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의집_part1 금지된 감각
알람은 울리지 않았다.
요엘이 먼저 깼다.
눈을 뜨기도 전에
몸 안 어딘가에서
작은 진동이 올라왔다.
폐와 심장 사이,
어제 궤적의 방에서
선들이 모여들던 자리.
네메시스의 음성보다
먼저 깨어나는 감각이었다.
“현재 시각 06:02.”
잠시 뒤, AI가 보고했다.
“예정보다 28분 일찍 기상하셨습니다.”
어젯밤,
푸라나를 다시 열지는 못했다.
인터페이스 구조가 달라져 있었다.
똑같은 메뉴인데
어딘가 모양이 조금씩 변형된 느낌.
도시가
무언가를 덧씌운 것이다.
“오늘 회의는 08:30.”
네메시스가 일정을 읽어줬다.
“모션랩 PRNA-α 첫 주간 리뷰.
내부안정국 관제 담당자가
원격 참석 예정입니다.”
내부안정국.
그 이름을 듣는 순간
폐 안쪽 점이
한 번 더 흔들렸다.
그들은
‘안정’을 말하면서
실제로는
어디까지를 ‘허용된 불안정’으로 둘지를
계속 재조정하는 기관이었다.
“출근 준비를 시작할까요?”
“응.”
요엘은 짧게 대답했다.
몸을 일으키는 동작이
어제와 조금 달랐다.
한 번에 일어나지 않고,
측면으로 아주 조금 기울였다가
천천히 중심을 세웠다.
누가 보면
단순한 기지개 같을 움직임.
그러나 그에게는
궤적의 방에서 익혔던
작은 틀어짐의 연장선이었다.
네메시스는
자세 교정을 제안하지 않았다.
“심박수 안정.
근육 피로 지수, 경미.”
숫자만 보고 있었다.
요엘은
그 침묵이
어제 자신이 던진 말의 결과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해석하지 마.”
도시는
아침 7시를 향해
천천히 밝아지고 있었다.
캡슐 탑승장은
출근 인파로 들어차기 직전의
애매한 공백 시간대였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
아침 근무를 조금 일찍 시작하는 사람들,
혹은
도시의 리듬과
어느 정도 어긋난 생활을 택한 사람들.
“캡슐 이용을 권장합니다.”
네메시스가 말했다.
“오늘 오전에는
47구역 방향 보행로 일부에서
임시 보수 작업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47구역.
그 단어가 떠오르자마자
폐 안쪽 점이
아주 작게 수축했다.
“오늘은 캡슐 탈게.”
요엘이 말했다.
“출근 목적 캡슐 탑승,
예상 소요 시간 12분.”
AI가 계산을 마쳤다.
그는 잠깐
보행 아이콘을 쳐다보다가
그냥 캡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움직임을 아껴둬야 할 것 같았다.
꺼내 써야 할 자리에서
한꺼번에 쓰기 위해.
모션랩 건물은
도시의 다른 연구 동과 다르지 않았다.
외벽은 깨끗했고,
창은 크게 나 있었고,
출입 게이트는
효율적인 동선으로 설계돼 있었다.
사람들의 몸이
가장 ‘정상적’인 자세로 통과할 수 있는
각도와 폭으로.
출입 게이트를 지날 때마다
매번 같은 문구가 머리를 스쳤다.
문제가 없는 몸.
“출입 인증 완료.”
게이트 상단 패널이 떴다.
“오늘도 안정적인 하루를.”
요엘은
그 문구를 떠올릴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호흡을 점검하는 습관이 있었다.
너무 가쁘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게.
오늘은
한 번 정도 일부러 틀어볼까,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러나
게이트 바로 앞에서
그런 실험을 하는 건
너무 노골적인 일처럼 느껴졌다.
“요엘!”
뒤에서 누군가가 불렀다.
돌아보니
라나가 커피를 든 채 서 있었다.
모션랩 데이터 분석 팀.
PRNA-α 도입 이후
가장 바빠진 부서였다.
“오늘은 일찍 왔네?”
그녀가 말했다.
“어젯밤에도 로그 봤지?”
“조금.”
요엘이 답했다.
“너무 늦게까지 볼 수는 없어서.”
“다행이네.”
라나가 웃었다.
“네 로그가 제일 복잡하거든.”
“좋은 뜻은 아니겠지.”
“그건 회의에서 얘기하자.”
그녀가 어깨를 으쓱했다.
“내부안정국 사람도 들어온다며?
이런 날은
우리가 먼저 말을 적게 하는 게 이득이야.”
라나는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심도 섞여 있었다.
내부안정국이 들어오는 순간
모든 데이터는
‘건강’만의 문제가 아니라
‘안정’의 문제가 된다.
“회의실에서 보자.”
그녀가 손을 흔들고 돌아섰다.
요엘은
한 번 더 숨을 들이켰다.
폐 안쪽 점이
작게 고개를 드는 느낌이었다.
제1 회의실은
이미 반쯤 들어차 있었다.
차트를 준비하는 사람들,
단말기를 정리하는 사람들,
네트워크 상태를 점검하는 기술자.
정면 스크린에는
아직 로고만 떴다.
MOTION LAB
도시 움직임 연구 센터.
그 아래
오늘 회의 제목이
작게 붙었다.
[PRNA-α 도입 1주차 진폭 안정화 리뷰]
‘안정화’라는 단어를
이만큼 많은 사람이
별 문제 없이 입에 올리는 곳은
이 도시에서도 흔치 않을 것이다.
“자리에 앉죠.”
팀장 이안이 말했다.
그는
언제나 침착한 말투를 유지하는 사람이었다.
대신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조금 더 실었다.
“내부안정국 관제 담당이
곧 접속합니다.
그 전에
우리 쪽 데이터를 먼저 훑죠.”
불이 조금 줄어들고
스크린에 첫 화면이 떴다.
도시 사람들의 하루 움직임이
집계된 그래프였다.
각도, 속도, 빈도,
중심축의 흔들림까지 수치화된 선들이
겹겹이 포개져 있었다.
“우리가 보는 건
실시간 감시가 아니라
패턴입니다.”
이안이 말했다.
“PRNA-α 도입 이후
일주일간의 패턴.”
화면이 나뉘더니
도입 전과 도입 후의
진폭 분포가
두 개의 그래프로 비교됐다.
도입 전에는
조금 더 넓게 퍼져 있던 분포가
도입 후에는
조금 더 가운데로 모여 있었다.
“전체 인구 기준으로
약 6.2%의 진폭 감소.”
라나가 설명을 덧붙였다.
“특히 피로 지수가 높은 집단에서
불필요한 움직임이 줄었고,
낙상 위험도도 0.8% 감소했습니다.”
그래프만 보면
모든 게 좋아 보였다.
“예외값은요?”
누군가 물었다.
이안이
다음 화면으로 넘겼다.
화면 한쪽에
‘EX-CLASS’ 라는 라벨이 붙은
작은 창이 떴다.
진폭 분포 밖으로 튀어나간
몇 개의 점들이 표시돼 있었다.
“도입 이후
예외값은 전체의 0.03%로 감소했습니다.”
라나가 말했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죠.”
그녀가 버튼을 누르자
예외값 목록이 떴다.
각 점에는
익명화된 코드가 붙어 있었다.
SUBJ-11
SUBJ-39
SUBJ-72
SUBJ-104 …
그리고 맨 아래,
SUBJ-α-3.
이름은 가려져 있었지만
요엘은
자신이 어디인지 알고 있었다.
SUBJ-α-3.
PRNA-α 고지된 테스트 군 중
세 번째 대상.
이안이
그 코드에서
슬쩍 눈을 거두는 걸
요엘은 봤다.
“SUBJ-α-3에 대해서는
별도의 슬라이드가 있습니다.”
라나가 말했다.
“내부안정국 요청에 따른 분류입니다.”
그녀가 조심스러운 얼굴로
요엘 쪽을
한 번 힐끗 훑고 지나가는 것도.
“이제
내부안정국 채널을 엽니다.”
이안이 말했다.
회의실 공기가
살짝 달라졌다.
천장 스피커 쪽에서
가벼운 잡음이 들리더니
곧 정제된 목소리가 연결됐다.
“내부안정국 관제 3국,
민 현장관입니다.
모션랩의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민.
성만 소개하는 건
그들의 습관이었다.
“먼저
전체 패턴 리뷰 감사드립니다.”
민이 말했다.
“도입 후 진폭 분포 안정화는
도시 전체에 긍정적인 요소입니다.”
말 끝마다
‘긍정적’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건
그들의 또 다른 습관이었다.
“다만
저희가 관심 있게 보는 건
그래프 중앙이 아니라
언저리입니다.”
스크린에 다시
EX-CLASS 창이 확대됐다.
“특히
SUBJ-α-3와
SUBJ-72.”
요엘의 손끝이
조금 차가워졌다.
SUBJ-72.
처음 듣는 코드였다.
“두 대상의 움직임 패턴을
겹쳐 보겠습니다.”
라나가 조작하자
두 개의 궤적이
한 화면에 겹쳐졌다.
하나는
PRNA-α 도입 이후
요엘의 훈련, 보행, 호흡까지
합산된 움직임.
다른 하나는
시범 사업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기록되기 시작한
어떤 사람의 움직임이었다.
“보시다시피,”
민이 말했다.
“두 패턴은
시간대와 환경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특정 순간에
유사한 진동 구조를 보입니다.”
그래프 속 선들이
어딘가에서
특이하게 물결을 그렸다.
규칙적인 진폭 안에
불규칙한 파동이 끼어드는 지점.
궤적의 방에서 봤던 선들이
머리에 겹쳐 떠올랐다.
“우리는 이 구조를
‘쿠르티아 계열 진동 패턴’이라고
임시 이름 붙였습니다.”
민의 말이
회의실 공기를 한 번 더 바꿨다.
쿠르티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건
역사책이나 데이터베이스에서 본
사라진 지역 이름에 불과했다.
그러나
요엘에게는
다른 의미를 가진 단어였다.
숨은 사라지지 않는다.
잃어버린 것은 폐가 아니다.
잃어버린 것은 방향이다.
종이에 적혀 있던 문장,
그리고
데오크반이라는 이름.
“쿠르티아 계열이라니,
그건 좀 과장 아닙니까?”
이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단지
예외적인 노이즈일 수도 있고—”
“우리는
아직 ‘확정’하지 않았습니다.”
민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래서 모션랩의 의견이 필요합니다.”
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회의실 문이 열렸다.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습니다.”
민간 모듈 연합,
PRNA-α 설계 대표라고 소개된
여자가 들어왔다.
검은 머리를
단정하게 묶었고,
눈매는 차가웠지만
말투는 부드러웠다.
“하자르 세인입니다.”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이미 시작하셨군요.
계속 진행하시죠.
저는 중간에 끼겠습니다.”
하자르.
이름만 들어도
어딘가 먼 지역이 떠오르는 발음이었다.
“마침 잘 오셨습니다.”
민이 말했다.
“지금 보고 있는
SUBJ-α-3와 SUBJ-72의 패턴,
어떻게 보십니까?”
하자르는
자리도 제대로 앉기 전에
스크린을 올려다봤다.
조용한 눈이었다.
“재밌네요.”
그녀가 말했다.
“두 개의 서로 다른 도시에서
비슷한 진동 구조가 나타난 겁니까?”
“두 번째 패턴이
이 도시 것이 아니란 말입니까?”
이안이 물었다.
“연합 도시군 전체에서
데이터를 수집하니까요.”
하자르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다만
72번은…
원래 시퀀스에서 빠져 있던 코드일 텐데요.”
“원래 시퀀스에서 빠져 있었다니요?”
라나가 물었다.
“원시 데이터엔 있었지만
공식 모델링에는 쓰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하자르가 답했다.
“보통
시스템이 ‘불안정하다’고 판단한 패턴이
그렇게 됩니다.”
불안정.
그 단어는
건강과 안정
어느 쪽에도 얹을 수 있는
애매한 수식어였다.
“그러니까,”
민이 정리하듯 말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건
한 명은
현재 도입 테스트 중인 대상,
다른 한 명은
과거에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모델링에서 제외된 대상이라는 겁니까.”
“그렇죠.”
하자르가 말했다.
“둘 다
도시 입장에선
조금 까다로운 움직임일 겁니다.”
그녀의 시선이
잠시 회의실을 쓸고 지나갔다.
요엘은
그 짧은 시선이
자기 어깨에 살짝 멈췄다가
지나가는 걸 느꼈다.
“하지만,”
하자르가 덧붙였다.
“순수하게
움직임 연구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녀가
그래프 속 특정 구간을 가리켰다.
두 패턴의 선이
미세하게 비틀렸다가
다시 합쳐지는 지점.
“이 구조는
단순 노이즈라고 보기엔
너무 아름답네요.”
회의실에
짧은 웃음이 흘렀다.
그러나
요엘은 웃지 못했다.
그 ‘아름다움’이
어제 자신이 몸으로 따라갔던
궤적의 감각과
너무도 닮아 있었기 때문에.
“그럼,
어떻게 하자는 말씀이십니까.”
이안이 물었다.
“SUBJ-α-3를
테스트에서 제외해야 합니까?
아니면
더 세밀하게 관찰해야 합니까?”
“테스트에서 바로 제외하는 건
득보다 실이 큽니다.”
하자르가 먼저 말했다.
“데이터가 귀합니다.
특히 이런 예외적인 패턴은요.”
그 말 자체는
학자의 대답처럼 들렸다.
“다만
내부안정국의 의견이 중요하겠죠.”
하자르가
슬쩍 말을 넘기자
민이 받았다.
“우리 입장에서는
관찰 강화 쪽에 무게를 둡니다.”
민이 말했다.
“SUBJ-α-3의
출입 경로,
훈련 패턴,
수면 패턴,
그리고—”
잠깐 멈추더니
그가 덧붙였다.
“자발적 움직임의 비율.”
자발적 움직임.
도시에서
사람들이 가장 적게 쓰는 단어였다.
“도시 규약 상
자발적 움직임은
개인의 자유 영역 아닙니까.”
라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민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부드럽게 웃었다.
“맞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래서
그 비율이 너무 낮아도 문제고,
너무 높아도 문제입니다.”
너무 낮으면
도시가 전부 움직여 주는 삶.
너무 높으면
도시가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의 삶.
둘 다
내부안정국이
달가워하지 않는 쪽이었다.
“우리는
SUBJ-α-3의
자발적 움직임 비율이
최근 일주일 사이에
평균 대비 12% 상승한 것을
관찰했습니다.”
회의실 몇몇 시선이
서서히 요엘 쪽으로 돌아왔다.
“야간 보행,
비효율 동선 선택,
승인 경로를 벗어난 우회—
이런 것들이 있죠.”
“개인 사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안이 말했다.
“갑작스런 건강 염려라든가…”
“물론입니다.”
민이 끊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직접 질문하는 쪽을 택합니다.”
스크린 우측 하단에
작은 창이 하나 떴다.
[SUBJ-α-3 : 연구직 / 모션랩 / 남 / 30대 초반]
지금 이 방에서
그와 같은 조건에 맞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요엘 씨.”
민이 이름을 불렀다.
익명성은
이쯤에서 끝이었다.
“네.”
그가 짧게 답했다.
“최근
이른 출근과 야간 보행이 잦았던 이유,
간단하게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단지
내부안정국의 질문 때문만은 아니었다.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다.
이 방에서 누가 어떤 말을 하는지가
이후 어떤 서류에
어떻게 적힐지를.
요엘은
거짓말을 할까
잠시 고민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라는 건
절반쯤 진실이었다.
몸이 불편했다,
라는 것도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 밤마다
폐 안쪽 선이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었다는 건
설명할 수 없었다.
“불면이 좀 있어서요.”
그가 말했다.
“가만히 누워 있는 게
오히려 숨이 더 가빠져서.
몸을 조금 움직이는 게
편해서 그랬습니다.”
민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목소리로
“그럴 수 있죠.”라고 말했다.
“PRNA-α 도입 초기에는
일시적인 감각 변화가
보고되기도 합니다.
그런 경우
스스로 움직이고 싶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반응일 수 있습니다.”
그 말은
정확히 맞기도 하고
정확히 틀리기도 했다.
“다만,”
민이 덧붙였다.
“그 움직임이
도시에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만
확인하면 됩니다.”
요엘은
그 문장을
한 번 천천히 속으로 따라 읽었다.
도시에 위협적이지 않은 움직임.
“필요하다면
개별 상담을 요청하셔도 됩니다.”
민이 말했다.
“저희 쪽에서
적절한 진단과
안정화 계획을 도와드리죠.”
안정화 계획.
그 말을 듣는 순간
폐 안쪽 선이
거꾸로 비틀렸다.
방금까지
궤적의 방에서 겹쳤던
몸의 선들이
순식간에 정지되는 느낌.
“괜찮습니다.”
요엘이 말했다.
“지켜보겠습니다.”
민은
더 묻지 않았다.
“좋습니다.
그럼
SUBJ-α-3 관련 내용은
여기까지로 하죠.”
그 말은
‘당분간은’이라는 단어를
조용히 숨기고 있었다.
회의는
두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도시 전체 패턴 리뷰,
연령대별 진폭 변화,
낙상 위험군의 변화,
배터리 사용량 최적화.
모든 것이
숫자로 설명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 와중에도
요엘은
자신의 어깨와 척추,
골반과 발목이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계속 의식했다.
너무 얌전히 앉아 있지 않게,
그렇다고
눈에 띄지 않게.
몸 안쪽 선은
회의실 천장과
스크린 사이를
아주 느리게 오가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오늘의 공식 안건입니다.”
이안이 마무리했다.
“추가 질문 있으신가요?”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이상 말을 만들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럼
내부안정국과
민간 모듈 연합에
감사를 전합니다.”
이안이 인사하자
민이 먼저 답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앞으로도
안정적인 협력 부탁드립니다.”
안정적인 협력.
그 말은
협력을 안정화하겠다는 말처럼 들렸다.
하자르가
조금 늦게 인사를 했다.
“오늘 데이터,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특히
예외 패턴들.”
그녀의 시선이
다시 한 번 회의실을 쓸고 갔다.
이번엔
분명히 요엘 쪽에서
한 번 멈췄다.
“숨이 막히지 않게 관리하는 게
저희의 역할이겠죠.”
하자르가 덧붙였다.
“너무 답답해지면
사람들이
엉뚱한 방향으로 터지니까요.”
숨,
방향.
두 단어가
한 문장 안에서
가볍게 맞닿았다.
누가 들으면
그냥 비유처럼 들릴 말이었다.
그러나
요엘은
자신의 폐 안쪽이
그 순간
아주 짧게 반응하는 걸 느꼈다.
하자르는
그 반응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듯한 얼굴을
아주 잠깐 지었다가
바로 지웠다.
“다음 주에도
좋은 데이터, 기대하겠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회의는 끝났다.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라나는
서둘러 단말기를 챙기고 있었다.
“괜찮아?”
그녀가 지나가며
작게 물었다.
“아까…
네 얘기가 너무 많이 나와서.”
“괜찮아.”
요엘이 말했다.
“원래
예외값은
보고서에서 눈에 띄잖아.”
“예외값이 있는 덕분에
모델이 좋아지는 거긴 한데.”
라나가 씁쓸하게 웃었다.
“모델이 좋아지면
예외값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지지.”
그 말이
어디까지 농담인지
어디까지 진담인지
둘 다 알고 있는 사람들의 웃음이었다.
라나가 나가고
회의실이 거의 비었을 때,
이안이
요엘을 불렀다.
“잠깐만.”
요엘은
천천히 돌아섰다.
“오늘 건,
미리 말해 줬어야 하는데.”
이안이 말했다.
“내부안정국이
네 코드에
표시를 해놨더군.”
“괜찮습니다.”
요엘이 말했다.
“어차피
모두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이었겠죠.”
“그래도
조심해.”
이안이 낮게 말했다.
“요즘
도시는
몸이 아니라
움직임을 먼저 본다.”
그 말은
경고이자
어떤 편의 표시이기도 했다.
“네 움직임이
도시가 이해할 수 있는 방향이면 좋겠고,
그렇지 않다면…”
이안은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모션랩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을 수 있다.”
요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는
‘알겠다’라는 말이
이 도시에서
얼마나 자주
이해가 아니라
포기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지
잘 알고 있었다.
회의실을 나오려는 순간,
복도 모퉁이에
누군가 서 있었다.
“요엘 씨 맞죠.”
민이었다.
원격 목소리로만 듣던 사람을
실제로 보는 건
이상한 감각을 동반했다.
그는
평범한 회색 수트를 입고 있었고,
목소리와 마찬가지로
표정도 정제돼 있었다.
“잠깐만
시간을 내 주실 수 있을까요?”
민이 물었다.
“공식 면담은 아닙니다.
기록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 말은
대표적인
공식 면담 사전 멘트였다.
“네.”
요엘이 말했다.
둘은
복도 끝 작은 휴게 구역으로 이동했다.
자동 판매기의
음료 소리가
백색 소음처럼 흘렀다.
“아까
회의에서
너무 부담을 드리진 않았는지 모르겠네요.”
민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요엘이 답했다.
“SUBJ-72에 대해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민이
갑자기 다른 주제를 꺼냈다.
“…조금은요.”
요엘이 솔직하게 말했다.
“저희가
많은 것을 말해 드릴 수는 없습니다.”
민이 말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습니다.”
그가
잠시 말을 멈췄다.
“SUBJ-72는
당신보다 먼저
비슷한 움직임을 했던 사람입니다.”
폐 안쪽 선이
살짝 요동쳤다.
“지금은
어디에 있습니까.”
요엘이 물었다.
민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말했다.
“도시 밖입니다.”
도시 밖.
물리적인 밖인지,
측정되지 않는 쪽인지,
대답은 애매했다.
“자세한 위치는
저희도 알지 못합니다.”
민이 덧붙였다.
“다만
이 패턴을 통해
이 사람이
아직 죽지는 않았다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죠.”
그 말은
위로와 경고를
동시에 담고 있었다.
“도시는
밖을 싫어합니다.”
민이 말했다.
“특히
측정되지 않는 움직임을.
그래서
저희가 있는 겁니다.”
내부안정국.
도시가 모르는 것을
조금 덜 모르는 기관.
“당신이
어디까지 가게 될지
우리는 모릅니다.”
민이 말했다.
“다만
가는 동안
도시가
당신을 ‘안정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서류를 작성할 뿐입니다.”
“그게…
도와주는 겁니까,
막는 겁니까.”
요엘이 물었다.
민은
살짝 웃었다.
“둘 다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우리는
기록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도시에서
기록되지 않는 움직임은
곧 존재하지 않는 움직임이 되니까요.”
그 말은
궤적의 방의 빛나는 선들을
거꾸로 뒤집은 버전 같았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민이 말했다.
“최근
도시 도면에 없는 공간에
들어간 적 있으십니까.”
폐 안쪽의 점이
딱, 하고 굳어졌다.
“예를 들어
미등록 지하 통로,
문서에 없는 방—
그런 곳 말입니다.”
요엘은
잠시 침묵했다.
거짓말을 할 수 있었다.
여기서 아니라고 말해도
바로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도시의 지도에는
그 방이
없었으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저는
도시가 보여주는 지도 외에는
아는 게 없어서요.”
민은
그 대답을
곧이곧대로 믿지도,
의심하지도 않는 표정이었다.
“그렇겠죠.”
그가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습니다.”
그 말 안에는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라는
숨은 문장이 있었다.
“오늘 만남은
여기까지입니다.”
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으로도
건강한 움직임 유지하시길 바랍니다.”
건강한 움직임.
안정적인 움직임.
도시가 좋아하는 움직임.
민은
그 세 단어를
굳이 구분하지 않는 사람처럼
걸어 나갔다.
그날 밤,
요엘은
또다시 푸라나를 열려고 했다.
벽면 패널에
어제와 같은 아이콘이 떠 있었다.
[PRNA-α / 연동 인터페이스 : 푸라나]
그러나
아이콘을 눌렀을 때
나타난 화면은
어제와 달랐다.
새로운 문구가
상단에 추가돼 있었다.
[업데이트:
사용자 안전을 위한
감각 지도 보기 제한 기능이
추가되었습니다.]
“제한 기능이래.”
그가 중얼거렸다.
“시스템 패치 노트 읽어 드릴까요?”
네메시스가 물었다.
“됐어.”
요엘이 말했다.
대신
그는
패널 앞에 서서
어깨와 척추를
천천히 움직였다.
궤적의 방에서 했던 것처럼.
도시는
여전히
자세 교정을 권하지 않았다.
화면 안쪽에서
작은 흔들림이 보였다.
데이터 노이즈처럼
보였다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어떤 종류의 노이즈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은 알게 된 사람이었다.
“네메시스.”
그가 말했다.
“지금
내 움직임,
실시간으로 기록되고 있지?”
“예.”
AI가 답했다.
“PRNA-α 연동 상태에서
사용자 움직임은
감각 지도로 변환되고 있습니다.”
“그 지도,
내가 볼 수는 없는 거지.”
“업데이트 이후
일반 사용자에게는
제공되지 않습니다.”
“내부안정국은?”
요엘이 물었다.
“요청 시
검토 권한이 있습니다.”
그 말은
당연한 사실이었지만,
오늘 하루 내내
자신의 움직임이
어디로 흘러 들어갔는지
알고 난 뒤라서
더 무겁게 들렸다.
“내가
조금 이상하게 움직이면
그 사람들 화면에는
어떻게 보일까.”
그는
푸라나 화면 앞에서
아주 작은 움직임을 해봤다.
왼쪽 어깨를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내리고,
오른쪽 골반을
조금만 앞쪽으로 밀고,
척추 마디 두 개를
서로 다른 방향으로 틀었다.
수치상으로는
표준 범위 안에 머무르는
미세한 변화.
그러나
폐 안쪽 점은
즉각 반응했다.
지도 조각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번엔
궤적의 방뿐 아니라
모션랩 회의실,
복도,
민의 시선,
하자르의 말투까지
모두 선으로 이어졌다.
도시가
그를 바라보는 시선과,
데오크반이
그에게 건네는 방향 사이에
얇은 선 하나가 생겼다.
그 순간
푸라나 화면이
한 번 깜빡였다.
패널이 꺼진 건 아니었다.
오히려
앞에 없던 작은 문장이
하단에 잠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두 번째 집이 열렸습니다.]
“방금,
뭐라고 뜬 것 같지 않았어?”
요엘이 빠르게 물었다.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는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네메시스가 말했다.
“화면 노이즈일 수 있습니다.”
노이즈.
이 도시에선
무시해도 되는 것과
절대 무시하면 안 되는 것
둘 다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요엘은
눈을 감았다.
두 번째 집.
첫 번째는
궤적의 방이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집은 어디일까.
도시 시스템이
부인하는 집인지,
데오크반이
열어 준 집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폐 안쪽 선이
조용히 움직였다.
오늘 하루 동안
표면 위에서 일어난
모든 움직임 아래로
얇은 또 다른 움직임이
깊게 새겨지는 느낌이었다.
잠자리에 눕기 전,
요엘은
방 불을 끄지 않았다.
네메시스가
조명 밝기를 자동으로 낮추며 물었다.
“수면 모드를
지금 시작할까요?”
“아직.”
그가 말했다.
침대에 등을 대고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도시가
보여주지 않는 지도 위에
자기 몸의 지도가
어떻게 겹쳐질 수 있는지
생각했다.
SUBJ-72.
도시 밖.
죽지 않은 흔적.
쿠르티아 계열 진동 패턴.
데오크반.
힘의집.
두 번째 집.
“네메시스.”
그가 불렀다.
“네.”
“오늘
내 움직임 로그는
어디에 저장돼.”
“도시 중앙 데이터 허브와
내부안정국 관제 서버,
그리고
모션랩 연구 서버에
동기화됩니다.”
“삭제 요청은,
못 하지.”
“일부 비식별화는 가능하지만,
완전한 삭제는
규약 상 불가능합니다.”
숨은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그걸 위협이라고 부르겠지만,
어딘가에선
그게 길이 될 수 있다는 걸
이미 알게 됐다.
“알았어.”
그가 말했다.
“오늘은…
그냥 기록하게 둬.”
“네.”
AI가 조용히 답했다.
“해석은 하지 말고.”
그 말까지 덧붙이자
폐 안쪽 선이
안정된 듯이
조금 가라앉았다.
언젠가
이 모든 기록들이
도시의 안정화 회의에서
위험 요소로 묶일 수도 있다.
혹은
언젠가
이 모든 기록들이
힘의집 어딘가에서
길의 재료로 쓰일 수도 있다.
둘 다 동시에
가능한 미래였다.
요엘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도시는
자기 리듬으로
진동하고 있었다.
그 안에서
작은 다른 리듬 하나가
막 생겨나고 있었다.
도시 밖으로 나간 사람의 리듬과,
도시 안에서
두 번째 집을 연 사람의 리듬이
언젠가
어디선가
겹쳐질 것이다.
그게 언제인지는
아직 몰랐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