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필자는 한국이라는 하나의 ‘국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에 대해 논의해왔다. 이미 여러분들도 눈치채셨듯이, 한국의 형성은 ‘근대’라는 키워드와 상당 부분 연결되어 있었다. 근대 사회의 핵심은 찰리 채플린이 고전 영화 ‘Modern Times(1936)’에서 풍자했듯이 인적·물적 자원을 최대한 ’ 효율적‘으로 이용해 최대의 ’ 성과‘를 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모든 인간은 기계가 되어야 했고, 인간을 기계로 만들기 위한 교육이 필요했다.
그러나 인간은 기계와 달리 스스로 생각하고 새로운 개념을 창조할 수 있는 존재였기 때문에, 이들이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하나의 이데올로기 속에 가두고 세뇌시키는 작업이 필요했다. 지난 100년간 한국은 물론 전 세계를 지배했던 자유민주주의, 사회주의, 자본주의, 공산주의 등의 거대 이데올로기들은 권력자들의 필요에 따라 강조되거나 부정되어 왔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들에 세뇌된 일반 대중들은 스스로 그러한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여 그것의 전파와 강화에 헌신하게 되었다.
필자가 ‘국가 만들기’ 시리즈에서 다룬 내용은 바로 그러한 세뇌와 내면화의 과정이다. 근대적 시간의 도입으로 신체는 보다 효율적인 방식으로 규율되었고, 기계적 도시의 형성은 사람들을 아파트와 자동차라는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의 굴레에 가두었다. 한편 전근대적 신민은 민족과 국민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다시 정의되었다. 자신의 지역, 계급, 씨족 등에 소속감을 느끼고 있던 신민들을 국가에 충성하는 ‘국민’으로 만들기 위해 위정자들은 민족과 국민을 창조했다. 그러한 민족과 국민은 항상 범위가 정해져 있는 개념이었으며, 우리 민족과 다른 민족, 국민과 비국민의 이분법 위에서 존재하는 개념이었다. 타자(他者), 그러니까 다른 민족과 비국민은 항상 경계와 공격의 대상이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퇴치해야 할 ‘바이러스’와 같이 인식되었다.
대한민국은 국가의 형성 과정에서 표면적으로 자유민주주의라는 사회체제와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를 채택했다. 그러나 실제로 초기의 대한민국은 국가에 의해 사회와 경제가 통제되고, 국가가 자본가를 지원하는 국가주의적 모델을 지향했다. 이는 명백히 일본 제국주의의 유산으로, 일제에 의해 훈육되고 그들의 방식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정국을 장악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경제를 갈망하는 세력의 반대에 부딪혔으나, ‘반공’과 ‘효율적 성장’이라는 구호로 체제를 수호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가족을 잃고, 가난에 시달리던 한국인들은 대부분 이 구호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국민의 지지와 군사력을 바탕으로 군부정권은 국가와 국민에 대한 통제와 감시를 강화하여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군부정권이 통제를 강화하면 할수록 국민의 반발심은 더욱 커졌다. 끝을 모르고 내달리던 압제가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자 국민들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폭발해버렸다. 1987년 6월의 민주항쟁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러한 민주화의 바람과 세계화의 물결로 인해 그간 한국을 형성해왔던 국가주의라는 큰 기틀은 점차 다른 것으로 대체되어갔다. 동시에 그 기틀을 지탱하던 규율과 통제라는 수단 역시도 다른 모습으로 둔갑했다.
규율과 통제를 대신하여 사회를 지탱하는 수단으로는 ‘성과만능주의’와 ‘긍정성’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국민 개개인을 파편화하여 감시하고 통제하는 기존의 큰 틀은 유지되었지만(지금도 정부는 마음만 먹으면 개인의 신상정보를 언제든지 열람하고 소재를 파악할 수 있다) 일반 국민들이 인지할 수 없는 곳으로 숨었고, 대신 그들에게 경쟁을 요구했다. 국민들은 진학, 취직, 승진 등의 경쟁에 끊임없이 내몰렸고, 그들은 기꺼이 그 경쟁의 대열에 동참했다. 남이 하면 나도 해야 했기 때문에 그 누구도 경쟁에 제동을 걸 수 없었다. 미디어는 경쟁을 부추기는 유용한 수단으로 사용되었으며, 온갖 광고와 예능, 드라마, 영화 등은 개인의 성취를 찬양했다. “할 수 있다”는 우리 시대의 지배적인 문구가 되었다.(철학자 한병철은 이러한 사회를 ‘성과사회’라 명명한다)
이러한 성과만능주의와 긍정성이 사회 속으로 퍼져나갈수록 이득을 보는 세력은 대기업과 정치권력이었다. 경쟁은 비단 성취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점차 소비하는 것도 경쟁하기 시작했다. 남이 가진 것은 나도 가져야 했고, 남이 한 경험은 나도 해야 했다. 그러한 소비 열풍은 명품, 주얼리, 전자제품, 여행 등 거의 대부분의 사치물품 혹은 행위로 퍼져나갔다. SNS의 발전은 이러한 소비 열풍을 더욱 확산시켰다. 그러한 소비의 결과로 큰돈을 버는 것은 일부 대기업이었다.
한편 국민 개개인은 서로 경쟁하며 다기능 보유자로 성장했다. 이들은 취업난과 경제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스스로 많은 능력을 갖추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 출산율이 낮아져 아이 한 명을 양육하는 비용이 이전 시대에 비해 비약적으로 늘어나자 고학력자의 비율이 매우 높아졌다. 현대의 젊은이들은 대학 학사 학위는 기본이고, 우수한 영어 실력에 컴퓨터 사용 능력, 그 외 몇 가지의 기술들을 보유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국민 개개인의 능력이 향상될수록 정부와 기업은 더욱 우수한 인력들을 고용할 수 있게 되어(부릴 수 있게 되어) 좋다. 즉 성과만능주의와 긍정성이라는 수단은 국민과 적이 되지 않고도 생산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하다.
우리는 이러한 성과만능주의와 긍정성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마 당분간은 힘들지 않을까 싶다. 다른 아이들이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하는데 아이를 바깥에서 뛰놀게 하는 학부모는 별로 없을 것이며, 남들이 자격증을 따고 스펙을 쌓는데 철학책을 읽는 청년도 별로 없을 것이고, 남들이 승진을 위해 영어 회화학원에 다니는데 집에서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부모도 적을 것이다. 당장 필자부터도 그렇다. 다만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알고 있다면, 적어도 보이지 않는 세력의 손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워져, 스스로의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이자 인문학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는 결코 우리 스스로 존재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