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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

소울푸드를 향한 여정

by 정확한느낌

대학생 시절 어느 교양 수업 교수님은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떡볶이를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떡이 빨간 소스로 범벅되어 묻어있는 게 시각적으로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분은 매일 위생, 청결, 오염에 대해 과도한 반응을 보이고는 했기 때문이다.


나는 주기적으로 떡볶이를 먹어야만 무언가가 해소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떡볶이라는 음식이 먹고 싶다는 욕구가 해소되는 게 아닌 고차원적으로 감정이나 답답함이 사라지는 것이다.


떡볶이를 먹을 때 꼭 따라오는 고전적인 질문인 너는 밀떡이야 쌀떡이야?는 이야깃거리가 생겨 항상 반갑다.

요즘 떡볶이는 크림, 로제, 마라, 짜장, 바질 등 소스가 기상천외하다.

예전에는 쫄면, 라면 사리 선택지에서 이거 아니면 저거냐는 신중함을 요구했다면 이제는 넓적당면, 분모자, 소시지, 치즈 추가와 같이 화려한 라인업이 생겼다.

떡도 중간에 구멍이 뚫려 소스가 속까지 스며들도록 나온 것도 있고 가운데에 치즈, 고구마무스가 들어있는 것도 있다. 가래떡 굵기의 떡을 쓰기도 한다.

주르륵 흐르는 국물이 떡을 다 덮도록 사발로 부어주는 곳이 있는가 하면 약불에 기름으로 달달달 볶아주는 기름떡볶이 집도 있다. 양념이 소위 말하는 학교 앞 분식처럼 달달하거나 아무개의 맵부심을 잠재우려고 끝을 모르게 눈물 콧물 쏟을 만큼 화끈하기도 하다.

세상의 모든 떡볶이를 애정 한다.


이런 나도 유독 여기는 한 번쯤은 굳이 시간을 내서 찾아가 보고 싶었던 곳이 있다.

이름이 아주 직관적이라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알 수 있지만, 먹어본 적이 없으니 상상만으로는 이해하기에 부족한 맛. 이 지역에 연고도 없고 이상하리만큼 근처에서 볼일도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미지의 가게로 지도 앱에 자리 잡았다. 그러다 어느 휴일, 갑자기 박차고 가봐야겠다는 다짐이 섰다. 바로 출발했다.


우선 대흥역까지 집에서부터 대중교통으로 1시간 15분 남짓 걸려 도착했다. 디저트 가게에서 케이크와 커피로 배를 채우고 가방을 들러 매고 한강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며칠 전만 해도 쌀쌀해서 두툼한 외투를 챙겼는데 벌써 덥다. 이대로 한강을 따라 쭉 내려가다가 노들섬 위로 다리 하나 건너고 조금만 더 가면 목적지가 나온다. 도보로 1시간 35분 정도 걸린다. 산책로 따라 심어진 나무에서는 한 발 걸을 때마다 툭- 툭- 송충이가 떨어져 외투를 뒤집어쓰고 걸었다. 마포대교, 원효대교를 지나 한강대교를 건너며 반짝이는 물빛을 찡그리며 바라본다. 머리 위로는 철새 떼가 이동한다. 그림자가 없는 10월의 대낮은 아직 무더웠다. 걷고 걷다 보니 도착지인 노량진 컵밥거리에 가까워진다. 스무 살, 재수생 친구를 만나러 갔던 노량진 이후에 처음 방문한 순간이었다. 정오의 내리쬐는 햇볕을 한 시간 넘게 받고 온 덕에 열이 훅 올랐다. 더워서 반팔을 입어야 할 참인데 뜨거운 떡볶이를 먹어야 한다니 잠깐 고민했지만 이내 눈은 재빠르게 매장명과 호수가 적힌 지도를 확인한다. 떡볶이 집까지 걸어가는 그 짧은 거리에 코로나와 물가상승률 때문인지 닫혀있는 가게가 은근히 많았다.


드디어 발견! 18번 치킨카레떡볶이.

기본 중의 기본인 ④번 치킨카레떡볶이 1인분을 주문하고 외투와 마스크를 벗어 가방에 욱여넣었다.

닭강정이 연상되는 순살치킨 한 컵 분량을 기름에 잠깐 튀겨 바삭하게 만들고 그 위로 떡볶이를 부어주신다. 마지막으로 허니머스터드소스를 치킨 위로 가볍게 흩뿌려 새콤함을 더해주고 내어주셨다. 손님들 간의 화합을 위해 밀떡과 쌀떡을 모두 사용하신다.

정말이지 몇 년 동안 궁금해했던 맛이었는데 과연 그리던 맛일까. 기다란 꼬치로 바삭한 순살치킨부터 푹 찍어 한 입 맛보았다. 적당히 달짝지근 한 소스에 은은한 존재감을 나타내던 카레향, 약간의 톡 쏘는 맛을 주는 머스터드소스의 조합은- 민망하리만큼 예상했던 맛있었다. 오물거리며 피식 웃게 되었는데 익숙한 맛이 주는 친근함이라서 그랬을 거다.


그동안 얼마나 먹고 싶어서 그랬는지 내가 좋아하는 치킨, 카레, 떡볶이가 모두 들어간 음식이어서 그랬는지 치킨과 떡을 번갈아 먹으며 한 그릇 깨끗하게 비웠다. 매콤하고 쫄깃한 탄수화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보기만 해도 침샘이 터지는 노량진 컵밥거리 치킨카레떡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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