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HY Jul 07. 2024

0704 피아노

2024년 여름일기

가끔, 월급을 받고 나면 반려용품 가게에 가 고양이 간식과 강아지 간식을 사곤 한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있는 카페에 들러 잠깐 피아노를 치기도 한다.


오늘이 그날이었다. 고양이와 강아지 간식이 떨어져 츄르와 황태껌을 사고, 피아노가 있는 카페에 들렀다. 피아노 바로 앞 테이블에 남자손님 두 명, 안쪽 공간에선 손님 몇 명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물건을 살까 음료를 먹을까 하다가 건조귤칩 하나를 샀다. 계산하며 사장님께 피아노를 치는 걸 허락을 받고, 귤칩을 챙겨 피아노 의자에 앉아 바이엘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무얼 쳐볼까.'


피아노 바로 뒤에 손님이 있어 조금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잠깐 치는 거고, 그분들은 알아서 들으시겠지, 그렇다고 피아노를 안칠 수는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용가를 내 피아노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오른손 왼손을 차례로 움직이고, 띄엄띄엄 악보를 보면서 손가락을 놀렸다. 뚱땅뚱땅, 멈칫멈칫하며 바이엘에 있는 5곡정도를 쳤다.


초등학교 때 피아노를 몇 년 배웠었다. 여자라면 피아노학원이 필수였던 시절이라 나 역시 이삼 년 정도 다녔던 거 같다. 집에서 가라 해서 간 거고, 특별히 피아노를 좋아하지도, 재능이 있는 거도 아니어서 체르니까지 겨우 배우고 멈췄더랬다. 그때 학원 선생님의 교회에서 잠깐 반주를 했었는데 자랑스러운 일이었을 텐데, 제대로 못해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철없던 시절. 참으로 귀한 기회였는데 그때는 그걸 몰랐더랬다.


그렇게 초등학교 때 잠깐 친 후에는 수십 년간 피아노를 칠 일이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카페에서 피아노를 발견하고 가끔 낯선 체험을 하듯 피아노를 치고 있다. 건반을 누를 때면 예전 어릴 때로 돌아가는 거도 같고,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손근육과 피아노 뇌세포들이 자극을 받으며 꿈틀거리는 게 느껴진다. 그때도 왼손 악보 읽는 게 어려웠는데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다는 걸 매번 신기해하기도 한다.


잘 치지는 못하지만, 그때 피아노를 배워두길 잘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그렇지만, 악기 하나쯤 잘 다루어서 숨 쉬듯 나를 잘 표현할 수 있다며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기타를 생각함 적이 있었다.

피아노도 좋지만 크기도 크고 갖고 다날 수 없어, 작고 소지가 가능한 기타가 어떨까 했다. 그래서 당근마켓에서 중고로 3만 원에 기타를 샀는데, 구석에 보관한 지 5년이 넘어가는 듯하다. 그때 매주 조금씩 쳤으면 지금쯤 몇 곡은 쳤을 수 있으려나. 그때 그 기타 덕에 글 소재를 얻긴 했으니 그 값을 한 거 같지만, 그래도 더 늦기 전에 기타를 배워보고도 싶다.


15분간 건반을 누르고 일어나 카페를 나왔다. 가방엔 건조 열빙어, 츄르, 황태껌, 터키껌, 건조 오리고기로 채워있었다. 풍성한 강아지와 고양이 간식들. 당분간 든든하겠다.

얘들아, 기다려라. 내가 간다.

작가의 이전글 0703 능소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