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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Y Jun 16. 2024

0615 연천대신 동네 여행

2024년 여름일기

2024.06.15.(토) 맑음


오늘은 엄마와 연천에 가기로 했다가 취소된 날. 영화모임이 있는 날이라 거기 갈까 했지만, 왠지 내키지 않았다.

요즘 난 집에서 밥만 먹고 잠만 자고, 저녁에는 내 시간을 보낸다고 방에만 있었더랬다. 계속 엄마 혼자 있게 해서 힘이 없었나 싶어 마음이 쓰였다. 엄마가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했는데 혼자 나가 노는 게 마음에도 걸리고. 그래서, 오늘은 엄마와 시간을 보내기로.


여행은 힘들어도 가볍게 나가서 점심을 먹는 건 괜찮을 거 같아 전에 가보자고 했던 음식점에 가기로 했다.

도착한 곳은 몇 년 전 생긴 추어탕집. 넓은 홀에 수십 개의 테이블이 있었는데 손님은 우리를 포함해 몇 없었다. 신중히 메뉴를 보고 추어탕 1인분과 해물영양솥밥 1인분을 주문했다.


새로운 식당에서 음식을 먹는 건 재미있다. 놀이공원에서 놀이기구를 타는 느낌이랄까. 이 놀이기구는 어떤 느낌일까 하며 두근두근 기다렸다가 타는 것과, 새로 생긴 음식점에서 여긴 어떤 맛일까 두근두근 기다리고 먹는 게 나에겐 비슷하다. 일상의 놀이공원.


기다리던 음식이 나왔다. 추어탕은 털래기 어죽 같은 스타일이었는데, 엄마 입맛에는 좀 짜고 매웠다. 엄마가 그런 분이 아닌데 종업원에게 좀 짜고 맵다고 말하는 걸 보고, 엄마도 나이 들어 이제 그런 말을 하는구나 싶기도 했다. 추어탕을 시작으로 밑반찬들과 해물영양솥밥을 먹어갔다.


밥을 먹는데 창밖의 녹음이 여행 느낌을 나게 해주었다. 별거 없이 조용히 식당에서 편안히 밥을 먹을 수 있는 거도 참 좋았다. 이동할 수 있는 차, 먹으러 가자고 하고 돈을 낼 수 있는 상황, 그저 맘 편히 밥을 먹을 수 있는 이 시간이 평안했다. 아마 행복이 이런 느낌인 거겠지?


밥을 다 먹고 근처 농산물도매시장에 들르기로 했다. 특별히 사고 싶은 건 없지만, 야채를 좋아하고 싸게 사는 걸 좋아하는 엄마가 좋아할 거 같았다. 집 근처에 이런 곳이 있고, 이 동네 살기 좋구나 싶었다.


우리는 과일동으로 가기로 했다. 난 도매시장에서 채소동 보다 과일동을 좋아한다. 알록달록 이쁘기도 하고 바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걸 살 수 있으니까. 그리고 오래전 모든 가족이 함께 가서 복숭아를 산 기억이 남아있어 그런 거도 같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 과일동에 도착. 수박, 체리, 참외, 복숭아, 자두 같은 수많은 과일이 알록달록 시선을 사로잡고 기분을 좋게 해 주었다. 북적북적,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가득이었다.

신비복숭아를 샀는데 바로 옆 가게에서 더 많이 주는 걸 보고 ‘역시 돌아보고 사야 해’라며 아쉬워하기도, 요즘 비싸다는 사과를 1만 원에 7개를 사며 좋아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그 아쉬움이 덜어지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제철 맞은 오디 1Kg을 8,000원에 구매하고 나왔다.

예상치 못한 구매를 했지만, 어쨌거나 저쨌거나 도매시장은 다른 곳보다는 싸게 샀다는 뿌듯함도 덤으로 얻는 충동구매 면죄부 장소이다.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신비복숭아 하나를 씻어먹은 다음 철퍼덕 침대에 누웠다. 차를 타서 그런가 여행을 다녀온 거 같은 피로함이 있었다.

그렇게 5분 되었을까, 엄마가 ‘당근’에서 무료 나눔으로 나온 김치를 가지러 갈 수 있겠느냐 했다. 다시 옷을 갈아입고 아까 다녀온 도매시장 근처 동네로 출발. 우리는 무료 나눔에 당첨된 5명 중에 처음 도착했고, 묵은 김치를 한가득 들고 집에 돌아왔다.

엄마는 내가 있어서 다녀올 수 있었다며, 마침 묵은 김치가 떨어졌는데 너무 잘 되었다며 내내 좋아하셨다. 목소리에도 힘이 느껴졌다.


그때 ‘그래, 어디 멀리 가지 않아도 이렇게 좋아하는 시간을 갖는 게 중요한 거지. 그게 진짜 여행이지.’ 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엄마의 컨디션 난조로 인한 불안함과 연천여행을 가지 못한 아쉬움이 덜어졌다.

    

멀리 여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새로운 경험과 즐거움도 있지만 일상의 즐거움도 여행만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채움과 즐거움을 주는 거 같다.


오늘은 연천대신 동네 여행을 다녀온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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