크게 다가와 그런 것일 수도, 혹은 나중에 그 감정이 생생히 느껴질까 두려운 것일 수도 있다.

이유는 모르나, 그런 이유로 그들을 마주하는 게 두렵기도 하다. 그래서 그분들이 잘 있다고 하면 그저 감사하다. 안부를 묻고 마주하는 게 마치 승률을 알 수 없는 도박의 결과를 보는 거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게 아무렇지 않고 오히려 좋은 사람도 있을 텐데, 나는 아닌 거 같다. 이런 상황에 나를 노출시키는 게 학대가 아닌가란 생각이 들기도. 물론 내가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이러면 안 되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마음이 다시 복잡해졌다.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한 영화였다. 간단한 영화평을 듣고,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했었는데, 정말 내가 마주하고 싶지 않던 것들을 다시 마주하게 하는 영화였다. 어쩌면 기대했던 메시지를 주었던 영화. 당분간 이 영화가 생각날 거 같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작가의 이전글 0613 나에겐 어려운 세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