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에서 오는 행복, 태도에서 오는 행복>
흔히들 얘기하는 행복론 중에, 행복은 가까이 있다는 말이 있다. 요지를 말하자면 행복은 어떤 거창한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태도로 현재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세상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만끽하며 기뻐할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는 태도의 행복론을 강조하는 이유는, 반대로 그것이 좀처럼 쉽지 않으며 사람들이 그렇게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행복에는 상황에서 오는 행복이 있고, 태도에서 오는 행복이 있다고 생각한다. 비유하자면, 상황에서 오는 행복은 계절 같은 자연현상처럼 제어할 수 없는 상황으로부터 오는 행복이며, 태도에서 오는 행복은 그런 자연현상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행복이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가을이나 봄과 같이 날씨 좋은 계절은 상황에서 오는 행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반면, 호불호가 갈리는 무더운 여름 속에서, 덥지만 피서를 즐기며 여름의 매력을 느끼는 것과 더위에 짜증만 부리는 것의 차이는 태도로부터 결정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상황은 그 크기와 성질에 따라 변화 가능 여부가 다르며, 변화가 가능할지라도 대개 난도가 높다. 날씨를 어떻게 변화시키겠는가. 밖에 나가질 않으면서 빨리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며 여름의 무더위를 인내하거나, 참을 수 없는 더위가 이어지면 이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디 그게 그리 간단한 일이던가. 그러므로, 행복과 관련되어 주로 강조되는 점은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는 등의 말처럼 태도에서 오는 행복이다. 더위를 식히고 해수욕을 하는 것을 즐기며 여름 속의 즐거움을 찾는 것이 새로운 거처로 이사하는 것보다는 쉽듯이, 환경보다는 자신의 태도를 제어하기가 당연히 더욱 쉽기 때문이다. 반면, 아무리 날씨가 화창하고 나들이하기 좋은 기온이더라도, 불만이 가득한 사람에게 이 세상이 아름다워 보일 수는 없다.
그러나, 태도로부터 나오는 행복의 함정은 주어진 환경에 따라 마음이 삐뚤어지기 시작하면 모든 게 불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것은 나의 경험담이기도 하다. 지금은 그때의 내가 왜 그랬나 싶지만, 과거의 몇몇 삶의 순간들에 잔뜩 불만을 품은 적이 있다. 이때의 나는 이미 태도에서 오는 행복의 힘을 체감한 후였으므로, 긍정적인 상황을 계속 보면서 자신을 설득해보았다. 그러나 결국은 그 당시의 많은 시간을 불만 속에서 보낸 기억이 있다. 실제로도 운이 나쁜 일이 겹겹이 일어나긴 했지만, 당시의 나의 긍정에너지가 부족했다고도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태도로 극복이 되지 않는 환경도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과연 누군가 만약 전쟁을 겪고 있다면, 하루 한 끼의 식사를 매일 걱정해야 한다면, 갑자기 사고로 중증장애를 얻은 직후라면, 방금 막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면,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면, 그런 고난을 막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 쉽사리 태도에서 오는 행복을 권할 수 있을까?
다만, 태도로부터 행복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칠흑 같은 어둠 속 고난에서도 꽃이 피어나듯 행복은 피어난다. 그리고, 기어코 그런 조그마한 행복의 꽃을 피울 수 있는 빛과 양분은 바로 개인의 태도에서 온다. 그리고 그렇게 피워낸 꽃을 기르고 지키면서 삶의 동력을 얻는 게 아닐까 싶다. 또한, 그러한 태도의 빛들이 절망의 밖으로 시야를 돌릴 수 있게 해주며, 때로는 암울한 상황으로부터의 탈출구를 찾아 비춰주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태도에서 오는 행복을 강조하는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