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붙잡힌 손목을 뿌리치는 철홍의 행동 이후 다시 심장이 요동치고 있었다. 스스로 되풀이했던 말들이 암시가 되었기 때문인지, 전과는 다르게 용기를 갖고 행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심장소리가 주변에 퍼지는 것 같을 정도였고, 그 어떤 것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철홍은 내 근처로 다가왔고, 팔을 뻗어 내 얼굴을 지나가면 팔꿈치가 얼굴의 위치에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그럴수록 더욱 진정할 수 없었지만 말을 이어나가야 했다. 어쩌면 그 소리를 감추고자 하는 행동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나가자. 네가 잘 가는 장소 있잖아.”
철홍은 어이없다는 듯 웃고 있었다. 나의 반항적 태도가 기분이 상했는지, 아까의 은민이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얼굴은 붉어져 있었다. 그는 이내 교실의 뒷문으로 나갔다. 그의 뒤를 따라 몇 명이 따라나섰고, 나도 그 뒤를 따랐다. 어떻게 이동했는지도 모를 만큼 빠르게 시간이 흐른 후, 쓰레기를 버리는 소각장 뒤쪽에 서 있었다.
그는 벽에 비스듬히 기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상태로 아까의 내 행동이 본인에게 수치감을 주었는지, 여전히 얼굴을 붉게 물들어 있었다. 무슨 말을 할지, 어떤 행동을 할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침묵은 그가 아닌 다른 이가 깨버렸다.
“1번, 님 어디 아픔? 대가리 부딪히면서 맛탱이 간 거 아님?”
아까의 그 녀석이었다. 순간 얼굴이 흐릿해졌지만 이내 정상으로 돌아왔고, 비릿한 표정으로 나에게 주먹을 뻗어 어깨 부근을 툭툭 쳤다. 너무나 가볍게 건드려서 아무런 느낌도 없었지만,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오른손을 뻗어 그의 가슴팍을 세게 밀었고, 그는 힘없이 넘어지며 큰 소리를 만들어 냈다.
나의 행동에 철홍과 함께 온 이들의 표정은 당혹스러움으로 변했다. 순간 철홍은 벽을 박차듯 튀어나오며 오른쪽 다리를 들어 나의 옆구리를 향해 내질렀다. 피할 수 없었다. 대신 가까스로 왼쪽 팔을 내리고 몸을 살짝 웅크려 막아냈다. 확실히 운동을 했는지, 팔이 욱신거렸다. 그러나 아프다고 표시하기보다는 그대로 몸을 틀어 오른쪽 어깨로 그를 밀어냈다.
그는 살짝 균형을 잃었지만, 이내 자세를 잡고 다시 주먹을 내질렀다. 쉴 새 없이 주먹을 뻗었고, 일부는 피했지만 대부분은 얼굴에 그대로 다가왔다. 양 팔로 얼굴을 감싸고 그의 주먹을 받아냈다. 그러면서도 그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계속해서 내지르다가 잠깐 지쳤는지, 그가 숨을 고르기 시작할 때, 누군가 지금이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내질렀고, 그의 얼굴에 그대로 직격 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는 뒤로 넘어졌다.
주먹이 엄청나게 아팠다. 아프다고 표현하기도 전에 비명에 가까운 울부짖음이 이어졌다. 그 소리는 수치심과 고통, 당혹감이 뒤섞인 것 같았으며, 알 수 없는 감정까지 느껴졌다.
“으아아아아, 씨발”
그는 이 괴성과 함께 벌떡 일어났고 나에게 다시 달려왔다. 하지만 같이 따라온 아이들이 그를 말렸다. 그는 발버둥 쳤고, 상황은 점점 심각해져 가고 있었다.
“철홍, 야야! 진정해, 선생들이 우리 봤어”
소각장 뒤쪽이 아무리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곳이어도, 방금의 소란으로 시선을 끈 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창문들로 여러 아이들이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사각지대에 근접해 있어서 자세히 볼 수는 없었겠지만, 이 이상 소란이 커지면 분명 문제가 커질 수 있었다.
“그래 그만하자, 나는 진짜 이야기만 하려고 온 거야.”
나의 말에 철홍은 어이가 없다는 듯 표정을 구겼다. 하지만 아까보다 차분해진 것 같았다. 붉게 물들었던 얼굴이 점차 원래의 얼굴색으로 돌아오기 시작했고, 그의 잘생긴 얼굴이 다시 원래 자리로 찾아가고 있었다.
“하, 강상기 빼고 다 꺼져.”
그의 말에 주변에서 말리던 아이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당혹스러움을 그대로 드러냈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허둥댔으며, 제대로 말을 이어나가지도 못했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다 꺼지라고. 밥이나 처먹어."
날카로운 말이었지만 흥분하지 않은 상태로 차분하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소리 지를 때 보다 오히려 위압감이 더 느껴졌다. 그의 말에 그를 붙잡던 손은 놓였고, 재빠르게 소각장 바깥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철홍아 적당히 하고 들어와, 우리가 대충 얼버무릴게.”
그 말과 함께 같이 왔던 아이들은 모두 시야에서 사라졌고, 어색한 침묵만이 맴돌았다. 이번에 침묵을 깬 것은 그였다.
“그래 강상기 이 씨발아, 네 소원대로 둘만 남았네, 제대로 맞짱 한번 떠보게?”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였지만, 묘하게 떨림이 느껴졌다. 아마도 극도의 흥분을 억지로 감추려는 듯한 시도였음이 분명했다. 어쩌면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마음대로 투명인간 취급하던 존재에게 모욕을 당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과거의 1번이 아니다. 새로운 한 발자국으로 새롭게 태어났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과거의 경험 때문인지 심장은 아직도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최대한 감정을 속이고, 떨리지 않는다는 듯 대답을 이어나갔다.
“싸우자는 게 아니라, 정말 이야기를 하자는 거야.”
나의 말이 우스웠는지 그는 입으로 어이없다는 웃음을 내비쳤다. 이어 매서운 눈초리로 나를 노려보았고, 조금은 무서웠지만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의 눈을 제대로 마주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눈을 돌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의 앞에 최대한 당당하게 있고 싶었다.
“눈 깔아.”
그의 위압적인 그 말 때문에 하마터면 시선을 거둘 뻔했지만, 이겨냈다. 어느 사이엔가 요동치던 심장도 차분해져 가고 있었다.
“눈 깔라고!”
그는 소리 지르며, 몸을 돌려 회전을 만들어냈다. 왼쪽 다리를 축으로 몸을 회전시켰고, 온몸을 비틀 듯 돌려 오른 다리로 나를 채찍질하려고 했다. 나도 모르게 양팔을 겹쳐 그의 다리를 받아냈다. 몸이 살짝 눌렸지만 버텨냈고, 밀어냈다.
나의 이 시도 때문에 그가 잠깐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지만, 타고난 운동신경 때문인지 금방 중심을 잡아 나갔다. 그러나 가만히 놔두면 계속해서 채찍질이 이어질 것 같았다. 그가 채 전열을 가다듬기 전에 오른쪽 어깨로 그를 밀어냈다.
그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한쪽으로 나뒹굴었다. 언젠가 그가 걷어차 구석이 제 자리인 것처럼 처박혔던 의자 같았다. 조금은 초라하지만, 아무 말 없던 의자와는 다르게 그는 바닥을 주먹으로 마구 치며 감정을 토해내고 있었다.
어떤 말을 해도 그의 수치심을 다독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의 분풀이를, 괴롭힘을 계속 받아줄 생각도 없었다. 조금만 흥분이 가라앉길 바라며, 그가 땅에 하고 있는 자신만 손해인 분풀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분풀이가 끝났는지 상체를 일으켜 바닥에 앉아 나를 노려보았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었다.
“너는 키도 크고 잘생겼고, 공부도 잘하잖아. 그러니까 나처럼 힘도 없고, 평범한 사람 그만 괴롭혔으며 좋겠어. 우리 그냥 친구 할 수는 없는 건가? 아무튼, 이야기는 더 못할 것 같으니 먼저 교실로 갈게.”
내 할 말만 하고 뒤돌아 소각장을 빠져나갔다. 혹시나 쫓아와 주먹이나 발을 내지를까 경계하며 어렵사리 교실로 돌아왔다. 조금 지저분해진 몰골로 교실에 들어서자 모두의 시선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 시선에는 그녀의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시선만 있을 뿐 누구도 말을 거는 이는 없었다. 오직 그녀뿐이었다.
“강상기, 괜찮아?”
그녀의 말에 철홍의 채찍질에 몸 이곳저곳에서 욱신대던 아우성들이, 약간의 고통들이 아물어 가고 있는 것을 느꼈다. 조금씩 그것들은 소리 지르기를 멈췄고, 더 이상 어떤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행복한 감정이 맴돌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의 목소리가 나를 치유한 것 같았다.
“응, 괜찮아.”
나도 모르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오히려 철홍의 강압적 목소리를 들을 때보다 더 떨렸고, 흥분됐다. 감정이 폭발해서 다 들켜버릴 것 같았다.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으면 했다. 더 지속됐다가는 이전처럼 말을 더듬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치지 않았다.
“맞았어? 싸웠어? 왜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
그녀의 폭풍 같은 질문에 묘한 감정이 솟구치고 있었다.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 자체가 행복했다. 이전까지의 그녀는 이따금 보이는 표정이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온전하게 나를 걱정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냥 이야기만 좀 하다가 왔어. 진짜 괜찮아.”
나의 이야기에도 의심의 눈초리를 전혀 거두질 않는 그녀는 아름다웠다. 아마 세상 그 누구보다 빛을 내고 있을 것이며, 가장 눈부신 존재임이 분명했다. 그 빛 때문에 계속해서 바라볼 수는 없었지만 이전보다 조금은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녀의 눈은 완벽에 가까운 형태였고, 쌍꺼풀이 연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콧날은 크지 않지만 오뚝했으며 어떠한 흠도 느껴지지 않았다. 약간은 붉은빛을 띠고 있는 입술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순간 그녀가 내뿜는 그 빛에 눈이 멀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뭐야, 뭘 그렇게 봐. 민망하게”
순간 아차 싶어 하며 정신을 차렸다. 분명 들켰을 것 같았다. 어떻게 얼버무리고, 어떻게 이야기를 이어나갈지 고민이 됐다. 그러나 그 고민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듯, 그것을 철저하게 무너뜨리려는 듯 철홍이 교실로 들어왔다. 그녀는 순식간에 그에게 다가갔다.
“야 황철홍, 너 뭐야 깡패야? 애들 데려가서 왜 한 명을 괴롭혀? 네가 뭔데?”
그녀의 쏘아대는 목소리가 큰 소리로 교실에 울려 퍼졌다. 그녀는 나를 정말 많이 걱정했던 것 같다. 내심 기분이 좋아졌지만, 걱정이 됐다. 이러다가 그가 그녀에게 폭력을 휘두를 것 같았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이어졌고, 이내 그가 말을 이었다.
“아 씨, 뭐래, 그냥 친구랑 이야기 좀 하다가 왔는데. 님 강상기 여자 친구임? 둘이 사귀기로 함?”
그의 마지막 말에 그녀는 얼굴을 붉혔다. 이전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모습이었다. 당황한듯한 모습이 역력했고, 제대로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그녀의 그런 모습이 기분이 좋았다. 아주 잠깐이지만 그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다. 하지만 친구라고 말하는 철홍의 목소리에 그리 길게 생각할 여력은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친구가 됐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