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여름일기
2024.06.22.(토) 비
친구와 오늘 근교로 놀러 가기로 했다. 처음에는 아침고요수목원을 가려다가 너무 멀 거 같아 이틀 전 파주의 벽촌리수목원으로 행선지를 변경했다.
서울 친구네 집에 가 친구차를 타고 파주로 출발. 한 30분 정도 달렸을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수목원에서 제대로 구경하기 힘들 게 뻔했다. 우리는 일정을 변경하기로 했다. 차를 세우고 여기가 어디고 갈만한 데가 뭐가 있는지 검색을 시작했다. 그런데 마침 바로 옆에 고양 스타필드가 있었다. 비 오는 날 실내에서 보내기 딱 좋은 곳이었다. '이것은 데스티니인가'하며 기쁜 맘으로 스타필드로 향했다.
10시 조금 넘어 스타필드에 도착. 사람은 아직 많지 않았다. 오후 2:30분에 시작하는 '하이재킹' 영화를 예매하고 구경하기 시작했다. 건물은 전체가 쇼핑센터였다. 웬만한 브랜드와 처음 보는 가게로 꽉 차 있었다. 신기하게도 반려견 동반이 가능한 곳이라 여기저기 강아지들이 있었고, 유모차처럼 보이는 것에는 거의 개들이 앉아있었다. 이런 곳은 처음 보았다. 반려견 동반 가능한 쇼핑몰이 있는지도 몰랐기에 더 신기했다. 개들은 이곳을 어떻게 느낄지 모르지만, 주인들은 만족스럽겠다 싶었다. 나 역시 실내에서 여러 강아지들을 보며 중간중간 즐거웠다.
천천히 가게를 돌며 구경하고,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 전에 일찍 점심을 먹었다. 친구는 이천쌀밥 한상, 나는 대만식 우육면 세트를 선택. 새로운 걸 먹고 싶어 대만식 우육면을 고르긴 했지만 향신료가 강해 입맛에 맞지 않을까 걱정도 됐었는데, 웬걸. 정말 맛있었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바꿨는지 입맛에 맞아 계속 국물을 떠먹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성공적인 점심식사였다.
다시 쇼핑 시작. 친구는 잠옷, 나는 청바지를 주로 보러 다녔는데, 마땅한 게 없어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플랫슈즈를 파는 상점에 들어가게 되었다. 친구는 샌들을 구경했고, 난 검은색 플랫 구두를 보았다. 마음에 드는 구두가 없어 앉아있는데, 직원의 권유로 샌들을 신어보게 됐다. 샌들은 생각지 못했던 아이템이었다. 4년 전 즘, 오랫동안 신었던 샌들의 밑창이 떨어져 나가 버린 후에 거의 운동화만 신고 다녔었다. 놀러 갈 때도, 더울 때도, 추울 때도, 비올 때도, 계절에 상관없이 운동화 하나로 지냈다. 가끔 다른 신발을 신고 싶었지만, 바쁘기도 하고 걷기 편하기도 해서 운동화만 신었던 거 같다. 샌들을 신었는데, 예상치 못했지만, 이 기회에 샌들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그간 조금은 소홀했던 '여름의 나'를 위해주기로 했다. 마침 세일 중이라 가격은 55,000원. 친구와 나는 샌들을 하나씩 구매해 나왔다.
가게에서 나와, 구매 이벤트로 준 쿠폰으로 차를 마시러 갔다. 커피를 잘 못 먹는 나는, 몇 개 없는 비커피류 음료 중에서 하나를 골랐다. 초코음료를 주문했는데 제티 같은 맛이겠거니 하며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도 웬걸. 맛있었다. 밀도 있는 크림 위에 초콜릿 조각이 얹어져 있었고, 음료에서는 진한 다크초코 맛이 느껴졌다. 감동적이었다. 몇 년간 먹은 초코음료 중 제일 맘에 들 정도였다. 기대치 않았는데 성공적인 티타임이었다.
영화시간이 되어 ‘하이재킹’을 보러 갔다. 예매할 때 자리가 반정도 차 있었는데 거의 만석이었다. 인사이드 아웃이나 퓨리오사를 보고 싶었기에 크게 기대하지는 않은 상태로 영화를 관람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웬걸. 재밌었다. 짧은 시간 안에 이야기를 잘 담아놓았고, 중간중간 볼거리도 있어서 지루하지 않았다. 보면서 시간이 흐르는 게 느껴지지 않았다. 기대하지 않아 더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성공적인 영화관람이었다. 영화가 끝나니 4:30분 정도가 되었고, 우리는 천천히 서울로 돌아왔다.
오늘은 예상치 못한 상황과 예상치 못한 일들로 채워진 날이었다. 비가 왔고, 수목원 대신 대형 쇼핑센터에 가서 예상치 못했던 쇼핑과 영화를 봤으니까.
기대했던 것들이 잘 이루어질 때도 재미있지만, 가끔 예상치 않았던 일들이 기쁨과 만족을 주기도 한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던 거 같다. 비가 아니었으면 가지도, 보지도, 먹지도, 사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 기대하지 않았던 것들이 즐거워, 보고 싶던 영화를 더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건 또 얼마나 재밌을지 기대가 된다. 조만간 보고 싶던 것들을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