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아니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아기를 머릿속에 떠올려 보자.
이제 막 눈을 뜬 당신의 그 아기가 당신을 보며 방긋 웃는다면?
그 아기는 조금 더 커서 당신을 보며 입을 열 것이다.
"엄마" 혹은 "아빠"
그 말을 듣는 순간 단언컨대 당신은 행복사를 걱정해야 할 것이다.
그만큼 아기가 주는 행복은 절대적이다.
방긋 웃는 아기를 보며 모두가 다짐한다.
이 아기를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할 수 있다고...
회사에서 잘릴 때까지, 아니 잘리지 않게 어떻게든 버티리라고...
세상에 태어나 누릴 수 있는 행복 중 손에 꼽히는 행복 '아기'
그러나 우리의 인생은 절대적인 법칙을 갖고 있다.
얻으면 잃는 것이 있고,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다는 것, 그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절대적인 법칙이다.
지금 이 순간 아기로 최고의 행복을 느끼는 이가 있다면, 이 글은 더 이상 읽지 않기를 바란다.
아기를 보며 행복해야 할 순간, 문득 이 이야기가 떠올라 얼굴이 굳는다면 그 아기에게 내가 너무나도 미안할 것 같아서...
그럼 이제 여러분이 아기로 인해 얻을 것이 아닌 잃은 것을 보자.
아기가 태어나면 당신의 삶은 아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가정이나 가설이 아닌, 결코 변하지 않는 법칙이다. 마치 태양계에 속한 행성들이 태양의 주위를 돌듯 결코 변하지 않는다.
아기를 통해 위대한 행복을 얻지만, 반대로 이제 그만 내 손에서 떠나보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용수철을 세게 누르면 누를수록, 즉 작용을 가하면 가할수록 용수철이 더 세게 튀어나오는 반작용도 크다.
이 원리대로라면 아기를 얻어 우리가 느끼는 큰 행복만큼이나 우리가 포기해야 하는 것도 클 수밖에 없다.
자유, 돈, 시간, 술자리, 친구... 이 뿐만이 아니다.
아기의 탄생으로 무수히 많은 것들을 줄이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어진다.
아기가 1순위인데 다른 것들이 밀려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위에 나열한 예시에서 빠진 것이 하나 있다.
아니, 빠졌다는 표현도 좀 이상하다.
저 위에 나열된 모든 것을 합쳐야 하고, 저 예시에서 빠진 무수히 많은 것 또한 합쳐야 한다.
그러면 이 단어가 만들어진다.
인생, 아기가 태어남으로 여러분이 포기해야 하는 건 당신의 살아온 인생이다.
이 말의 의미는, 이제 당신이 그만 멈춰 서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아기를 얻음으로써 이제 더 이상 앞으로 달릴 수 없다. 슬프고, 믿고 싶지 않고, 누군가는 화도 나겠지만, 그게 사실이다.
여러분은 이제 달리던 길 위에서 멈춰 서야 한다.
우리는 더 나은 나를 위해 노력한다.
데카르트의 명언 '나는 생각한다. 나는 존재한다'의 뜻을 나는,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인간이다로 해석한다.
그렇게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달려온 우리는 아기를 얻음으로써 더 이상 달리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서야 하는 것이다.
아기가 태어남으로써 여러분이 멈춰 설 수밖에 없는 이유는 너무도 많다.
가장 먼저 시간이 없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 나를 위해 쓸 시간 따위는 존재하기 어렵다.
(물론 이건 여러분이 배우자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는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가정하에서)
독서? 사유? 토론? 질문? 학습? 당신에게는 그럴 수 있는 시간이 없다.
아기는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존재다.
당신은 이 고귀한 생명을 태어나게 한 것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갖고 있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 아기를 돌봐야 한다.
그래서 슬프게도 여러분에게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다음으로는 돈이 없다.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는 방법에는 돈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기가 태어나며 당신에게 돈을 쓸 일은 무수하게 생긴다.
반면 당신이 버는 돈은 늘지 않는다.
또한 당신의 아기고,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아기다.
이 아기에게는 내가 줄 수 있는 최고의 것을 주어야 한다.
좋은 것일수록 비싼 건, 세상의 이치다.
그래서 당신이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쓸 돈은 당신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 외에도 무수한 것들이 당신이 앞으로 뛰어가는 것을 막는다.
여러분은 이제 그동안 달리던 것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섰다.
여러분이 다시 달리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열심히 뛰던 당신의 다리를 멈추게 만든 무거운 것, 그 무거운 모래주머니의 이름은 부모이다.
막연히 부모의 무게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고 숨이 막히는 느낌을 받는다.
이는 내가 부족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아기라는 존재가 가진 그 소중함이 크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아기를 키우는 부모들이 존중하고 존경한다.
달리던 길에서 이제 멈췄음에도 허무함보다는 부모라는 그 무게를 느끼고, 감내하는 이들...
그래서 부모는 위대한 존재이다.
내 인생을 멈추면서 비로소 얻는 자리, 부모.
아직 그 길을 걸어보지 않은 나 같은 이는 그 길을 걷는 이를 존중하고 존경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아기라는 더없는 행복만을 보고 부러워하던 이의 뒤늦은 미안함과 존경심을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