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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롱

짧은 행복

by 정확한느낌

태어나서 처음 마카롱을 먹은 건 대학생 때였다.

동기들과 종로 어딘가를 배회하다가 누가 건물 1층에 거대하게 입점한 카페에 들어가서 쉬자고 했다.

통유리에 비친 우리는 전부 지쳐 보였다. 하루 종일 걷다가 앉을만한 곳을 발견한 터라 너 나 할 것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반짝이는 유리 쇼케이스 안에 무스케이크, 쇼트케이크, 마카롱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바싹 달라붙어서 어느 것을 고를까 신중을 더하고 있다가 문득 가격표를 보고 덜컥 나가야겠다 싶었다. 학생이 호기롭게 주문하기에 금액대가 나름 고가였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빈손으로 나가기가 어찌나 민망했던지 나란히 진열되어 있는 디저트 중에 가장 가격이 낮은 것을 찾았고 마카롱에서 눈이 멈췄다.

여러 가지 사이에서 가장 저렴했던 디저트였지만, 검지와 엄지를 맞닿게 동그라미를 만들면 그 크기였을까 한 입 거리 마카롱은 우리에게 비싸게 느껴졌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하나씩 마카롱을 고르고 손바닥에 쥐어 밖으로 나왔다.

조심스럽게 앞니로 한 입 물었다.

꼬끄가 부드럽고 바삭하게 토독 부서졌다. 그리고 무지 달았다. 게다가 생각보다 맛이 없었다.

첫인상이 실망스러워서 그 후 한동안 마카롱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고 대한민국에 뚱카롱이라는 K-마카롱 붐이 일고 두터운 버터크림 마카롱에 빠졌다가 지금의 가나슈 필링의 전통 마카롱까지 맛을 알게 되었다.

마카롱은 어떻게 보면 디저트의 집약체인 것 같다. 마카로나쥬 작업의 정도, 색감의 배합, 필링 맛의 조합, 온도/습도 조절 등 손에 익어야만 되는 과정이 있고 지식이 있어야만 추출해낼 수 있는 맛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토록 자그마한 디저트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경험이 필요한지. 알면 알수록 어렵다고 느끼는 게 제과의 세계다.

그래서 나는 이런 단계들이 적당히 또 알맞게 축적된 맛있는 마카롱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혀 위에서 녹는 달콤하고 진한 한 입은 그동안의 노고와 무거웠던 마음까지 사르르 녹게 한다.

짧지만 행복을 맛볼 수 있는 강력한 한 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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