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장 친한 친구, 엄마가 내 곁을 영원히 떠났다.

못난 딸의 뒤늦은 반성

엄마는 나에게 남편이자, 엄마이자, 딸이자, 가장 친한 친구였다. 나는 엄마에게 의지했고, 세상에서 하나뿐인 무조건 내편인 유일한 사람이며, 가끔은 투정도 받아주었다. 친한 친구에게 하듯 좋아하는 배우 이야기나 짝사랑하는 남자이야기도 서로 하며 공감하는 그런 사이였다.

10월 23일, 그날은 캣맘(정 많은 엄마는 산고양이들 밥을 챙겨주곤 했다.)인 엄마는 나에게 고양이 밥을 인터넷에서 사라고 했고, 나는 밥이 없는 것을 보고 이미 주문을 했는데, 다시 그 말을 하니 짜증이 났다. 혈압이 높던 엄마는 ‘오늘따라 이상하게 머리가 아프네.‘라며 머리를 감으러 욕실에 들어갔고 나는 ’ 머리가 아프면서 왜 머리를 감아?‘라며 철없는 소리를 했다.

잠시 뒤 플라스틱이 바닥을 치는 듯한 ‘탁’ 소리가 났다. 그저, 엄마가 머리 감다가 대야를 떨어트린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한참 동안 욕실에서 나오지 않길래 들어가 보니 엄마는 쓰러져 있었고, 호흡이 굉장히 약했다. 몇 번이고 배웠던 CPR을 처음 하며 119에 얼른 전화를 했다. 엄마는 결국 심정지 상태가 되었다. 심폐소생술을 몇 번하고 호흡은 돌아왔지만 맥박이 약하고 의식이 없었다.

병원에 가니, 의사가 환자의 상태는 스스로 호흡도 못하는 말 그대로 코마 상태라고 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엄마를 그렇게 보낼 수는 없었다. 0.00001%의 희망이라도 걸고 연명치료를 포기하지 않았다. 엄마의 몸에 삽관을 하고, 엄마 옆에서 24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엄마는 완전히 내 곁을 떠나게 되었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가장 큰 슬픔이었다. 장례식장에 어떻게 갔는지 상복을 어떻게 입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장례를 치르는 3일 동안의 기억이 없다.

정신을 차려 보니 엄마의 유품을 내가 정리해야 되었다. 엄마의 유품 정리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 싫었다. 내 손으로 직접해야 엄마의 돌아오지 못할 외출을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주일 정도 밤잠도 못 자고 엄마의 유품 정리를 하고 집을 정리했다. 하다가 서러우면 새끼 호랑이를 잃은 어미 호랑이가 포효하듯 엉엉 울었다. 그리고 무기력증에 시달렸다.


병원을 가니 우울증이라고 했다. 당연히 우울해야지. 당연히 슬퍼야지. 나는 행복할 자격도 없는 사람이었다.

만약 내가 플라스틱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을 때 바로 욕실로 달려갔더라면, 그래서 골든아워, 아니 골든 세컨드를 지킬 수 있었으면 엄마가 살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넉 달이 지난 지금에야 정신을 차리고 나에게는 소중한 9명의 내 글을 기다리던 구독자가 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그리고 우울증 치료를 받기로 했다. 원래 드문드문 글을 썼지만, 앞으로는 정기적으로 글을 잘 써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는 글 쓰는 나를 참 좋아했다. 소위 말하는 명문대 국문학과를 나온 자신도 못하는 것을 이공계 출신인 딸이 해서 대리 만족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나의 가장 열렬한 팬이었다. 생각도 바꿔하기로 했다. 그때 내가 집에 없었다면 퇴근한 아버지가 엄마를 처음 대면 했을 텐데, 그래도 엄마의 돌아올 수 없는 외출을 내가 지킬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라고….


엄마, 나 원망하는 거 아니지? 얼마 전 내 꿈에 나와 ‘사랑스러운 내 딸‘이라고 하더라. 그거 엄마가 못다 한 말이지? 나는 말이야, 사후세계도 영혼도 안 믿었었거든. 근데 이제는 믿고 싶어진다.


혹시라도 글이 업데이트를 기다렸던 독자분들께는 사과의 말씀드립니다. 앞으로도 읽어서 가치 있는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저, 제가 해야 할 일을 찾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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