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by 감상자

눈을 떠보니 주변은 완전히 밝아있었다. 늘 완전히 해가 뜨기 전 일어났던 것과 비교하면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숫자로 환산하면 다섯 시간 정도가 흘렀을 뿐인데, 엄청난 차이가 느껴졌다. 피로함은 전혀 없었다.


굳이 평소와 다른 점을 찾자면 일어난 시간이 늦어진 것뿐이었다.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고, 손잡이를 돌리며 밖으로 나갔다. 웬일로 그 누구도 깨우려는 시도를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어쩌면 늦잠을 자서 급하게 나가느라 신경을 쓰지 않은 것 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식탁에는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늘 아침에 먹던 토스트가 놓여있었다. 토스터로 적당히 구워져 딸기잼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상태로 접시에 놓여져 나를 반기고 있었다. 늦었다는 것을 알려주듯 차갑게 식어 있었지만, 여유를 부리고 싶었다.


더 이상 학교에 가는 것을 두려워할 이유도, 싫어할 이유도 없었다. 그냥 두 발로 가면 될 뿐이고, 힘들어도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고, 선반에 놓인 유리컵에 가득 따랐다. 그때 약간 위화감이 느껴졌다. 세상이 작아진 기분이었다. 용기라는 것에 대한 생각이 이런 기분까지 느끼게 하는 것인지 새삼 놀라움을 느끼게 됐다. 그렇게 토스트와 우유를 모두 해치운 뒤 싱크대에 넣고, 물을 틀었다.


설거지를 하고 갈까 했지만, 그냥 물에만 담가두고 방으로 다시 돌아왔다. 옷걸이에 걸려있던 교복을 집어 팔을 넣고 셔츠의 단추를 채웠다. 그런데 평소와 다르게 꼭 맞는 기분이 들었고, 단추를 잘 못 끼워서 그런가 싶어 살펴보았으나 제대로였다.


이번에는 바지의 왼쪽 부분에 다리를 집어넣고 쭉 당겼다. 근데 길게 들어가야 할 거리가 무척 짧았다. 나의 발을 금방 바깥으로 나왔고, 위화감이 느껴졌다. 바지를 다 입고, 버클을 채운 뒤 제대로 섰는데, 평소라면 너무 길어서 바닥에 질질 끌리던 바지 밑단이 딱 맞았다. 헐렁하던 허리도 적절하게 맞았다.


놀란 마음에 화장실로 뛰어갔고, 거울을 보았다. 이제 보니 위화감의 존재는 나의 변화였다. 잠깐 자고 일어났는데, 키가, 몸이 커졌다. 언젠가 클 것이라며, 큰 사이즈의 교복을 그대로 입게 했던 누군가의 선택이 맞아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을 잠깐 만끽한 뒤 학교로 향했다. 사실 어떻게 학교 앞으로 온 것인지 모르겠다. 그 시간이 너무 순식간이었고, 사소하고 하찮게 느껴졌다. 그냥 눈을 몇 번 감았다가 뜬 것 같은데 교문 앞이었다. 평소에는 그곳을 넘어가는 순간부터 공포의 시작이었는데, 지금은 약간 설레기까지 했다. 내가 이런 변화를 겪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어쩌면 변한 것은 나의 태도뿐 일지도 모르겠다. 한발 나갔고, 그 때문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당당하게 맞설 수 있을 것 같았으며, 외형적인 변화는 그런 결심을 한, 그런 행동을 한 나에게 주는 선물인 것 같았다.


힘차게 발을 뻗어 마치 경계처럼 느껴지던 교문을 넘어섰다. 하지만 넘어서는 순간 현실감이 밀려왔다. 변했다고 해도, 내가 1번이라는 사실은 그대로였다. 커졌을 뿐, 나보다 거대한 그들은 작아지지 않은 그대로일 것이다. 설렘으로 뛰던 심장은 마주한 현실감 때문에 더 빠르게 뛰고 있었다. 진정하려고 깊게 심호흡을 내뱉었다.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많이 걸은 것도 아니며, 뛰어온 것도 아닌데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속으로 내가 어떤 짓까지 했는데, 그까짓 게 뭐라고라는 말을 반복했다.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을 하려고 했지만 심장은 계속 뛰고 있었다.


발이 교차할 때마다, 왼발과 오른발의 위치가 바뀔 때마다 공포와 용기가 교차하는 것 같았다. 과연 교실에 들어서는 마지막 한 발이 무엇일지 긴장이 됐다. 내가 제자리에 멈추면 어떤 상태로, 어떤 느낌으로 멈춰있을지도 궁금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주저앉아버릴 것 같았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 같았다.


어느 사이엔가 교실의 뒤 문에 다다랐다. 힘차게 문을 옆으로 밀었다. 드르륵 소리와 함께 교실과 복도가 하나가 됐다. 오른쪽 발을 앞으로 뻗어 교실로 들어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고개를 살짝 숙였고, 나의 발 끝이 보였다. 정수리에 시선들이 꽂히는 게 느껴졌다. 머리가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아주 긴 시간 고요함이 머무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마치 시간이 완전히 멈춰버린 것 같았다.


다행히 시간이 멈춘 게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한 것은 약간의 웅성거림 때문이었다. 아니 과연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평생 고개를 숙인 채 발 끝을 보고 있어야 할 것 같았지만 용기를 내서 고개를 서서히 들었다.


고개를 들어 확인한 광경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뻔했다. 교탁 근처에 서 있는 선생님의 얼굴이, 눈, 코, 입이 선명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교실에 있는 모든 존재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분명 얼굴로는 아무것도 알아보지 못해 칠판에 쓰여있는 내용으로 어떤 수업인지 판단했어야 했다. 그런데 모두가 각기 다른 얼굴로 있었으며,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아니, 지금의 나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정신은 저 멀리 아무런 저항 없이 떠다니고 있었다.


“뭐야, 자율 출퇴근이야?”


그 소리에 먼 곳까지 자유롭게 요행하던 녀석이 한순간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혹시나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냥 제자리에 얼어 있었던 것 같다. 선생님의 목에서 나오는 따뜻함이 몸을 녹인 것 같았다. 당혹스러움에 차라리 완전히 녹아 바닥에 흡수되길 바랐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 강상기입니다.”


그 말에 주변에 옅은 웃음이 퍼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저 병신이라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찔했다. 과연 내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아 적어도 두 명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둘이 있으니까 나는 강상기인 것이다. 투명 인간이 아니다. 그래 나는 투명 인간이 아니라는 말을 속으로 반복하며 커지는 심장소리를 감추기 위해 애썼다.


“뭐라는 거야, 몇 번이야, 출결 처리할 거야. 그리고 벌점 10점.”


“죄송합니다. 1번입니다.”


“그래 1번 강상기, 자리에 앉고. 반장은 자율 출퇴근 한 학우를 위해 오늘 필기한 내용들을 좀 보여주는 게 좋을 것 같다. 마침 수업 끝날 때 됐으니까, 점심 맛있게 먹고.”


그 말과 함께 교탁 위에 놓여있던 책을 들고 교실의 앞 문으로 선생님이 빠져나갔다. 분명 선생님이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나는 더 이상 투명 인간이 아닌가 보다. 당당하게, 뚜렷하게 나아갈 수 있었다. 아까까지 엄습해 오던 공포감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천천히 자리로 걸어갔고, 생각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책상을 보고 있었다.


“오 1번 강상기 씨 아주 지 꼴리는 대로 오시네요.”


아까 욕을 내뱉던 목소리였다. 그는 내 옆으로 다가왔다. 나보다 작은 키에 옆으로 길게 찢어진듯한 눈매, 콧구멍이 살짝 보이는듯한 코, 얇은 입술이 보였다. 그는 내 옆에서 당혹감을 느끼고 있었다.


“뭐야 이거, 왜 커졌어.


또다시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모든 시선이 쏟아지는 나에게 꽂히고 있었다. 여러 소리가 섞이면서 정확한 내용을 다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 갑자기 커졌다거나, 이상하다거나, 누구냐고 묻는 소리가 있었다. 이때 또렷한 목소리가 들렸다.


“뭐임 강상기, 님 전신 성형함? 아니 근데 얼굴을 그대 론데?”


키가 커졌음에도 여전히 나보다 큰 키, 짙은 쌍꺼풀, 빈틈이 없어 보이는듯한 눈썹, 날렵한 눈매, 높은 코, 다부진 입과 살짝 올라간 입꼬리의 그는 미남이었다. 흐릿했었지만 분명 황철홍이었다.


“그냥 자고 일어났더니.”


내가 말을 하고도 놀랐다. 전혀 떨리지 않았고,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말을 했다. 혹시 이 말을 하면서 투명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말했다. 나는 이제 전처럼 아무 말도 못 하고 강제로, 보이지도 않는 사람이 되지 않을, 그보다 더 대단한 행동을 한 사람이다. 어느 사이엔가 공포감 따위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창문으로 한 발을 뻗었을 때, 그런 결심을 했던 그때의 나만 남아있는 것 같았다. 그래 나는 당당해졌고, 변했다.


철홍은 당당하게 말하는 나의 목소리에 흠칫 놀라는 것 같았다. 이전처럼 바보같이 제대로 된 반응도 못한 채 가만히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했던 것 같다. 그 기대는 처참하게 무너졌고, 그는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그래봤자”


그렇게 말하며 그는 나의 의자를 걷어찼다. 하지만 나는 이미 서 있었고, 의자는 그저 혼자 구석에 처박힐 뿐이었다. 더 이상 바닥에 주저앉는 일이 없을 것만 같았다. 오히려 그의 행동은 과장되고 우습게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입술 사이로 웃음이 삐져나왔다.


“웃어?”


순간 멱살을 잡으려 손을 뻗는 그의 손을 손바닥으로 쳐버렸다. 그의 행동 자체가 느려진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제대로 쳐다보고 반응했을 뿐이었다.


용기 때문이건 외형적 변화 때문이건 그들의 행동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게 됐다. 그저 모든 행동들이 사소하고 별 것 아닌, 눈앞에 날아다니는 날파리를 쫓아내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잠시 나의 주변을 그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야 너희들 그만 시끄럽게 하고 밥이나 먹어. 계속 시끄럽게 굴면 선생님 모시고 온다."


나의 시선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들도 분명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며 그녀를 바라볼 것이다. 어딘지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는 그녀는 눈이 부셨다.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졌다. 순간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다가 이런 표정 변화를 들킬 것만 같았다. 하지만 모두가 그녀에게 집중했고, 그럴 걱정은 없었다.


“뭐냐 송은민, 아주 정의롭네, 대신 뒤지고 싶어?”


평소의 비아냥거림보다 더욱 날카롭고 거센 발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평소와 똑같이 그를 노려볼 뿐이었다. 역시나 이내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녀의 그런 태도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철홍은 성큼성큼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게 진짜”


그의 붉어진 얼굴과 커다란 손이 들어 올려졌다. 나는 순식간에 그 곁으로 튀어나가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만해, 할 말 있으면 나랑 풀어야지. 왜 엄한데 화풀이야. 나가자.”


나는 이제 더 이상 투명 인간이 아니었다. 내 손은 관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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