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돌이 강에 가라앉듯, 유빙이 정처 없이 바다를 헤매듯, 어두운 터널을 끝없이 지나듯... 그때의 나에게는 어떤 것도 의미가 되어 주지 못했다. 주위 사람도 보이지 않고, 나조차 잘 보이지 않는 시간. 그 시간을 흘려보내는 동안 나는 나를 자각하지 못했다. 내 마음속은 모두 부질없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세상에서 증발하기를 염원하기도, 잠자리에 들며 깨지 않기를 소망하기도 했다. 그 시간을 그렇게 흘려보냈다.
그 시간이 지나자 나는 세상을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고 있었다. 내가 이 세상에 남아야 하는 이유. 나에게는 내가 나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하는 근거가 필요했다. 그때 나를 찾아온 단어가 '그럼에도'였다. 나조차 내가 잘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세상이 나를 버린 것 같지만 그럼에도, 이 세상에 홀로 남아있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아무것도 아닌 단어 하나 '그럼에도'를 통해 나는 내 삶의 이유를 찾고자 노력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부질없어 보였지만 그럼에도 내가 버티고 견뎌야 하는 이유를 찾고자 노력했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가족이 있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챙겨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아직 못 읽은 책이 너무 많다.
그럼에도 나는 가보지 못한 스페인을 가고 싶다.
그럼에도 나는...
며칠을 고민하고 생각한 끝에 공책에 적을 수 있던 다섯 문장. 어떻게든 이유를 더 늘려보려 노력했지만, 더 이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도 그렇게 나는 내가 세상에 남아야 하는 다섯 가지 이유를 찾았다.
한창 가라앉고 있는 이에게는 누구의 말조차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말조차 부질없이 느껴질 것을 잘 안다. 아마 자신에게 매몰되어 위로의 글조차 찾아보지 않을 거고 설사 봐도 감흥조차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이야기를 적는 것은 가라앉았던 몸이 서서히 바닥에서 떠 오를 때를 맞이한 사람을 위해서다. 만약 그때를 맞이한 이가 있다면 나처럼 왜 살아야 하는가를 적어보는 것도 꽤 괜찮은 것 같다.
만약 하나라도 당신이 세상을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았다면, 당신의 머리 위로는 이제 어두운 물속이 아니라 밝은 빛이 있는 수면이 있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