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정리] 인간관계에 대한 고찰

좋다는 이유 말고 뭐가 더 필요한가.

by 페릴러



내가 가지고 있는 인간관계 철칙이 있다. '사람은 이용의 수단이 아니다.'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적어도 고3 때 이런 생각이 확고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까지 나의 인간관계에 대한 핵심가치관이다. 다른 말로 하면, 누군가와 가깝고 긴밀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데에는 그 사람이 좋다는 이유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나만의 어떤 욕구를 채우는 것이 목적이 되어 그 사람을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더 쉽게 말하자면 어떤 사람이 좋아서 어떤 경험을 나누고 싶어 만나는 것과 어떤 경험을 하기 위해서 어떤 사람이 필요한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좋다는 기준 역시 상대의 성격, 생각, 관점, 외모 등 상대의 어떤 면이 자신에게 어떤 효용을 준다는 것일 수 있고 그것 자체가 어떤 욕구를 채워준다고도 할 수 있다. 다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이용’이라 함은 ‘일방적인 관계’로 상대를 ‘수단’으로 사용하는 관계인 것 같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니, 서로의 목적만 일치한다면 문제가 없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건강한 인간관계는 어떤 관점에서든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주고, 다른 쪽이 받는 관계가 아닌, 오고 가는 관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관계들을 보면, 상대방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 보다는, 상대방에게서 무엇을 얻어낼 수 있는가만을 생각하는 사람이 참 많은 것 같다.


내가 겪었던 관계들을 크게 요약해서 열거해 보자면, 모두 ‘내가 좋아서’라기보다는 나는 ‘수단’이었고 ‘자기중심적’으로 1) 단순히 자신의 힘든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서, 2) 혼자선 못하니 같이 할 사람이 필요해서, 3) 단순히 외로워서 시간 때울 상대가 필요해서, 4) 비교하며 자신의 열등감을 극복하거나, 우월감에 취할 대상이 필요해서, 5) 내가 가진 어떤 점을 이용하고 착취하려고 등이 있겠다. 이 중 몇 가지는 이해가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내가 비판하는 부분은 주로 자기중심적인 경향이 강한 관계를 뜻한다. 내가 굳이 ‘목적’까지는 되지 않더라도, 단순한 ‘수단’이 되는 것이 싫었다는 것이다. 즉, 아무나 필요한 상황에 내가 ‘착하고 만만해서’가 아니라, ‘내가 의지하고 믿을 수 있을 만큼 좋아서’ 나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의 얘기를 해주고, 같이 무엇을 하거나 시간을 보내자고 나를 찾아주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관계는 참 어렵다. 솔직히 내가 경험했던 다양한 인간관계들을 예시로 들며 사람을 이용수단으로 쓰는 것에 관한 사례와 나의 관점, 사회에서 만나는 관계에 대한 고찰 등 나만의 인간관계론을 정말 긴 시간 수정하면서 며칠 동안 길게 작성해 보았는데, 너무 다양한 상황들이 있어 쉽게 정리하거나 정의하기가 어려웠다. 자꾸만 새로운 내용과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면서 더욱 장황하게 변했으며 결론이 도무지 날 것 같지 않았다. 게다가, 과학자도 심리학자도 아닌 나의 삶의 궤적에서 관찰한 그 내용은 생각 정리에서만 그쳐야지 공유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가적으로, 구체적 사례는 의도치 않게 누군가를 공격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면서 전부 덜어내게 되었다.


이 나이가 되도록,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다양한 집단의 많은 사람과 식사하면서 얘기해 보았다고 자부할 수 있는데, 어릴 때는 이런 경험들이 나의 사고를 확장시키고 타인에 대한 수용력을 더 높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나의 사고는 유연성이 생기기보다 오히려 내가 뭘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지 확실해지면서 어떤 형태를 점점 형성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나와 잘 맞지 않는 사람들을 더 빠르게 판단하는 것 같다. 설령 서로 잘 맞더라도, 서로가 그저 좋다는 이유로 서로를 찾을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참 어려운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수록 현재의 친구들이 있음에 감사한다. 문자보단 직접 만나는 것을 선호하는 성격상 매일같이 혹은 빈번히 연락하는 친구는 없지만. 언제든 연락한다면 서로 반갑게 맞아줄 수 있고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친구들, 내 속 얘기를 할 수 있는 친구들은 충분히 있는 것 같다. 오랜 기간 함께해 온 고등학교 친구들, 사회에서 만나 지금까지 서로를 찾는 친구들. 복잡함 없고 이해관계가 없는 이 관계들이 좋다. 이들을 만나는 것에, 좋다는 이유 말고 뭐가 더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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