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225, 마흔 번째 생일

오늘의 안부

by 강다현


속초로 여름 휴가를 다녀왔다. 집에 돌아온 날은 마침 내 생일이었다. 나를 안방에 가둬 놓고 아들과 남편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엄마, 이제 나와!”


내가 방문을 나서자 생일축하 음악이 흘러나왔다. 남편의 어색한 노래에 맞춰 아들이 석탄을 캐듯 야광봉을 휘둘렀다. 생일상에는 케이크 대신 과일이 올라와 있었고(요즘 한약 먹느라 밀가루를 끊었다), 촛불 대신 주황색 무드 등이 켜져 있었다. 급조한 티가 흘러넘치는 생일파티였다.


KakaoTalk_20250724_151535119.jpg 어쩌다 보니 못난 애미는 극복의 아이콘이 되어버렸다.


남편이 떡케이크라도 먹자고 했지만 나는 케이크 대신 다른 걸 요구했다. 내 바람대로 우리는 생일상에 둘러앉아 각자 눈을 감았다. 기도를 드리려는데, 며칠 전 보았던 영화 ‘킹 오브 킹스’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십자가 사건 이후에 예수님의 생애를 돌아보는 장면에서 물 위를 걷던 예수님의 모습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두려움 때문에 물에 빠진 베드로의 모습이 주인공 월터로 바뀌고, 월터의 손을 잡아 건지시며 월터 대신 물속으로 가라앉으시던 예수님의 모습이었다.


월터는 곧 나로 바뀌었다.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중반까지, 나는 ‘내일 아침 눈 뜨게만 해 보세요’로 시작해서 ‘제발 저 좀 데려가 주세요’로 끝나는, 협박과 발악에 가까운 기도를 자주 드렸다. 나를 이런 시궁창 같은 세상에 던져 놓으시고, 건져 달라는 내 절규를 외면하시는 하나님이 원망스러웠다. 자살도 못 하게 하면서 살맛이 1도 없게 만들면 도대체 어쩌자는 건지, 어이가 없었다. 그 시절 나는 내 삶이 내 것이라 생각했다. 그 결과 모든 것이 갈수록 더 못마땅해졌다.


내 생명의 가치, 내가 지금 살아 숨 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세상은 원래 처음부터 시궁창이었을까? 예수님은 왜 죽으셨어야 했을까. 고통스럽게 십자가에 달리시면서까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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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생애를 다룬 한국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 불모지에서 이런 대작이 탄생했다니, 기적같은 일이다.


예수님이 나 대신 물속에 가라앉으신다. 그렇게 내가 살아났다. 그래서 지금 내가 여기 존재할 수 있었다. 그 사랑을 참 오래도록 오해하고 외면했었다. 회개는 곧 감사로 바뀌었다. 살아 있음은 저주가 아니라 선물이었다. 너무나 값진 선물...


“기도하겠습니다.”


남편이 대표로 기도를 마무리했다. 한 자 한 자 마음을 담은 그의 기도는 모두 나를 위한 축복이었다. 순간 깨달았다. 내 삶에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나는 이미 모든 것을 다 받았다. 기도가 끝나고 눈을 떴다. 맞은 편에 앉은 아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괜히 아들을 골리며 내 눈물을 감춰본다.


내 생에 가장 완벽한 생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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