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란 무엇일까.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어차피 수능에 필요한 대부분의 지식은 학원이나, 나처럼 인터넷 강의로 다 끝나는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자꾸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럴까, 학교에 가는 게 너무나 싫다.
그들도 경차로 데려다주는 번거로움을 반복하기보다는 차라리 집에서 인터넷 강의나 보면서 생활하는 게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도 생각해 봤다. 그러나 결코 그것을 허락할리 없는 존재가 내가 살고 있는 그곳, 14층의 감옥에 두 명이나 존재해 있다.
한때는 그들을 엄마와 아빠로 불렀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더 이상 그렇게 부를 수 없었다. 어느 순간 그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게 됐으며, 눈, 코, 입이 있어야 할 그곳은 새하얀 도화지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출근 시간에 맞추기 위해 횡단보도가 3개 떨어진 곳에 내려준 뒤, 그 회색 경차는 차들이 천천히 줄지어 가는 무리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문득 그 상황이 부럽게 느껴졌다. 저 수많은 차들은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고, 결국 목적지에 도달할 테니까.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심지어 움직이지 조차 못하는 것 같았다. 그냥 학교라는 정해진 장소에 목적 없이, 누군가가 지시하니 터벅터벅 걷고 있는 것 같았다. 다행히 그 사람의 출근이 이른 편이라 언제나 교실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자리에 앉아있으니 또다시 시작될 끔찍한 하루가 두려워졌다. 매일 차 안에서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말은 이어졌고, 그 벌레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그 존재가 원망스러웠다. 아니 알아주었으면 했다. 한 번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냥 알았으면 했다.
그래도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느끼는 잠깐의 정적이 평화를 느낄 수 있었다. 고요함에 몸을 맡기고 오늘 하루는 제발, 제발을 속으로 끝없이 되뇌고 있었다. 그 침묵이 채 이어지기도 전에 어디선가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1번!”
이 외침과 함께 몇몇의 사람이 교실로 들어왔다. 같은 교복을 입고 있어 전혀 누군지 알 수 없는 그들을 흐릿한 눈으로 바라봤다.
제일 먼저 교실에 들어온 사람은 전력 질주를 하듯 내게 달려왔고, 손바닥으로 등을 세게 후려쳤다. 아직 소음이나, 다른 소리가 존재하지 않던 교실에서 등과 손바닥 사이에서 나는 소리가 힘차게 울렸고, 살짝 눈물이 고이는 기분이 들었다.
“아파? 그냥 반가워서.”
분명 등은 후끈후끈 달아올랐고, 손바닥 모양으로 무엇인가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아프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저 괜찮다고 말할 뿐이었다. 반갑다는 표시라고 하는데 화를 낼 수 없었다. 아니 나에게는 화를 낼 권한조차 없었다.
만약 화를 낸다면 더 큰 일들만 다가올 것이고, 그저 그들에게 투명 인간처럼 느껴지기를 바랄 뿐이었다. 아니 그들에게 있어 나는 자주 투명 인간이었다. 자유 의지로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그 형태를 보이게 하는 것이 나의 의지가 아니었다. 다행히 그들은 지금뿐이다. 곧 자신들의 자리 근처로 가서 이따금 무엇인가를 던질 때를 빼면 없는 사람 취급할 것이다.
그들이 자신들의 위치로 가면서, 하나, 둘 다른 사람들이 교실로 들어온다. 모두가 같은 교복을 입고 있어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입고 있는 교복이 치마일 때, 여자라는 성별을 갖고 있다는 것을 유추할 뿐이다.
이때,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고,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다른 이들과는 조금 달랐다. 그와 함께하는 그룹이 교실로 들어왔고, 그는 다른 이들과 다르게 흐릿하게나마 눈, 코, 입이 정상적인 위치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는 슬쩍 웃으며 소리쳤다.
“강상기!”
그 소리에 몸이 자동으로 반응하듯, 엉거주춤한 자세로 몸을 일으켰다. 그 모양새는 일어난 것도 아니고, 앉아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아주 조금 엉덩이를 들어 올렸을 뿐이다. 한 그룹이었지만 그의 뒤로 두, 세 명의 아이들이 있었고, 그는 큰 키에 걸맞은 긴 다리로 성큼성큼 내 근처까지 왔다.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의자 뒷부분을 걷어찼다. 의자는 원래 있어야 할 자리를 찾은 듯 뒤쪽으로 튕겨나갔고, 나는 그 자리에서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바닥을 집기도 버거웠다. 그대로 턱을 교실 바닥에 떨굴 수밖에 없었다. 아픔도 잠시, 이런 무기력한 투명 인간이라는 나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어휴 병신아, 그걸 또 바닥에 헤딩을 하고 있네.”
낄낄거리는 그들은 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나의 등 뒤에서 하염없이 웃었다. 조금만 참으면 됐다. 나의 이름을 불러주는 황철홍을 제외하면, 모두가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니 괜찮았다. 곧 사라질 이런 아픔보다는 그 뒤에 그가 말로 찌를 고통이 더 걱정됐다.
“쓰레기 새끼, 벌레 새끼.”
그가 무슨 말을 하건 웃어대는 녀석들 중 한 명이 웃음을 참아가며 한마디를 던졌다.
“저러다, 이 새끼 자살하고 우리 학폭으로 걸리는 거 아님?”
그의 말에 철홍은 더 크게 웃으면서 호탕하게 이야기했다.
“이 새끼는 죽을힘도 없는 새끼임, 그리고 죽으면 어때, 안 걸림.”
그의 말대로다. 나는 죽을힘도 용기도 없다. 그런 배짱이 있었다면, 투명 인간이 되는 고통을 벗어나려 발버둥 쳤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이 계속되는 와중에 황철홍이 교복 상의 깃 뒤쪽을 잡아서 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나는 힘없이 나부끼는 종이 인형처럼 그의 손에서 놀아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이 쓰레기 벌레 새끼야, 죽지 마, 너 죽으면 다른 애 또 찾아야 되잖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어차피 나는 그런 선택을 할 용기도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누군가 말려주길 원했다. 그만하게 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할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커다란, 그렇지만 다른 목소리에 비해 또렷한, 그 목소리가 들렸다.
“야 황철홍 그만 시끄럽게 하고 앉아, 좀 있으면 선생님 오신다.”
나의 시선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들도 분명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며 그녀를 바라볼 것이다. 어딘지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는 그녀는 눈이 부셨다.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졌다. 순간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다가 이런 표정 변화를 들킬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는 내 옷깃을 놓아주었고, 그렇게 나는 슬슬 투명 인간이 되고 있었다.
“올, 송은민, 정의의 반장님, 멋있네.”
그의 비아냥 거림에 그녀는 노려볼 뿐이었다. 그리고 이내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단지 그 대상이 철홍이 아니라 나였을 뿐이다. 부끄러웠다. 부끄러움을 못 느꼈던 것 같은데 부끄러웠다. 숨고 싶었다.
흐릿한 황철홍과 다르게, 그 누구의 얼굴도 보이지 않는 것과 다르게, 선명한, 뚜렷한, 아름다운, 매력적인 눈, 코, 입을 갖고 있는 그녀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랬으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