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너무 달라"
연애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 사람의 입에서는 우리가 다르다는 말이 자주 나왔다. 가치관이나 삶의 방향, 꿈꾸는 가정에서부터 시작한 다름이 입맛이나 영화 취향, 심지어 다크 초콜릿과 화이트 초콜릿까지 내려왔다. 분명 처음에는 서로 다른 것을 찾기가 어려웠는데, 시간이 지나 언제부터인가 서로 같은 것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우리가 다르지 않음을 설명하기 바빴던 처음과 다르게 나는 시간이 갈수록 상대가 말하는 다름에 대해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 또한 정말 그의 말처럼 우리가 다른가를 나에게 반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그렇구나.. 우리는 많이 다르네..."
이별을 앞에 두고 내가 뱉어낸 말이다. 결국 나 또한 다름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말에 상대방은 말없이 돌아섰다.
만남을 시작하기 전부터 나는 그 사람과 내가 같지 않음을 알았다. 사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내가 모든 것이 같을 수는 없다. 쌍둥이조차 다른 부분이 있는데 전혀 다르게 태어난 그와 내가 같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와 나는 만남을 시작했다. 그때는 서로의 다름이 보이지 않았을까? 아닐 거라 생각한다. 분명 그 사람도, 나도 다름을 알고도 만남을 시작했다.
시작할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다름이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가 된 것은 왜일까? 사랑의 묘약이 유효기간이 지난 것일까?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사랑은 그저 호르몬의 장난이었을까? 아니면, 내 입에서 언제나 그랬듯 우린 다르지 않다고 말해주길 바랬던 그 사람의 욕심 때문이었을까...
나는 우리가 만남을 시작하기 전 그 사람이 나와 달라서 더 가슴 아팠고, 달라서 더 옆에 있어주고 싶었다. 나로 인해 그가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지기를 꿈꿨다. 그렇게 내가 생각한 다름은 좋기도 한 것이었다. 가슴살을 좋아하는 나와 다릿살을 좋아하는 그 사람처럼의 그런 다름. 달라서 더 좋은 그런 관계. 내 부족함을 채우고 과함을 덜어내는 관계. 나는 그런 관계를 꿈꾸며 연애를 시작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 사람은 나와 생각이 조금 달랐던 것 같다. 그 사람은 서로 다른 우리가 시간이 지나며 점점 같아지기를 바랐고, 시간이 지나도 같아지지 않는 나를 보며 실망하고 서운해했던 것 같다. 우린 다르다는 그 사람의 말에는 더 노력해달라는 그 사람의 바람이 깃들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 사람은 그런 마음으로 한 말이 아닐 수도 있다. 추억은 과거를 미화시키고 시간은 상처를 아물게 하기에. 이제 와서 자꾸 무의미한 가정을 하는 것은 후회일 수도, 미련일 수도, 미안함 때문일 수도 있다. 아마 온갖 감정이 뒤범벅되어 있을 것 같다.
나는 여전히 다름에 대한 정답을 모르겠다. 서로 다른 사람이 노력한다고 같아질 수 있을지, 혹은 다름을 상대방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