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이란 무엇인가?
필자는 고등학교 시절을 강원도 횡성군의 안흥면에서 보냈다. 필자는 원래 그곳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횡성과 안흥이라는 지역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필자가 횡성과 안흥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몇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한우였고, 하나는 찐빵이었다. 횡성 한우와 안흥 찐빵은 이제 어엿한 브랜드가 되어 횡성과 안흥이 어디쯤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도 그곳에 한우와 찐빵이 유명하다는 것쯤은 알 정도가 되었다.
필자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현장학습을 가서 안흥 찐빵을 처음 먹어보고, 선생님으로부터 안흥 찐빵의 유래에 관하여 설명을 듣게 되었는데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안흥 찐빵이 오래전부터 유명했던 것은 아니고, 김대중 정권 들어 모종의 이유로 인해 갑자기 유명해지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즉 안흥 찐빵이 유명해진 것은 불과 20년 전인 것이다. 필자가 그 설명을 들었을 때가 2011년이니 당시로서는 겨우 10년이 갓 넘은 시점이었다.
후에 다시 안흥 찐빵의 유래에 대해 찾아보니, 안흥 찐빵은 IMF를 맞아 가난한 시절에 먹었던 추억의 음식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던 시절 유명해진 음식이라고 한다. 보릿고개처럼 가난했던 시절에 먹었던 음식을 먹으며 IMF도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고 싶었던 당대인들이 추억의 음식을 찾기 시작했는데, 그중 안흥 지역의 찐빵이 대표로 ‘선택’되었던 것이다. 재밌는 사실은, 안흥찐빵이 유명해지기 전 안흥에 제대로 된 찐빵 가게가 단 한 곳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곳이 매스컴에 안흥 찐빵의 원조처럼 보도되자, 그 후 단 1~2년 만에 찐빵 가게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섰다고 한다. 필자는 이 이야기를 읽고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안흥 찐빵을 과연 안흥의 ‘전통 음식’이라 할 수 있는가, 혹은 없는가 하는 것이었다. 만약 전통 음식이 맞다면, 혹은 전통 음식이 아니라면, ‘전통’이란 과연 무엇일까?
안흥 찐빵과 같이 우리 주변에는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은 ‘전통’들이 많다. 예를 들어, 지금 우리가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민요로 알고 있는 아리랑은 ‘본조(本調) 아리랑’으로 1920년대에 창작된 유행가이다. 본조 아리랑은 1920년대를 강타한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로서 창작되어 한반도 전역에 걸쳐 유행하였는데, 이것이 전승되고 재창작되어 지금의 위상을 갖게 되었다. 심지어 본조 아리랑은 기존의 민요와 달리 서양의 악곡을 결합하여 창작된 ‘신(新) 민요’로, 전통 민요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미술, 놀이, 의례, 위인, 심지어 가족 형태에서도 우리는 비슷한 예시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오래되지 않았다고 해서 전통이라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오래되지 않았어도 전통이라 ‘불릴’ 수 있다. 가령 개교한 지 15년이 된 학교에서 새로 들어온 신입생들을 모아 놓고 선배들이 기합을 주는 관례가 있다고 하자. 분명 그 선배들은 그러한 관례를 두고 “이건 우리 학교의 전통이야. 그러니 너희도 따라야 해”라고 말할 것이다. 만약 그러한 ‘전통’에 반발하는 후배가 있다면 그 후배는 선배들에게 소위 ‘찍혀’ 학교생활을 원만히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대다수의 후배들은 이를 학습하여 자신의 후배들에게 똑같이 할 가능성이 크다.
전통에 있어서 기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전통이 목적을 갖고 ‘발명’되었는가이다. 사실 우리 주변의 이른바 ‘전통들’ 중에는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발명된 것들이 많다. 위와 같은 사례도 마찬가지이다. 아마 저 관례가 형성되는 시점에서 후배들에 대한 훈육은 실용적 차원에서 처음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처음에는 무례한 후배들만 불러 혼내던 것이, 점차 전체 후배들로 범위가 확대되고, 그것이 연례행사처럼 고착되는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그리고 후배들의 행동에 거슬림이 없어 더 이상 훈육이 필요 없어졌음에도 후배들을 집합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면, 그제야 그 관례는 ‘전통’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초기의 목적이 사라지고 그저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의미를 갖게 되었을 때 비로소 전통이 되는 것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은 자신의 저서 <<만들어진 전통(The Invention of Tradition)>>에서 전통이 발명되는 과정에 대해 상세히 기술했다. 그는 낡은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 낡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른바 ‘전통들’이 사실은 극히 최근의 것일 따름이며 종종 발명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전통을 발명한다는 것은, 과거의 것에 기반을 두면서 다만 반복되는 것만으로도 공식화되고 의례화되는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행위나 의례는 과거와의 연속성을 획득하며, 그 과거가 내포하는 의미를 부각시켜 현재의 목적에 알맞도록 특정 행위나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 있게 된다. 그는 만들어진 전통들의 유형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특정 공동체들의 사회 통합이나 소속감을 구축하거나 상징화하는 것들
제도, 지위, 권위 관계를 구축하거나 정당화하는 것들
그 주요 목표가 사회화나 신념, 가치체계, 행위규범을 주입하는 데 있는 것들
홉스봄의 ‘만들어진 전통’ 이론이 소개된 뒤, 국내에서도 이 이론을 토대로 하여 전통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왔다. 그 결과 우리가 ‘전통’이라 알고 있었던 것들 중 상당수가 홉스봄이 말한 ‘만들어진 전통’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한국에서는 일제 식민 권력과 근대적 사고방식이 농촌으로 침투하던 1920년대와, 박정희 정권이 근대화를 열정적으로 추진하던 1960년대에 집중적으로 ‘전통’들이 발명되었다. 이러한 전통들은 국가나 지역 등 다양한 층위에서 발명되었고, 그 목적도 집단에 따라 상이했다. 그러나 대체로 홉스봄이 제시한 만들어진 전통들의 유형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필자는 이어지는 장에서 그러한 ‘만들어진 전통들’의 대표적인 사례를 소개하고 그것이 한국사에서 갖는 의미들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첫 번째 장에서는 ‘전통적’ 가족형태와 계보 관념의 형성에 대해 알아보고, 그것이 표준과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된 배경을 분석해 볼 것이다. 두 번째 장에서는 이른바 ‘전통문화’라고 불리는 것들의 창조 과정과 그 배경에 대해 분석해보려 한다. 세 번째 장에서는 196~70년대에 일어났던 전통 창조 및 숭배 현상과 그 배경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가 기존에 갖고 있던 전통에 대한 맹신과 선입견을 깨는 것이 본 시리즈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지금부터 전통의 발명 과정을 추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