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에 큰 관심이 없었다. 태어난 연월일시로 운명이 결정된다면 인생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허망하겠는가라는 생각 때문에...
그러나 그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이 찾아왔다. 불확실한 미래와 상실에 대한 허전함, 그것에 더해 그 사람이 용하다는 누군가의 말, 그리고 나와 함께 가줄 어떤 이의 존재가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다.
오피스텔이었다. 티비에서 보던 신당이나 특유의 무당집 같은 느낌이 아니라 보통의 상담소 같았다. 그리고 사주풀이에 태블릿 pc를 이용하는 것을 보며 무언가 신선함을 느꼈다. 우리는 나란히 의자에 앉았고, 나는 마지막으로 사주를 보기로 했다. 나는 여전히 경계심을 가지고 내 앞에 두 명의 사주 풀이를 들었다. 같이 간 친구들의 성격이나 직업, 걱정 등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과연 이 사람이 연월일시 만으로 맞출 수 있을까 매우 궁금했다.
솔직히 약간 소름이 끼쳤다. 친구의 인적사항이 그들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음에도 거의 유사한 사실이 사주를 보는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사주를 믿지 않았던 내 마음이 흔들릴 만큼 정말 비슷했다. 앞선 이들의 사주풀이를 보며 약간의 기대감도 생겼다.
마지막으로 내 차례였다. 연월일시를 이야기했고
태블릿 화면에는 나의 사주풀이가 나왔다. 나무가 4개, 물이 2개, 흙과 불이 하나. 나의 사주에 쇠는 없었다. 나는 먼저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와 유사한 사실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만약 이 사람이 눈치만으로 내 정보를 파악했다면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사주 풀이대로라면 나는 올해 좋지 않은 흐름이고, 쇠가 없어 관운이 없다고 했다.(관운이 공무원뿐 아니라 직장운 전부를 포함하는 것이라는 말에 좌절도 느꼈지만..) 우유부단하고, 꽁한 면이 있고, 허리가 좋지 않으며, (쇠가 없어서, 쇠가) 30대 후반에나 운이 좋아진다는 말도 했다.
마지막에는 내 운세가 좋은 운세라고 했다. 왜 내 운세가 좋은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 계속 위태위태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심지어 올해와 내년도 좋지 않은 운수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사실 사주 이야기를 적은 건 그 사람이 마지막으로 덧붙여 말한 이야기 때문이다. 위에 이야기는 다 의미가 없다. (사실 내 사주가 좋고 나쁨이 남에게 알릴 것은 아니지 않은가)
"운이 좋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근데 운수가 좋지 않은 그때를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운수가 좋을 때 얼마나 뛰어오르는지가 결정됩니다. 운이 따라주지 않는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운이 좋을 때가 정작 찾아와도 많이 뛸 수 없어요. 운이 좋지 않을 때는 좋은 운이 찾아올 그 날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내 사주가 어쩌고 저쩌고 가 아니라 위의 저 말이 내 머릿속에 남았다. 운이 좋을 때는 당연히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하고, 운이 없을 때는 물이 들어올 그 날을 위해 배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 내 인생의 첫 사주풀이가 썩 괜찮은 경험이 된 것은 저 말 덕분이었다.
여전히 연월일시로 인간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을 믿지는 않는다. 다만, 굳이 사주를 부정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나에게도 언젠가는 좋은 운수가 찾아온다는데 믿어서 나쁠 것은 없지 않을까?
(운수가 좋지 않을 때, 노력한 사람은 대통령이 되고 노력하지 않은 사람은 동네 이장님이 된다는 예시는 기억에 강렬하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