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안부
연필깎이가 어디 갔지? 아무리 찾아봐도 뚱뚱이 색연필 전용 깎이가 보이질 않네. 아마 또 생쥐가 물어갔나 봐. 우리 집에 새롭거나 예쁘거나 아무튼 자기 마음에 드는 학용품만 보면 죄다 물어가는 생쥐 한 마리가 살고 있거든? 아무래도 그 생쥐가 하교하기 전까진 도저히 찾을 수 없을 것 같아.
하는 수 없이 칼을 들었어. 매끈하게 깎으려니까 이것도 여간 힘든 게 아니네. 나뭇살이 사방으로 날아다니고 아주 난리도 아니야. 연필 하나 가지고 씨름을 하는데, 문득 아빠 생각이 나더라.
내가 우리 집 생쥐 아니, 아들만 했을 때였어. 가끔씩 아빠는 내 필통에 있던 연필들을 몽땅 꺼내서 깎아주시곤 했지. 물론 그때도 자동 연필깎이가 있었지만, 아빠가 직접 깎아놓은 것만 못 했어. 얼마나 매끈하고 예뻤게? 아빠가 연필을 깎을 때면 나는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구경했어. 사람 손이 기계보다 나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신기했는지 몰라.
그러고 보면 우리 아빠는 손재주가 참 좋으셨어. 통나무를 잘라 화단 울타리를 만들거나, 벽돌을 쌓고 시멘트를 발라 손수 계단을 만들었는데, 넘어지지 말라고 그려놓은 무늬가 지금 생각해보니까 딱 북유럽 패턴이네? 그뿐만이 아니야. 겨울이 되면 앙상한 장미 나무를 핵인싸로 만들어 놓았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살이라곤 하나도 안 보일만큼 지푸라기로 꼼꼼하게 싸맸는데, 한 5cm 간격으로 매듭을 묶어 놓은 모습이 꼭 무슨 미술 작품 같더라.
만약 아빠가 밤낮 술을 마시는 대신, 나무를 깎거나 화초에 옷을 입혔더라면 어땠을까?할머니한테 뒤지게 혼났겠지, 뭐. 쓸데없는 짓 그만하고 밭에 가서 일이나 하라면서... 아마 나도 곱게 보진 않았을 거야. 잔소리도 꽤 했을 테고.
그런데 그냥 아빠가 잘하는 일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그게 돈이 되든 않든, 쓸모가 있든 없든, 그냥 계속 했더라면 어땠을까? 다른 사람이 하는 말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자기 내면의 소리를 따라 살았더라면, 아빠 인생이 조금은 덜 슬프지 않았을까...?
안타깝게도 난 아빠의 손재주를 물려받지 못한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