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된 사나이
애들아,
오늘은 너희에게 “숨통”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그런데 이 편지를 쓰게 된 계기부터 먼저 말해야겠지. 아빠에게 “숨”이라는 게 단순히 공기나 호흡이 아니라, 정말로 생명의 문처럼 느껴지게 된 사건이 하나 있거든.
요엘, 그러니까 우리 첫째 형아가 아직 신생아였을 때 일이야. 그때 아빠랑 엄마는 뭐든 서툴렀어. 안는 것도, 눕히는 것도, 문 하나 여닫는 것도 조심스럽고 긴장됐지. 그런데 어느 날, 정말 찰나였어. 형의 머리가 안방 문에 살짝—정말 “살짝” 부딪혔는데, 그 순간 아빠 심장이 쿵 내려앉더라.
우리는 바로 형을 들여다봤어. 울음소리, 눈동자, 표정… 괜찮은지 확인하는데, 정수리를 보는 순간 아빠랑 엄마 얼굴이 하얘졌지. 정수리가… 살짝 움푹 들어가 있는 거야.
“헐, 아불싸… 큰일났다.”
초보 아빠와 엄마였던 우리는 그걸 ‘응급상황’으로 느꼈어. 한밤중이었지만 지체할 수가 없었지. 부랴부랴 산부인과로 달려가서 당직 선생님을 만났어. 우리는 거의 울먹이며 설명했지. “아기 머리가… 정수리가… 들어갔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형의 머리를 차분히 보고는 아주 담담하게 말하더라.
“이건 다친 게 아니고… 숨구멍이에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빠는 정말 말 그대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어. 그 한숨이 얼마나 길고 깊었는지 몰라. 그리고 그 단어가 이상하게 오래 남았지. 숨구멍.
‘숨이 드나드는 구멍’이라는 말이, 그때는 그냥 의학적인 설명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빠 안에서 조금씩 다른 뜻으로 자라더라.
아들아, 아빠는 요즘 “우리 몸은 숨의 통로로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해. 우리는 흔히 “내가 숨을 쉰다”라고 말하지만, 아빠는 조금 다르게 느껴져. 우리가 숨을 억지로 끌어오고 밀어내는 게 아니라, 숨이 우리 몸에 깃드는 것 같아. 마치 바람이 창문 틈으로 들어와 방 안을 조용히 채우듯이 말이야. 숨은 힘으로 붙잡을수록 거칠어지고, 자리를 내어줄수록 더 부드럽게 들어오더라.
그래서 아빠는 몸을 “숨이 지나가는 길”로 생각하려고 해. 그 길이 좁고 울퉁불퉁하면 숨은 여기저기 부딪히고, 우리는 금세 지치지. 반대로 그 길이 편안하면, 숨은 고속도로처럼 막힘없이 지나가. 목이 부드럽고, 가슴이 열리고, 배가 편안해지면 숨은 스스로 자기 길을 찾아 흘러가.
너도 가끔 긴장되거나 화가 날 때가 있지? 그때 어깨가 올라가고 턱이 굳고 배가 딱딱해질 거야. 그건 네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야. 그냥 “숨통이 좁아진 상태”일 뿐이야.
아들아, 숨통을 넓힌다는 건 특별한 기술이 아니라 몸을 조용히 비켜주는 일이야.
‘숨을 크게 쉬어!’라고 억지로 시키기보다, 이렇게 해보면 좋아.
턱을 살짝 풀고, 혀를 편안히 두고, 어깨를 아래로 내려놓고, 배를 단단히 잡지 말고 잠깐 놓아줘. 그러면 숨이 “아, 여기 들어와도 되겠구나” 하고 네 안에 스며들 거야. 그 순간 너는 느낄 거다. 숨을 쉬는 내가 있는 게 아니라, 숨이 나에게 깃들어 생명이 된다는 걸. 우리가 그렇게 지어졌단다. 성경에도 나와.
그리고 이것도 아빠가 너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야. 숨통이 열리면 마음도 같이 열린다. 불안이 조금 멀어지고, 화가 빨리 지나가고, 슬픔도 숨을 얻어서 움직일 수 있어. 숨이 막히면 감정은 갇히고, 숨이 트이면 감정도 지나가. 그러니까 숨은 단지 공기가 아니라, 네 안의 길을 여는 열쇠야.
애들아, 너흰 앞으로 많은 길을 걷게 될 거야. 잘되는 날도 있고, 뜻대로 안 되는 날도 있겠지. 그런데 어떤 날이든 너에게는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길이 하나 있어. 바로 너의 숨통이야. 몸을 통로로 만들고, 숨이 편안히 지나가게 해줘. 그러면 너는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너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야.
아빠는 네가 커서도, 힘들 때마다 이 말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내가 숨을 쉬는 게 아니라, 숨이 내 몸에 깃든다.”
그리고 아빠는 가끔 그날 밤을 떠올려. 한밤중 병원에서 “숨구멍이에요”라는 말을 듣고, 우리가 살았다는 듯이 내쉬던 그 한숨을. 그때의 한숨은 단순한 안도가 아니라, 어쩌면 처음으로 “숨”이라는 생명의 깊이를 배운 순간이었는지도 몰라.
오늘도 숨이 너에게 편안히 깃들기를.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