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누가 뭐래도 맛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는 비주얼을 포함한 분위기 등의 감성적인 측면들을 빼놓고서는 더 이상 요식업계를 논할 수가 없게 되었다. 사진이 주를 이루는 소셜네트워크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요즘 요식업계들은 맛보다는 오히려 이러한 감성적인 측면에 더욱 초점이 맞춰져있는 게 아닌가라고도 생각이 든다.
나 또한 이러한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소비자 중 한 사람인데, 얼마 전 SNS에서 우연히 본 광고에 오뚝이 진라면과 호안 미로의 컬래버레이션이라는 다소 괴상한 조합을 보고 호기심이 생긴 탓에, 평소에 라면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도 편의점에 들러 진라면을 구입해서 부엌 한편에 놓아두게 되었다. 물론 라면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아예 뜯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긴 하지만.
이런 비슷한 시류가 요즘 들어 하나 더 있는 게 바로 롯데주류의 캔맥주 피츠와 미국의 팝 아티스트 케니 샤프의 컬래버레이션이 그것이다. 내 생각에 이건 롯데 뮤지엄에서의 케니 샤프 전시에 관련된 계약의 연장선 상중하나라고 보는데, 맥주는 내가 평소에도 매우 좋아하고일상적으로 소비하는 대표적인 소비재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 또한 흥미 반 필요 반으로 인해 출시 이후 거의 먹어본 적이 없는 피츠 맥주를 구매하게 됐다.
사실 진라면도 그렇고 피츠 맥주도 그렇고 평소 내가 선호하고 소비하던 브랜드의 제품들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재화들을 소비하게 만든 것들은 호안 미로와 케니 샤프라는 브랜드들 때문이다. 나는 단돈 몇천 원으로 에스파냐 출신의 초현실주의 거장 호안 미로와 현재 세계적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미국의 팝 아티스트 케니 샤프의 예술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비했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미술이라는 게 예로부터 귀족들이나 부유한 사람들의 문화이며 대중과는 다소 관계가 없지 않나라는 인식이 통상적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나라도 전시문화가 활발해짐에 따라 미술이라는 장르가 많이 보편화되었고, 미술이라는 콘텐츠에 대한 진입장벽이 많이 허물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대중성을 대표하는 소비재들 중 하나인 캔맥주와 봉지 라면에서도 초현실주의 거장의 감성과 잘 나가는 뉴욕 출신 팝 아티스트의 감성을 느낄 수가 있게 되었다. 더 이상 미술이라는 게 소수의 누군가를 위한 문화가 아니게 된 것이다.
나는 대체적으로 이러한 흐름에 대해 기분 좋은 변화로 인지하고 있다. 미술을 포함한 예술적인 가치들이 대중화가 되고 그에 따라 우리 국민들의 사유가 늘어갈 테니까. 그리고 그런 과정들이 더욱 성숙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니까.
예술이 우리의 삶을 풍성하고 아름답게 만든다는 말을 감히 누가 틀렸다고 말할 수가 있겠는가? 누구나 가슴속엔 한 편의 시가 살고 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앞으로는 봉지 라면, 캔맥주. 그리고 생수, 화장지에서까지 예술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