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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Aug 28. 2019

'다들'

아무것도 아닌 단어 하나

 30대에 접어든 나이, 나는 오랜 기간 만나온 연인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나랑 안 맞는 거 같아"


굳은 표정으로 잠시 말이 없던 그 사람은 내일 다시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집에 돌아온 나는 고등학교 때 받았던 적성검사표를 찾아가며 내일 만날 그 사람에게 할 말을 준비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그 사람에게 설명하고 설득하기 위해서. 그날 밤 나는 고민에 고민을 더하며 무수한 말을 공책에 적어갔다.


그러나 다음날, 나는 준비했던 구구절절하고 장황한 말 중 어느 것도 꺼낼 수 없었다.


"다들 그렇게 살아"

 

그 짧은 말에, '다들'이라는 단어 하나에, 나는 준비했던 그 많은 말 중 어떤 것도 입에서 내뱉지 못했다.  

평소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보냈을 그 단어 하나가, 내 가슴에 콱하고 박혔다. 

'다들'이라는 단어는 내가 그 사람에게 결코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한 것처럼 만들었다. 마치 모두가 재미있다며 웃고 있는 영화를 보며 나 혼자 우는 것처럼, 그래서 영화관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는 것처럼...


"그치... 다들 그렇게 살지"


한참 만에 내 입에서 힘겹게 나온 말이었다. 내 대답에 안도하는 표정을 짓는 그 사람을 보며 나는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다들'에 속하는 한 명의 사람이 되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나에게 '다들'이라는 단어는 내 입에서도 자주 나오던 매우 유용한 단어였다. 음식 메뉴를 고를 때는 "다들 그거 먹네, 나도 그거" 일정을 잡을 때는 "다들 그날이 괜찮으면 그날로 해"...

'다들'이라는 그 단어는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간단한, 혹은 귀찮은 것들을 떠넘기는데 매우 유용했던 단어였다. 그렇게 가볍지만 유용했던 단어가 어느 날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내 가슴에 박힌 것이다.


"다니는 회사가, 하는 일이 마음에 들어서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냥 다니는 거지. 다들 그렇게 살아. 그러니까 너도 유별나게 굴지 말고 그냥 다녀"


여전히 이 일은 나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하면서도 사람의 말처럼 나는 다시 '다들'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 이 회사를 다니고 있다. 

그 사람은 결국 나를 떠났다. 이별의 이유가 오롯이 이 문제인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다들'이라는 그 단어에서 벗어나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글은 지금 이 순간에도 '다들'이라는 단어에서 벗어나 내가 되고자 노력하는 나와 또 다른 누군가를 생각하며 쓴 글이다. 부디 나도, 그리고 당신도 '다들'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고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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