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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Dec 15. 2019

'그럼에도'

아무것도 아닌 단어 하나

무거운 돌이 강에 가라앉듯, 유빙이 정처 없이 바다를 헤매듯, 어두운 터널을 끝없이 지나듯... 그때의 나에게는 어떤 것도 의미가 되어 주지 못했다. 주위 사람도 보이지 않고, 나조차 잘 보이지 않는 시간. 그 시간을 흘려보내는 동안 나는 나를 자각하지 못했다. 내 마음속은 모두 부질없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세상에서 증발하기를 염원하기도, 잠자리에 들며 깨지 않기를 소망하기도 했다. 그 시간을 그렇게 흘려보냈다.


그 시간이 지나자 나는 세상을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고  있다. 내가 이 세상에 남아야 하는 이유. 나에게는 내가 나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하는 근거가 필요했다. 그때 나를 찾아온 단어가 '그럼에도'였다. 나조차 내가 잘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세상이 나를 버린 것 같지만 그럼에도, 이 세상에 홀로 남아있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아무것도 아닌 단어 하나 '그럼에도'를 통해 나는 내 삶의 이유를 찾고자 노력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부질없어 보였지만 그럼에도 내가 버티고 견뎌야 하는 이유를 찾고자 노력했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가족이 있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챙겨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아직 못 읽은 책이 너무 많다.


그럼에도 나는 가보지 못한 스페인을 가고 싶다.


그럼에도 나는...


며칠을 고민하고 생각한 끝에 공책에 적을 수 있던 다섯 문장. 어떻게든 이유를 더 늘려보려 노력했지만, 더 이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도 그렇게 나는 내가 세상에 남아야 하는 다섯 가지 이유를 찾았다.


한창 가라앉고 있는 이에게는 누구의 말조차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말조차 부질없이 느껴질 것을 잘 안다. 아마 자신에게 매몰되어 위로의 글조차 찾아보지 않을 거고 설사 봐도 감흥조차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이야기를 적는 것은 가라앉았던 몸이 서서히 바닥에서 떠 오를 때를 맞이한 사람을 위해서다. 만약 그때를 맞이한 이가 있다면 나처럼 왜 살아야 하는가를 적어보는 것도 꽤 괜찮은 것 같다.


 만약 하나라도 당신이 세상을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았다면, 당신의 머리 위로는 이제 어두운 물속이 아니라 밝은 빛이 있는 수면이 있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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