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된 사나이 7화
아이들에게
얘들아,
이 글은 지금은 너희가 다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커서 다시 읽게 될 편지야.
아빠가 한국을 떠나기 전날,
집을 나서면서 너희에게 이렇게 말했지.
“아빠가 은메달 하나 따올게.”
그 말이
아빠에겐 약속이었고,
너희 앞에서 조금 멋진 사람이 되고 싶은
작은 허세이기도 했어.
아빠는 이번 추석 연휴에
이란이라는 먼 나라에서 열린
국제 대회에 다녀왔어.
아빠가 하는 운동은
‘주르카네’라는 고대운동이야.
힘만 센다고 되는 운동도 아니고,
빠르기만 하다고 잘하는 운동도 아니야.
호흡, 리듬, 균형,
그리고 자기 몸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끝까지 느끼고 있어야 하는 운동이지.
경기를 마쳤을 때
아빠는 스스로에게 말했어.
“잘했다.”
실제로
경기장에서는
아빠가 2위라고 발표되었고,
아빠도, 함께 간 동료들도
잠시나마 기뻐했단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어.
결과가 뒤집혔고,
아빠는 메달을 따지 못했어.
아빠도 많이 실망했고, 화도 났어.
‘왜?’
‘이유는 뭐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지?’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어.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이상하게도
다른 얼굴들이 떠오르더라.
한국에 두고 온
너희 얼굴,
그리고 엄마 얼굴.
그때 엄마는
셋째를 임신하고 있었지.
몸도 마음도 쉽지 않은 시기였는데,
아빠를 말없이 보내줬어.
그리고
아빠가 흔들리지 않도록
집을 지켜주고 있었지.
그 순간
아빠는 알았어.
아,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내 실력 때문만은 아니었구나.
얘들아,
아빠는 이번 대회에서
아주 중요한 걸 하나 배웠어.
‘처음자리’라는 거야.
처음자리는
잘났다고 착각하던 자리에서 내려와
지금의 나를 정확히 바라보는 자리야.
아빠가 10년 전, 처음 국제대회에 나갔을 때도
결과는 이번과 똑같이
5위였어.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고,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 상태였지.
10년이 지나
아빠는
“이 정도면 되지 않나”
하고 스스로를 조금 높여두고 있었던 것 같아.
이번 일은
아빠를 다시 그 자리로
돌려보냈어.
그리고 그제서야 알았어.
겸손은
고개를 숙이는 척하는 게 아니라,
내가 서 있는 위치를 정확히 아는 것이라는 걸.
위치를 아는 감각, 고유감각 훈련을 가르치는 사람이면서
정작 내 위치는 잘 몰랐다는 게 웃기지.
실제로 이란 주르카네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덕목이 바로 겸손이래.
고유감각과 겸손이 이렇게 연결될 줄이야.
얘들아,
아빠는 은메달을 따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어.
그래서
조금 부끄럽고, 미안해.
하지만
아빠는 이번에
더 중요한 걸 하나
너희에게 보여주고 싶어.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
사람이 어떻게 다시 서는지.
넘어졌을 때
핑계를 찾는 대신
자기 자리를 다시 찾는 법.
그리고
혼자 서 있다고 착각했지만
사실은
가족과 동료 위에 서 있었다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 말이야.
아빠는 이제
다시 훈련할 거야.
다음에는
누가 뭐라고 해도
결과가 뒤집히지 않을 만큼
압도적인 실력을 만들려고 해.
아빠가 말하는
‘진짜 2위’는
메달 색깔이 아니라,
누가 봐도
“저 사람은 그 자리에 있을 만하다”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자리야.
얘들아,
아빠는 여전히 부족한 사람이야.
하지만
너희의 아빠로서
계속 배우는 사람이고 싶어.
처음자리로 돌아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겸손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
언젠가
너희가 실패했을 때
이 편지가 떠올랐으면 좋겠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자기 자리를 다시 찾는 순간일 수도 있다는 걸.
사랑한다.
그리고 고맙다.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