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현 Apr 29. 2020

'승자'

아무것도 아닌 단어 하나

언제나, 그리고 누구나, 패자가 되기보다는 승자가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항상 승자가 되는 것이 행복을 가져올지는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것이 어떨까?


맘마미아라는 제목으로 10년도 더 전에 개봉했던 영화가 있었다.

결혼을 앞둔 딸이 아버지로 추정되는 3명의 남자를 자신의 결혼식에 초대하는 내용의 영화인데, 그 영화 속에 ' The Winner Takes It All '이라는 제목의 노래가 나온다.


이긴 사람만이 모든 걸 다 갖고 패자는 쓸쓸히 남아 있겠죠라는 가사, 연인이 되거나 친구가 되는 것 역시 승자가 결정하는 것이라는 이 노래의 가사가 승자와 패자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는 승자, 모든 것을 그저 따르기만 해야 하는 패자.

모두가 승자를 원하는 것 또한 그러한 이유이기 때문은 아닐까?


밀고 당기기, 흔히 우리가 밀당이라 말하는 행위 또한 패자가 아닌 승자가 되기 위한 노력이다.

상대가 나를 좋아하는 것보다 내가 그를 더 좋아하지 않게 보이기 위한 심리 싸움. 

서로 사랑하기 위해 하는 연애에서조차 우리는 자신이 승자가 되길 원한다.  


나는 연인과의 관계에서 밀당을 안 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승자가 되기 위해 연애 초창기 밀당을 살짝 시도했으나 실패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패자가 되었다.


같이 어디를 갈지, 무엇을 먹을지, 만나서 어떤 것을 할지 모두 그녀가 정했다.

나는 패자였고, 모든 것을 승자인 그녀에게 순응해야 했다.

나는 행복했을까?

연애 초기에는 내가 패자라는 것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비록 패지일지라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라는 기쁨이 컸기에 행복했었다.


그러나 그 시간이 영원하진 않았다.


그녀는 승자였고, 언제나 승자의 권리를 행사했다.

반대로 패자인 나는 점점 지쳐갔고, 항상 지다 보니 상대방이 한 번쯤 져주기를 바라게 되었다.

그러나 승자인 그녀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한 번만 져달라는 나의 부탁에도 그녀는 굳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는지 거절했다.  

결국, 나는 그 관계를 떠나며 패자의 멍에에서 벗어났다.


비단 연인 관계에서만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관계라 불리는 모든 상황에서 승자와 패자는 존재한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도 하나의 관계만을 갖지 않는다. 

어떤 관계에서는 승자겠지만, 어떤 관계에서는 패자일 것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역지사지이며, 승자의 아량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종종 승자의 위치에 취해 그 사실을 망각한다.

나 또한 승자의 위치에 있을 때는 그 사실을 잊어버렸던 것 같다.

그러고 나서 패자의 위치에 놓여있을 때야 비로스 그 사실을 상기했다.


영원히 지속되는 승자와 패자의 관계가 있을까?

물론 초원의 사자와 가젤의 관계라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고, 인간 사이의 관계는 승자가 패자가 되고, 패자가 승자가 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나처럼 관계를 떠나는 것으로 패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관계는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지 않는 관계가 아니다.

인간관계에서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는 건 어쩔 수 없는 무엇이라 생각한다.

다만 승자가 패자에게 져주는, 비록 열에 한 번일지라도 승자가 패자에게 져주는 그런 관계가 이상적인 관계라고 생각한다. 


만약 당신이 승자의 위치에 있을 때 패자에게 한 번을 져준다면, 상대방은 당신의 배려에 더욱더 고마움을 느낄 것이다.


열에 열 번을 모두 져야만 했던 관계가 끝나고 난 후, 나의 이상형은 열에 한 번은 져주는 사람이 되었다.


이전 12화 '다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