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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Aug 29. 2019

'굳이'

아무것도 아닌 단어 하나

꽤 오래전 일이다.


연인의 생일을 맞아 나는 누구나 그렇듯 소소한 몇 가지를 준비했다.

리뷰를 하나하나 살펴 음식 맛에 더해 분위기가 괜찮은 음식점을 예약했고, 서점을 한참 동안 서성이며 고른 아기자기한 편지지에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여느 연인이라도 했을 법한 글을 적었다.

그리고는 해가 질 무렵, 연인의 나이와 같은 개수로 만든 장미 꽃다발을 들고 대학교로 올라갔다. (그 사람이 대학원생이었기에)


내 생일은 아니었지만 밝게 웃는 그 사람을 상상하며 무언가를 준비한다는 건 나에게 무척 설레는 일이었다. 

꽃다발을 등 뒤에 숨기고 대학원 건물 앞에서 그 사람을 기다렸다. 그러나 약속한 시각이 지나서도 그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무렵, 그녀에게서 짧은 카카오톡이 왔다.

슈퍼 비전(담당 교수가 지도 학생에게 조언해주는 것)을 받았는데 심하게 질책받아 논문을 수정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덧붙여 오늘 말고 다음에 만나면 안 되겠느냐는 말도 함께 적혀 있었다.


나는 '그래 알겠어'라는 모범적인 답안을 쉽사리 보낼 수 없었다. 서운해서라기보다 준비하는 동안 상상하고 기대했던 그 사람의 웃는 얼굴을 볼 수 없어서였다. 

톡을 읽었지만, 답을 하지 않자 이내 전화가 왔다. 아마 약속을 미루자는 말에 내가 화가 나서 답장을 안 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굳이 오늘 꼭 봐야겠어?"


최대한 차분하게 물어보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실망감이 녹아있었다. 나는 연인을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허겁지겁 다음에 봐도 괜찮다는 말을 전했다.

이내 발걸음을 돌린 나는 손에 들린 꽃다발을 어찌할 생각조차 못 했다. 내 머릿속에는 '굳이 오늘 꼭 봐야겠어'라는 그녀의 말과 '굳이'라는 단어가 계속해서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굳이'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완곡하고 예의 바르게 무언가를 거절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굳이 도와주지 않아도 저 혼자 할 수 있어요" 

"굳이 그러실 필요 없어요"


그렇게 나에게는 겸양의 단어였던 '굳이'가 낯설고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내 가슴에 박혔다.

마치 내가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한 것처럼, 그리고 그 사람에게 무언가를 강요한 것처럼...

하루 종일 그 사람의 생일을 위해 고민하고 준비한 모든 것들이 마치 내 욕심으로 느껴졌다.

난 그저 환하게 웃는 연인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마음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늦은 밤,  약속을 어겨 미안하다며 걸려온 그녀의 전화, 다행히 나는 전화로나마 그 사람의 생일을 축하해 줄 수 있었다.

그러나 내 마음에 박힌 가시는 쉽게 빠지지 않았다. 아마 그 사람은 그 말뿐 아니라 그날의 기억조차 잊었을 거다. 나만 여전히 그리고 아픈 상처로 간직하고 있을 뿐. 


나는 소중한 사람을 대할 때 말을 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하고자 노력한다. 어떤 상황, 어떤 과정인지에 따라 아무것도 아닌 단어 하나가 갑자기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도 무섭기 때문에...


부디 나도, 그리고 여러분도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가 될 날카로운 가시를 넘겨주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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