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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클라바

눈이 번쩍 뜨이도록 달콤한 터키 디저트

by 정확한느낌

꽃잎보다 얇은 수십 겹의 레이어,

설탕시럽물의 짜릿한 달콤함,

고소하면서 화한 느낌의 피스타치오 분태-


입술에 닿은 페스츄리 같은 겉면은 파사삭하는 소리와 함께 경쾌하게 부서지며

시럽을 잔뜩 머금은 반죽에서는 씹을 때마다 설탕물이 뭉근하게 뿜어져 나온다.

꿀꺽하고 넘긴 입안에서는 피스타치오 잔향이 은근하게 맴돈다.

이것이 강렬하게 자리 잡은 바클라바의 첫인상이다.




아주 오래전, 친구와 이태원에 놀러 가게 되었다. 수업 과제 때문에 가게 된 이태원은 그동안 쉽게 오가던 지역이 아니어서 더욱 설레는 마음이 컸다. 그때에는 지금보다 더 음식에 진심이었던 나였기에 색다른 동네 입성 기념 겸 새로운 맛집을 찾으리라는 사명감을 품고 온갖 식당과 카페를 검색했다. 무수히 많은 페이지를 넘기다가 어느 터키 디저트 숍에 시선이 멈췄다. '한국 속의 외국'이라는 타이틀로 이색적인 지역이었던 이태원에서조차 흔하지 않았던 터키 디저트 숍에서는 처음 보는 디저트를 팔고 있었다. 와! 하는 감탄사와 바로 그곳이 목적지가 되었다. 영화로 유명해진 터키쉬 딜라이트, 바클라바, 구움과자, 빵이 매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색깔과 앙증맞은 사이즈의 핑거푸드 같았던 디저트가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았다.


의무감으로 과제를 끝내고 우리는 신나는 발걸음으로 골목을 누볐다. 당시에만 해도 터키 디저트 숍은 골목 안쪽에 2개 정도뿐이었고 블로그 후기에서는 두 곳을 비교하는 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중 한 곳을 방문했다. 이유는 외국인 직원이 한국말을 유창하게 해서였다. 터키 디저트를 구성하는 재료와 맛에 대한 궁금증이 컸기 때문에 궁금한 것을 바로 물어볼 마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왜 그렇게 비장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웃기다.


몸집만 한 유리 진열대에 빼곡히 들어서 있는 디저트의 황홀함에 취해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원하는 디저트를 말씀드리면 직원분이 반대편 안쪽에서 일회용 용기에 하나씩 담아 주는 포장 방식이었다. 당시 그 매장에는 좌석이 없었고 오늘 떠나면 또 언제 올지 모르는 이태원이었기에 눈물을 머금고 거금을 치르며 소중한 몇 조각을 담아왔다. 역시 사람은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면 괜히 아쉽고 미련이 남아 욕심을 부리게 된다. 한국 분식점에서 흔히 김밥을 담아주던 찰랑거리고 얇은 네모난 플라스틱 용기에 처음 보는 외국의 디저트가 가지런히 담겨 있는 모습을 보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친구와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하나씩 들어 한 입 베어 물었다. 피스타치오 바클라바의 첫인상은 충격적 이도록 달았다는 거다. 그저 달았다. 두 눈이 똥그래져서 손에 쥐고 있던 남은 바클라바를 마저 입 속에 털어 넣었다. 굉장히 오묘했는데 그 맛을 표현하자면 식감과 맛, 향이 이색적이었다. 바삭하게 부서지는 식감이 가장 먼저 다가오고 이후는 엄청난 설탕 맛과 견과류의 고소함이 치고 들어온다. 씹을 때마다 스며들었던 시럽이 죽 나오는데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다고 느꼈다.


유럽에서 밀푀유를 만들듯이 이것 또한 속이 비칠 정도로 얇은 반죽과 녹인 버터를 번갈아 가며 켜켜이 쌓는다. 사이사이 잘게 다진 견과류를 흩뿌린다. 넓은 판에 가득 채운 반죽을 한 입 사이즈로 작게 조각내어 구워낸다. 오븐에서 꺼내자마자 설탕 시럽을 국자로 넉넉하게 끼얹으면 뜨거운 열기로 인해 마치 기름을 튀기는 소리가 들리면서 반죽은 시럽을 가득 흡수한다. 우리는 완전히 식은 바클라바를 먹는다.


지금은 터키 디저트 숍이 더 많이 나타났고 더 다양한 품목을 판매한다. 최근 카이막이라는 유제품 메뉴가 떠오르면서 유명세를 올리는데 한몫했다. 비교적 최근에 방문한 이태원에서 정말 오랜만에 바클라바를 먹었는데 아쉽게도 그때 그 맛이 나지 않았다. 눅진하다 못해 질겨진 식감에 다소 실망했지만 먹는 순간만큼은 과거로 추억 여행을 했다. 이태원 추억의 맛이었다.


KakaoTalk_20230810_165307963.jpg *Baklava 본토 발음 : 바클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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