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 Jarding Sur Le Nil by Hermes
2월에 석사학위를 받고 7월까지 취직이 되지 않았다. 백수라는 이유로 잔뜩 기죽어 있던 어느 날, 아버지는 눈치 보는 딸의 모습이 싫었는지 위로하듯 나에게 당신의 중국 출장에 동행하자고 했다. 원래 원칙주의자로 공과 사가 분명한 아버지는 한 번도 출장에 가족을 동행한 적도, 그리고 선물을 사서 오는 법도 없었다. 사업을 하는 아버지의 출장은 항상 전쟁터로 향하는 것과 다름없었고, 현장 직원들의 노고를 늘 염두에 두었다. 그래서 받은 중국 비자 스티커를 붙인다고 여권이 두툼할 때로 두툼했지만, 그 유명한 만리장성이나 동방명주와 같은 명소를 가 본 적도 없었다. 그러니 나의 이 여행은 아주 파격적이었다.
나는 너무 좋았다. 아버지의 사비로 가는 여행이라 내 돈 들 일 없었고, 아버지와 오래간만에 같이 해외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 것이라 가족 여행을 가는 것 마냥 들떠 있었다. 당시, 목적지인 상해의 날씨가 무척이나 덥다고 하여 나는 하늘하늘한 원피스도, 선크림도, 그리고 챙이 넓은 모자도 챙기며 철 없이 신이 났었다. 비록 짧은 비행시간이지만 비즈니스 석이라니 취업에 실패해서 기죽은 모습은 사라지고 촐랑댔다.
대한항공과 공동 운항하던 동방항공 비행기를 탔었다. 비행기를 타자마자 나는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버지가 중국 고수인 샹차이 냄새라고 했다. 인도 공항에 내리면 카레 냄새로 사람들이 장소를 기억하듯, 나의 중국행은 이 샹차이 냄새와 담겨 있었다. 상하이 공항에 내리자마자 그 냄새는 더 진해 졌다. 익숙하지 않은 냄새와 도로 위의 메케한 공기 때문에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첫날 숙소에 짐을 풀고 나서도 계속 냄새 때문에 지끈거렸다.
중국에서만 나는 냄새가 있다. 더운 냄새, 약초 냄새, 먼지 냄새, 그리고 실내 흡연을 하는 이유로 실내의 담배 냄새까지 뒤섞인 냄새다. 24시간이 채 되지 않아 한국에 가고 싶을 만큼 머리가 아파왔다. 잠시의 휴식 후 숙소 근처의 쇼핑몰에 갔다. 머리는 아프지만 배는 고팠다. Food Court를 둘러보니, 익숙한 훠궈부터 튀긴 닭요리나 볶음밥까지 메뉴가 다양했다. 그러나 식당 입구부터 나는 샹차이 냄새 때문에 선뜻 메뉴 고르기가 어려웠다. 결국에는 통역기를 돌린 억지 중국말로 아이스크림 하나로 식사를 때웠다.
다음 날에는 혼자 관광할 수 있도록 운전사 겸 통역하는 분을 아버지가 소개해 줬다. 아버지의 중국 일정은 각종 미팅과 현지 공장 방문 일정으로 빽빽해서 동행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사람은 나보다 키가 작은 중년의 조선족 남자였다.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중국에서 중국말도, 한국말도 의사소통 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어 든든했다. 뿐만 아니라, 본인은 관광지에 안 들어가도 되니 둘러보고 출구 쪽에 나와 있으면 기다린다고 했다. 낯가림이 심한 나는, 잘 알지 못하는 분과 동행하는 것 보다 일정 부분 혼자 있게 해 주는 시간이 오히려 배려처럼 느껴졌다.
중국에는 "하늘에 천당이 있다면 땅에는 쑤저우와 항저우가 있다 (上有天堂 下有蘇杭)."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쑤저우 (우리말로 소주)와 항저우 (우리말로 항주)는 아름답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원나라 때 중국을 방문한 마르코 폴로도 동방견문록에 쑤저우와 항저우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기록했다 하니 곳곳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정도 당연하다.
졸정원(拙政園) 역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유산 중 하나다. 명나라의 '왕헌신'이라는 관리가 속세를 떠나 자신을 되돌아보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영어로는 "The Humble Administrator's Garden" 즉, '겸손한 관리자(공무원)의 정원'이라는 뜻이다. 중국의 4대 정원에 포함되며 나머지는 베이징의 이화원, 헤베이성의 피서 산장, 쑤저우의 또 다른 정원인 유원이 있다. 물론 "Humble"과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내부가 넓고 화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내서를 펼치니 정원 구조 배치도가 나왔다. 대략 봐도 엄청났다. 특히나 곳곳에 연못을 만들어 놓고, 복도가 길며, 정자나 방이 많아 웬만한 수의 사람이 같이 살아도 하루 한 번 얼굴 보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왕헌신이 정치를 하다 사람이 싫어 여기 왔겠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주 잠시 걸었지만, 30도가 넘는 날씨와 물의 도시라고 불리는 수쩌우 답게 습도도 높아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처음에는 동양에서 입식 생활을 하고 각 종 장식물이 빨간색으로 되어 있는 것이 신기해 보였는데, 잠시 후에는 봐도 감흥이 없었다. 땀은 뻘뻘 났고, 여기저기 알아듣지 못하는 여러 나라의 말들이 시끄럽게 느껴졌다. 편한 운동화를 신었지만, 자연을 살린다고 만든 울퉁불퉁한 돌 위를 걷느라 발바닥이 뜨거웠다. 넓기는 어찌나 넓은지 이 길인지 저 길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 참 헤매다가 어느 원형 문향의 입구를 지나치는데, 은은한 냄새가 기분 좋게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근원지를 찾아 코를 킁킁거리고 간 곳은, 졸정원에서 가장 넓은 연꽃연못이었다. 별칭인 "Lotus garden"이라는 말에 딱 맞게 연(蓮)이 물 위를 덮고 있었다. 물의 도시 쑤저우의 특징을 살려 연못을 많이 만들고, "청렴"이라는 꽃말을 가진 연꽃을 볼 수 있도록 연을 심었다고 한다. 왕헌신이 그 시대에 바라던 정치상을 표현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파를 뚫고 가까이서 본 연못의 연들은 잎도 꽃도 어느 하나 이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싱그러운 푸른색의 널찍한 잎 사이사이로 꽃대가 올라와 연분홍색 흰 천을 곱게 물들여 정성을 다해 잘라 붙인 것처럼 연꽃이 흐드러 지게 피어 있었다. 살짝살짝 바람이 불 때면, 그 은은한 연꽃 향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나는 30분 정도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니, 연꽃 향기에 나도 같이 물들어 최면에 걸린 듯했다. 그리고 행복이란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춤추고 싶을 정도로 기쁜 것은 아니지만, 좋은 것을 보고 좋은 것을 느끼는 차분한 행복 말이다. 그런 것이 내게도 필요했었다. 대학을 졸업하면 성공인 줄 알았다. 좋은 논문을 쓰고 석사 졸업을 하면 '짠'하고 꽃길이 열릴 줄 알았다. 남이 정한 성공을 향해 달려왔다. 그리고 지금처럼 미끄러지고 나니, '그럼 나는?'이라는 질문이 튀어나왔다. 내 인생에서 목표도 성공도 내가 정한 것이 없었다. 그저 남들이 좋다고 하는 기준에 나를 집어넣으려 발버둥을 처 왔다. 그러다 결국 나를 사랑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연꽃향은 '은은하고 조용한 행복'으로 기억되었다.
약 일주일 간의 여정 동안 아버지와 단 둘이 식사를 한 적도 없었다. 나 혼자 숙소에 있거나, 바로 맞은편에 있는 Wanda plaza를 종종 가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와의 즐거운 여행이 아니라 나만의 여행이었지만, 값진 교훈을 얻었다.
'성공이 아니라 행복을 위해 살겠노라'는 다짐이다. 물론 백수로 지내는 것이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늦가을이 되도록 취직을 하지 못한 나는 다시 불안해졌다. "잉여인간"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결국 스스로를 원망하고 미워하며 자책했다.
더 이상 나를 미워하면 큰일이 날 것 만 같은 어느 날, 갑자기 연꽃 향기가 맡고 싶었다. 은은하고 세련된, 마치 얇은 꽃잎처럼 하늘하늘한 중국옷을 입고 춤을 추면 딱 어울릴 그 향기가 그리웠다. 인터넷을 뒤져 연꽃향이 나는 향수를 검색했다. 그리고 드디어 찾았다!
Un Jardin Sur Nil by Hermes. 불어로 '나일강 위의 정원'이라고 한다. 몰랐는데, 나일강에도 연꽃이 많이 피나 보다. 꽤 비싼 향수지만 '은은한 나이 행복'을 기대하며 제일 작은 사이즈로 한 병을 샀다. 설명서에는 '상큼한 그린망고, 섬세한 연꽃, 우아한 시카모어의 향들이 조화를 이룬 향'이라고 되어 있었다. 나갈 일도 없으면 당장 그 향수를 온몸에 듬뿍 뿌렸다. 내가 맡았던 연꽃 냄새보다는 달콤하고 상큼했다. 자연에서 느꼈던 연꽃잎 같이 춤을 추는 무희들을 상상하기엔 조금 힘들지만, 충분히 중국에서 알게 된 은은한 행복감을 느끼기에 좋은 향이었다. 다만, 인간의 한계인지 그 향이 오래가지 않는다. 아주 잠시 남았다가 사라진다. 그래도 내가 행복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요즘도 이 향수를 뿌리면 '나는 행복해'라고 감탄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 이 향 속에서는 이 만큼이면 충분히 행복하지'라는 생각 든다.
그렇다. 운 자르뎅 수 르 닐은 내게 "평화로운 행복의 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