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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Y Jun 23. 2024

0621 청강데이

2024년 여름일기

2024.06.21.(금) 뿌옇고 맑음


오늘은 오전과 오후에 모두 외부 교육을 듣게 되었다.


오전에는 원래 가기로 했던 직원 대신 고독사 예방교육을 들으러 갔다. 딱딱한 교육인 줄 알았는데, 강사초청 강연이었다. 예전에 여기서 추최 하는 김석중유품정리사님 강연을 들었던 기억이 나면서 기대되었다.


오늘 교육의 주제는 은둔 고립청년. 강사는 민간단체 ‘안무서운회사’ 유승규 대표님이었는데, 어깨까지 오는 긴 머리를 하고 있어 신선했다. ‘그렇지, 저렇게 자유롭게 다니는 게 정상이지’란 생각이 들며, 어느 순간 내가 틀에 갇혀버린 시선을 갖게 된 거 같다 느껴졌다.

     

대표님은 자신의 은둔 경험, 은둔 청년 사례, 회사 이야기 등을 해주셨다. 그중 ‘은둔도 스펙’이며, ‘지금 그 상태로도 충분한 일과 장소를 제공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 인상 깊었다. 다시 세상에 나가기 두려운 이들에게, 그에 맞는 것을 제공하면 된다는 생각의 발상. 대표님의 머리보다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 개념의 기초가 된 일본의 ‘15분 일하는 식당’, ‘곰손카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그렇게 일하고 생활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좋을 거 같았다. 그들에게도, 은둔하고 싶으나 그러지 못하고 있는 이들에게도 필요한 곳이라 생각됐다.

이런 가게와 개념을 들으며, 일본 ‘벧엘의 집’이 떠올랐다. 정신장애인이 그 자체로 수용되고 생활할 수 있는 그곳처럼, 그들에게도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는 시선과 공간을 제공한다라. 좋은 접근 방법 같았다. 동시에, 그런 곳이 유지되려면 현실적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없어야 하고, 가게가 유지될 수 있게 일하는 직원도 필요할 것이고, 거기서 돌봄도 동시에 해내야 하는 직원은 힘들 수 있겠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도 나이를 먹고 일을 하다 보니 그런 거 같기도.


강의를 들으며, 십수 년 전 소진되어 집에서 지내던 때가 떠올랐다. 겨울 끝자락에 자기 시작했는데 눈을 뜨니 겨울이 시작되었던 때, 그리고 이후의 시간들. 회복의 시간을 보내던 그때가 어쩌면 이들이 말하는 ‘은둔생활’이었을 수 있겠다 싶었다. 가만히 그 시간을 지켜준 엄마의 모습이 계속 생각났고, 고마웠다. 나라면 엄청 많이 불안하고 걱정되고 조급했을 거 같은데, 어떻게 보내셨을까 싶었다.     

그러면서 나의 시간을 보내고 싶고, 의미를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하며 차분하고 재밌게 열정적으로 지내면 좋겠다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은둔도 스펙이라는 혁신적인 생각으로 스타트업 사업을 하고, 자부심과 의미를 느끼며 열정을 갖고 사는 분의 모습이 자극이 된 거 같다.


대신 오게 된 교육이었는데,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더불어 지난 교육에 이어 이런 강연을 기획한 담당자분의 진정성과 노력에도 존경심이 들었다.     


꽉 찬 두 시간의 강연을 듣고 나오니 점심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복귀하면 이미 구내식당은 문을 닫을 시간이라 오랜만에 혼자 외식을 하게 됐다. 무얼 먹을까 한참 고심하다 일본 가정식집으로 향했다. 나를 위한 선물을 주자는 마음으로 22,000원의 거금을 들여 연어초밥을 주문했다. 10개의 연어초밥과 계란초밥, 가지초밥, 유부초밥이 나왔다.

‘천천히 하나씩 맛을 느끼며 먹어봐야지.’하며 식사를 시작했다. 간장에 초생강 한 조각과 고추냉이를 넣고, 생강을 간장 붓처럼 사용해서 초밥에 간장을 발맀다. 연어는 숙성되어 신선하면서도 쫀득했고, 계란과 유부초밥은 달콤했고, 가지초밥은 특제 양념과 조화를 이루며 품격 있는 맛을 냈다.

그런데 밥을 먹으며 복잡한 마음을 느낀 시간이기도 했다. 초밥 한 두 개를 먹기 시작할 무렵부터 한 손님이 헛구역질 같은 기침소리를 내는 걸 들었는데, 틱증상인듯했다. 틱은 조절할 수 없는, 당사자가 어쩔 수 없는 증상이란 걸 알기에 저분도 힘들겠구나 하며 식사를 계속했다. 허나 내가 예민한 탓으로, 계속 그 소리를 들으니 헛구역질을 할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머리로는 그냥 증상이다라고 아는데, 소리에 대한 신체적 반응이 조절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분이 겪어 왔고 겪고 있을 힘듦이 더 많았을 것이라 생각되어 안타까움을 느끼는 동시에, 오랜만의 외식 점심에 아쉬움을 느끼기도 한, 그래서 마음이 조금 복잡했던, 점심시간이었다.


회사에 바로 복귀 후 급히 처리할 일을 마무리하고, 동료들과 센터장님의 외부기관 강연을 들으러 갔다. 유관기관 협조 겸 센터장님 응원 겸 직원 교육 겸, 기관에 1명만 남고 갈 수 있는 직원 모두가 참석했다. 교육이 시작되길 기다리는데, 예전에 함께 일했던 직원이 행사 스태프로 있는 걸 보았다. 수련기간이라 그 기관에서 실습을 하고 있는 거였다. 반가운 마음이 가장 컸는데, 거기서도 잘 지내는 거 같아 다행이다 싶기도 아직 같은 소속 느낌인데 다른 곳에서 일하는 모습이 이상하기도 했다. 매일 비슷한 세상 같은데 그렇게 세상은 조금씩 변해가나 보다. 각자의 삶도 그렇게.

약 2시간 정도 되는 강의를 듣고 복귀해 일을 마무리한 후 퇴근했다.


오늘도 뭐 했을까 싶게 시간이 빨리 갔다. 그래서 이렇게 일기를 쓰게 된 거 같다. 매일 뭐하는지 모르게 시간이 가고, 지나고 나면 뭔가 송두리째 사라져 버린 거 같아서.

하루 2번의 외부일정, 외식, 깜짝 만남. 2024.06.21. 는 이렇게 보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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