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나는 투명 인간이 되었다.
금방 전까지 의자가 걷어차이고, 교실 바닥에 나뒹굴며 바닥에 턱을 찧었던 1번 강상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둘의 대화가 이어졌던 것처럼, 내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건 의자에 앉아있건 전혀 모르듯이 모두의 시선이 둘이 서 있는 빈 공간으로 향한 것 같았다.
겨우 서너 발짝 떨어져 있는 철홍과 선민의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나는 그저 일어나서 그 안으로 딱 한 발, 혹은 두발만 가면 되는데, 그녀가 듣고 있을 그 이야기들을 내가 대신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냥 일어나서 벽으로 가있던 의자를 가져오는데 나의 발을 이용했다. 조금만 용기가 있더라면, 당당하게 그 사이에 설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지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어차피 망상으로만 눈앞에 맴돌다가 사라질 헛된 목소리일 뿐이었다.
“정의감 쩌네, 그렇게 정의로우면 나랑 한번 자자, 그러면 그만둘 수도?”
끝까지 투명인간 취급하지, 왜 하필 내가 그 모욕의 대상으로 쓰이는 걸까. 나는 투명 인간도 제대로 못 되는 것 같았다. 그럴수록 아직까지도 그녀의 편을 들어주지 못하는 내가 너무 한심했다.
“너 그거 성희롱인 건 알고 있지? 녹음해서 신고 한번 받아봐야 정신 차리지?”
당당했다. 나와는 너무 달랐다. 그의 모욕적인 말에 전혀 상처 입지 않은 듯 전부 맞받아 쳤다. 어디서 저런 모습이 나오는지 궁금했다. 나랑 키는 비슷하지만 훨씬 얇은 몸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저럴 수 있는지 궁금했다.
“응 어쩔, 우리 할아버지가 이사장인 건 알고 있지? 그런 거 없던 걸로 하면 그만임.”
정말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논쟁은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만약 가능하다면, 내가 몰래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다, 그것 또한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반쪽짜리 투명 인간에 불과하다. 어쩌면 유령인지도 모르겠다. 손으로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는 것들이 널려있다. 어쩌면 그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것은 내가 유령이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면 투명 인간이 되면서 눈도 투명해져 제대로 분간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온갖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을 때, 누군가 들어온다.
“왜 이리 시끄러워, 선민이랑 철홍이 자리에 앉고.”
둘의 논쟁을 중재하는듯한 목소리는 특별한 소란 없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사실 어딘가 부드러웠지만 만들어진 것만 같은 목소리였다. 그런 생각이 드는 이유를 생각했지만, 이내 그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자 빈자리 없지? 오늘 지난번에 봤던 모의고사 성적표가 나왔다. 각자 가져가고, 부모님들에게는 연락 다 갔으니까, 어쭙잖게 숨기지 말아라. 그리고 1번, 조회 끝나고 교무실로 오도록. 반장은 얘들 폰 걷어오고. 수업 잘 받고 간단히 끝낸다.”
기회였다. 그녀와 단 둘이 갈 수 있는 기회였다. 교무실까지 고작 몇 걸음 되진 않지만, 이런 기회가 또 있을까 싶었다. 그녀는 조그만 종이 상자에 포스트잇이 붙어 있는 휴대폰들을 담기 시작했다. 그녀의 수거가 모두 끝난 뒤, 함께 교실 밖으로 나섰다.
나는 그녀보다 한, 두 발짝 정도 뒤에서 걸어갔다. 마치 그녀의 뒤를 좇아가는 모양새 같기도 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러면서 시선은 그녀의 발 뒤꿈치를 향하게 했다. 그런데 그녀의 발이 갑자기 멈췄다. 나는 놀라면서 고개를 들었다.
“한심하게, 강상기. 적당히 받아칠 생각 없어? 맨날 당하고만 살 거야?”
그녀가 나에게 말을 걸어주었지만, 부끄러웠다. 그녀의 목소리가, 오히려 더 아프게 나를 찌르는 것 같았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고민하다 입 밖으로 나온 목소리는 갈기갈기 찢긴 종잇조각 같았다.
“그.. 그러니까, 나.. 나는..”
너무 긴장했기 때문일까, 더듬더듬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차라리 투명 인간이 됐으면 좋겠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로 그냥 편하게 선민이를 보고 있고만 싶었다.
“됐다. 네가 알아서 해라.”
그 말을 끝으로 아무 말 없이 교무실로 향했다. 시선은 다시 그녀의 발 뒤쪽으로 향했고, 교무실까지의 길은 길고도 짧았다. 같이 있고 싶었기에 짧았지만, 결코 같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한없이 길었고 무거운 기분이 들었다.
교무실 한쪽 의자에 잠깐 앉아 있었다. 조회를 하던, 선생님으로 판단되는 사람 앞에서 그녀가 휴대폰이 든 상자를 내밀었다.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반장, 선민아. 너 이번에 성적이 조금 떨어졌어. 수시 합격할 것 같아서 방심했니? 너 성적 떨어지고, 대학 제대로 못 가면, 네 뒷바라지해주시는 어머니 억장이 무너지셔. 정신 바짝 차려. 선생님이 정말 네 친오빠 같아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 알고 있지?”
그녀는 언제나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했다. 고작 아주 조금의 성적만 떨어졌을 게 뻔한데, 저런 말을 하는 게 이해가 안 됐다. 그녀의 집안 형편이 어려운가 보다. 그게 부끄러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껏 냉정하게 보였던 그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아랫입술을 깨문 상태로 힘겹게 대답을 했다. 어쩐지 안쓰러웠다.
“됐다, 그만 가보고, 오늘 선생님이 야자 감독이니까, 다 끝나고 교무실 들러. 오늘 학원 안 가는 날 맞지?”
그녀는 그 말에 어설프게 대답하고 고개를 살짝 끄덕인 채로 뒤돌아서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녀와 아주 잠깐 눈이 마주쳤다. 뭔가 화난듯한 표정처럼 보였고, 눈매가 평소보다 날카롭게 느껴졌다. 점점 내 쪽으로 다가왔지만, 어차피 착각일 것이다. 분명 내 옆을 그냥 지나갈 것이고, 나는 그녀가 있던 위치까지 가야 할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그녀는 내 몇 발 앞에서 살짝 방향을 틀었고, 내 옆을 스치듯 지나갔다.
“소문내면 죽여버릴 거야.”
그 말을 뒤로 그녀는 교무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어차피 소문 낼 생각도 없고, 이야기할 사람도 없다.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더 확실하게 비밀을 지켜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그녀가 있던 위치로 갔다.
“1번, 너는 또 성적이 바닥을 치는구나. 맨날 야자도 안 하고, 너 학원도 안 다니면서, 어쩌려고? 너도 뭐 유튜버나 인플루언서 그런 거 하려고? 정신 차려. 성적 올리고, 부모님 중 한 분 학교 오시라 그래. 그리고 얼굴이 이게 뭐야. 싸웠니? 하여간 공부 안 하면 착실하기나 하지. 됐다 나가봐.”
교실로 돌아가는 길이 영원히 이어졌으면 좋겠다. 시간이 아예 멈춰버렸으면 좋겠다. 집에 가서 성적표를 보여줄 생각에 벌써 숨이 가빠 오는 것 같았다. 야자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언제나 방에 갇혀 인터넷 강의를 봐야 했다. 겨우 이런 생각을 했을 뿐인데 교실에 도착했다.
어차피 투명 인간이라 아무런 제재 없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이따금 무엇인가 날아오고, 누군가 옆을 치고 가기도 했지만, 그 외에는 완전하게 투명 인간이었다. 벌써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몇몇 아이들이 내일 보자는 인사들을 하며 교실 밖으로 나갔고, 일부는 남아있었다.
남아 있는 그녀를 뒤로 한 채 교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이후에 어떻게 집 앞까지 왔는지 잘 모르겠다. 고개를 들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몇 번 누르다 보니, 옆의 노란색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고장 수리 중이라고 흰색 종이에 빨간색으로 쓰여 있었다.
뒤쪽으로 몸을 돌려 끝이 없을 것 같은 계단을 올랐다. 14층까지 걸어 올라가는 길이 무척이나 길었지만, 또 짧았다.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지만, 벌써 도착했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숨소리가 입 밖으로 계속 흘러나왔지만 계속 이어졌으면 싶었다.
1401이라는 숫자를 바라보며 거친 호흡을 가다듬었다. 아니, 아무런 의미 없는 응시를 하며 들어가고 싶지 않음을 표현했다. 물론 지금은 아무도 없겠지만 그 안에 발을 뻗는 순간 느끼게 될 역한 감정이 충분히 예상됐기에 여전히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투명 인간인 나는, 아무도 반기는 이가 없는 나는, 갈 곳이 없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나는 체념한 채 스스로 수감되기로 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으로 들어갔다. 역시 무엇인가 답답한 공기가 온몸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해방되고 싶었다. 문 바로 옆의 방으로 들어갔다. 가방을 내려놓고, 잠시 서서 둘러보니 정말 별게 없었다. 책상, 책장, 교과서, 스탠드, 독서대, 모니터, 컴퓨터 본체, 키보드, 마우스, 낮은 침대가 전부인 방이었다. 창문은 컸지만, 쇠로 이루어진 창살이 촘촘한 모양으로 위치해 있어 마치 감옥 같았다.
창살을 가만히 쳐다보니 감옥에 갇힌 기분이 더욱 커져 비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 방에서 내게 허락된 것은 없었다. 컴퓨터가 있지만, 비밀번호를 몰랐다. 그냥 인터넷 강의를 보는 용도로만 사용 됐다. 책상 가까이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휴대폰을 꺼내서 시간을 확인한 뒤, 잠금 화면을 해제했다. 애플리케이션 다운로드로 가서 유튜브를 검색했다. 다운로드는 금방 끝났고, 검색창에 스파이더맨 1을 눌렀다. 그 영상을 소리를 죽인 채 보고 있었다. 그가 힘을 얻기까지의 모습들을 보았고, 힘을 얻고 나서의 모습을 보았다. 부러웠다.
나도 이런 힘이 있으면, 조금은 용기가 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도 잠시 비밀번호가 눌리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재빠르게 앱을 끄고 삭제했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듯한, 너무도 빠른 그 행동은 거미줄을 타고 빌딩 숲을 누비는 듯한 스릴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내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성적표 나왔다며, 선생님한테 연락 왔다. 가지고 나와.”
그의 거미줄이 공중 한가운데서 사라진 것처럼, 순식간에 바닥으로 추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