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나라의 영웅이었지만, 가족에겐 재앙이었고, 나는 나라의 재앙이었지만, 가족에겐 영웅이었다"
근현대사를 공부할 때, 약지를 자른 안중근 의사의 장인이 내 가슴속에 강한 울림을 주었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일본군에 체포되어 의연히 죽음을 택한 안중근. 그래서 궁금했다. 그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은 그의 자녀는 과연 어떨 삶을 살았을지. 무척 기대도 되었다. 그래서 선생님께 물어보았다. 그러나 내 질문에 선생님은 머뭇머뭇하며 말꼬리를 흐렸다.
설마 안중근 의사가 결혼조차 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자녀에 대해 알려진 게 없나? 그런 생각을 하며 찾았다. 그러나 정말 쉽게 찾았다. 그리고 실망스러웠고 화가 났었다. 안준생, 안중근 의사의 차남. 일본 총독의 양자가 되어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며 아버지의 죄를 사죄하며 다닌 아들...
내 질문의 난감한 표정을 지은 선생님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오죽하면 백범 김구가 안준생의 처단을 원했을까 이해가 되었다. 아버지의 얼굴에 먹칠을 한 아들. 그렇게 나에게 안준생은 호부에 견자가 없다는 말의 예외가 되었다.
분명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던 인물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안준생을 삶이 나온 연극을 보았다.(물론 안중근 의사의 삶을 그린 연극이었지만) 호부견자라고 조롱받던 안준생, 죽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그 자체가 지탄받았던 안준생의 삶. 영웅의 가족이었지만 아무도 그와 그 가족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던 그때. 나에게 안준생의 선택과 그의 삶을 욕할 자격이 있을까?
안준생과 그 가족은 친일을 하지 않고 굶주림 속에 여기저기 떠돌다 죽었어야 맞는 것일까? 돌아오는 길, 분명 안중근의 고귀한 삶이 주된 연극을 보았건만 나는 안준생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일제에 비굴하게 무릎을 꿇었지만, 그 덕에 그의 가족은 살아남았다. 나는 나라에는 재앙이지만, 나의 가족에게는 영웅이라던 안준생의 항변이 내 가슴을 흔드는 건 왜일까?
그를 변절자라 욕할 수 없는 나는 나쁜 놈일까... 만약 하늘에서 안중근이 안준생을 보았다면 자신의 뜻을 잇지 못한 자식을 욕했을까? 어쩌면, 어쩌면 안중근 의사는 안준생을 보며 욕하지 않고 가엽다며 눈물 흘리진 않았을까...
내가 안준생이었다면... 그랬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