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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Aug 28. 2019

'어차피'

아무것도 아닌 단어 하나


오랜만에 뭉친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술자리.


30대에 접어든 우리는 걱정 없이 즐겁기만 했던 고등학교 때의 추억을 안주 삼아 술을 마셨다. 그리고 추억이라는 안주가 떨어질 무렵, 우리는 탁자에 새로운 안주를 올려놓았다. 현재 혹은, 현실이라는 안주를...

이미 가정을 이룬 이의 고민과 걱정, 결혼을 생각하는 이의 두려움과 설렘, 안정된 직장을 갖지 못한 이의 초조함과 두려움. 거기에 결국 내뱉지 못하고 입안을 맴돌다 다시 속으로 삼켜버린 의 고민까지도...


침묵 속에서 우리는 각자 짊어진 현실의 무게를 새삼 느끼고 있었다. 

그때, 술에 흥건하게 젖은 어떤 이가 덤덤한 목소리로  


"어차피 우리 인생은 이제 끝난 거잖아"   


라는 말을 툭 뱉었다. 그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이도 있었고, 말없이 술잔에 술을 따라 마시는 이도 있었다. 순간 멈칫한 나는 입안을 맴돌던 말을 내뱉지 못하고 또다시 삼켜버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만약 그 친구가 '어차피'라는 말을 빼고 이야기했더라면. 그랬다면 나는 어쩌면 그 자리에서 우리의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길을 걸었다.


'어차피'라는 말은 대부분 그렇게 쓰인다. 어차피 망했는데, 어차피 못하는데, 어차피 끝났는데...

'어차피'라는 단어의 뒤에는 보통 부정적인 말이 따라온다. 그리고 '어차피'라는 단어는 뒤에 따라오는 부정적인 의미를  더 강하게 만든다. 그래서 듣는 이가 더욱더 그 말을 반박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렇게 어차피 우리 인생은 끝난 거잖아라고 말하던 친구의 모습이 내 마음에 깊게 자리 잡았다.


친구들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여전히 하고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을 위한 내 준비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었고, 그 불안감이 나를 짓눌렀다. 주위 사람들에게조차 내 모습이 위태로워 보일 만큼... 


그때 누군가가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어차피 완벽한 준비는 없어"  


듣는 순간 나는 안도하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보며 놀랐다. '완벽한 준비는 없어'라는 말에 '어차피'라는 단어가 더해졌을 뿐인데 내 마음이 놀랍도록 편안해진 것이다. 그리고 마음속에 무겁게 자리 잡고 있던 인생이 끝났다던 그 친구의 말이 슬며시 사라졌다.


나는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 다음번 우리의 만남을 기다린다.

우리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어차피 완벽한 준비는 없는 이 인생에서 우리는 나만의 인생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


혹시나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어차피'라는 아무것도 아닌 단어 하나 뒤에 부정적인 말을 덧붙여 자신을 더 옭아매고 있다면 더는 그러지  않았으면 다. 그리고 주변에 '어차피'라는 말로 자신을 스스로 옭아매는 사람이 있다면, 에게 말을 건넨 고마운 그 사람처럼 여러분이 말을 건네보는 게 어떨지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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