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정리]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의 차이

누구를 위한 행복인가.

by 페릴러


내가 20대 무렵 좋아했던 인디밴드 중 ‘안녕바다’라는 밴드가 있다. ‘별빛이 내린다~샤라랄라랄라라아’로 한때 유명했던 밴드다. 그 밴드의 노래 중 2013년에 발매된 3집 앨범에는 ‘하소연’이라는 노래가 있다. 지금 보면 F가 T에게 불평하는 노래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당시 처음 그 노래를 들었을 때는 바로 처음에 나오는 가사가 나의 머릿속을 휘저었다. ‘널 사랑하지만, 널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아’라는 가사.

어렸던 나는, 누군가를 강렬히 좋아하는 것이 사랑하는 것이 아닌가? 사랑하면서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다는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 이런저런 것들을 정의하기 시작하면서 사랑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정의를 내리게 됐다. 그러나 그 두 가지가 다른 것인가에 대한 생각은 크게 해보지 못했다. 그러다 얼마 전 가족들과 함께 오랜만에 긴 시간을 보내던 중 양가적인 감정들이 솟구쳤고, 얼마 후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면서 뭔가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그때 ‘하소연’이라는 노래에서 비롯한 질문이 머릿속에 떠올랐으며 이에 대한 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단순히 연인관계의 사랑으로만 생각했던 적이 있지만, 당연하게도 더 광범위한 범위이다. 가족 간의 사랑, 친구에 대한 사랑 등. 나는 어느 정도 나이가 차고 나서야 이러한 광범위한 사랑에 대해 자연스레 생각하게 됐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 또한 단순한 연인관계의 사랑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 또한 사랑의 한 가지일 뿐. 그렇다면 ‘사랑한다’에 대한 정의는 무엇이고 ‘좋아한다’에 대한 정의는 무엇일까. 표준국어대사전에 기재된 정의는 다음과 같다.

사랑-하다「동사」 「1」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다.
좋아-하다「동사」 「1」 어떤 일이나 사물 따위에 대하여 좋은 느낌을 가지다.

추상적인 개념만큼 추상적인 언어로 설명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다들 겪어봤듯이 단순히 해당 단어의 정의만으로는 정확히 묘사할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각자 사랑이 무엇인지 정의하려고 하는 것 같다. 이런저런 상황에서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아본 적이 다들 한 번쯤은 있지 않을까 싶다. 비슷한 맥락으로 ‘첫사랑’이 언제예요?라고 물으면 ‘첫사랑’의 정의가 뭔가요?라고 다시 묻는 경험도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나의 정의는 무엇인가. 우선 누군가를 ‘좋아한다’에 대한 정의를 먼저 해보고 싶다. 내가 생각했을 때, ‘상대방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즐거운 것. 그래서 함께하고 싶은 것’이 좋아하는 감정인 것 같다. 즉, 그럼으로써 ‘내’가 느끼는 행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이 생기는 것은 어떤 사람의 성격, 외모, 환경 등으로 인하여 상대방과 함께하고 싶어 진다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성격이 나와 잘 맞고 얘기가 잘 통하기 때문에 잘 어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내’가 즐겁고, 그렇기에 ‘내’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어 한다. 연인으로서의 끌림에는 성격 또한 상당 부분 차지하겠지만, 상대방에 대해서 모를 때는 외적인 요소가 끌림에 대한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외모든 뭐든 그런 끌림으로 인해 '내'가 함께 하고 싶은 것이다. 결국, 내가 생각했을 때 좋아한다는 것은 무엇이 원인이든 내가 어떤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것을 뜻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사랑한다’는? 나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상대방이 진심으로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 그것이 꼭 나로 인하지 않을지언정, 상대의 행복에 기여하고 싶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것.’ 심지어 상대방의 행복이 나의 행복보다 더 우선시될 때, 그것이 가장 높은 단계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즉 ‘내’가 느끼는 행복보다는 ‘상대’가 느끼는 행복에 주안점이 있는 것.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 싶다.

나에겐 사랑이라는 감정이 좋다는 감정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 같다. 다만,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나도 과거에 누군가를 정말 좋아하면서, 나보다 이 사람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고 강렬하게 느껴지던 순간이 있었다. 그냥 어느 순간 그런 감정이 들었다는 말로밖에는 설명이 어려울 것 같다. 물론 당연하게도 나는 연애와 결혼이라는 것이 서로가 서로를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약속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모든 연인관계에서 그런 노력은 했지만, 노력과 별개로 정말 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감정이 마음에서 우러날 때라고 말하고 싶다. 구구절절한 나의 연애 이야기는 여기 작성하지 않겠지만, 그 결과가 어쨌건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해 준 사람들이 있었다. 나의 행복보다는 그저 그 사람이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사람들.

이에 더해, 내 사랑에 대한 생각이 더 심화하기 시작한 것은 가족으로 인해서이다. 나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나, 이는 내가 즐겁고 좋아서는 아니다. 우리 가족은 전체적으로 화목하다고 할 수 있는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성격이 잘 안 맞는 나는 집에서 말수가 극단적으로 없는 편이다. 가족들과 있을 때의 자아와 친한 친구들과 있을 때의 자아는 완벽하게 상반된다. 지금은 아니지만, 솔직히 어렸을 때 나는 가족이라는 의무감에서 멀어지기 위해 이민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가족 중 한 명의 투병을 겪으면서 이들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절대 자식들에게 신세를 지지 않으려고 하시면서도, 어떻게든 뭐라도 하나 더 챙겨주려는 부모님의 사랑을 느낄 때 눈물이 차오른다. 또한, 가족 중 누군가 슬퍼하거나 아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겁이 덜컥 나며 걱정이 든다. 나는 내 가족들이 진심으로 행복하기를 바라며, 그렇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것을 느끼며,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며,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느낀다. 그렇기에 나도 그런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더욱더 소중할 내 가족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허나 다시, 결국 차이에서 오는 생각으로 인해서, 내가 함께하는 것이 즐거운지는, 그러니까 좋아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최근 가족 모임에서 들었다. 그러나 또 한 번, 이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사랑한다는, 그런 양가적인 감정이 드는 것은 분명했다. 그렇게, ‘하소연’이라는 노래 가사가 던져준 질문처럼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에 대한 차이에 대해 대답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누군가의 행복을 바라는 것은 다소 보편적일 수 있다. 나 또한 전반적으로 내가 싫어하는 몇 안 되는 사람을 빼고, 내 주변인들이, 선한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한다. 그렇지만, 내게 정말 소중한 사람들의 행복을 생각하듯이 적극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반면, 사랑은 상대방의 행복을 위한 적극성이 개입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조금 오글거리지만, 나중에 정말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좋아하고, 사랑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더욱 사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