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정서 #감정 #허용 #안정감 #평안 #정서돌봄
본 칼럼은 정서중심치료(Emotion-Focused Therapy)를 기반으로 합니다.
"감정이 올라오면 겁이 나요"
"억누르게 돼요. 이 느낌에 잠식당할 것만 같아요"
"...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죠?"
억눌러온 감정, 높아지는 긴장감 상담실 안은 고요함을 넘어서 적막하기도 하다. 어색함, 긴장감, 당혹스러움. 가만히 있기엔 어렵고, 속은 복잡하다. 다양한 감정이 섞이다 못해 정리가 되지 않아 시끄럽다.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이 감정이 문제다. 떼어내고 싶고 없애버리고 싶다."라고. 이 글을 읽는 이 순간에도 당신은 잠시 긴장이 주변에 맴돌 수 있다. 그 조차 당연하니 무엇이든 '바로' 하려고 하지 말자.
만약에 어떤 어색하고 알지 못하는 감정이 올라올 때, 그런 정서가 당신을 덮을 때 뭔가를 하거나 생각하는 '나'를 발견한다면, 그게 바로 당신이 주로 감정을 대하는 방식이다.
.....
확신하건대, 당신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은 감정을 마주하는 그 순간을 상당히 불편해한다. 어색함을 넘어서 괴로움으로 변해간다.
알지 못하는, 정리가 안 되는,
압도당할 것만 같은, 급작스러운,
감정이 주로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느낌이다. 그 순간 우리는 바로 결론을 내려버린다. "이건 뭔가 잘못됐어. 당장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해!!"
다급해진다. 안절부절못하는 마음에 손은 떨려오고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눈동자는 흔들린다. 신경이 예민해지고 그 순간에 주변 자극은 날카로워지거나 먹먹하게 바뀌기도 한다. 온갖 부정적 평가가 밀려 들어온다. 이미 막을 수 없고, 계속해서 시나리오는 돌아간다. 최악의 장면은 이미 머릿속에서 현실처럼 생생하게 재생된다.
"도망가야 해. 아니야. 그냥 참아보자."
"다들 이 정도는 다 버티잖아. 왜 나만 유난인 건데?!"
"억누르면 지나갈 거야. 그러면 돼. 그냥 그렇게 해. 그러자."
"버티자. 생각하지 마. 아무것도 하지 마! 그냥 아무 일 없듯, 지나가자"
"나는 나약해. 나는 별로야. 나는 문제야. 이 감정이 문제야."
억누르기에 쌓일 수밖에 없는
탓하고 부정하기엔 너무도 괴로운
안전하게, 천천히, 충분하게 마주하기
정말 억누르면 사라질까? 참으면 달라질까? 뜯어내면 끝일까? 감정으로 인해 괴롭다며, 조절이 안된다고 찾아오는 내담자를 수도 없이 만난다. 상담자로서 그들의 경험을, 우선 가만히 들어본다. 그랬을 때 그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한 가지는, 정서를 '문제'로 본다는 것이다.
그들은 조절되지 않으니, 내 맘대로 흘러가지 않으니, 그 원인과 탓을 '감정' 그 자체로 돌리고 결론을 내려버렸다. 그래서 그 '괴로움'은 절대 옅어질 수 없다. 이는 당연하다.
사람이 느끼는 감정, 우리가 느끼는 느낌은 물건이 아니다. 그저 나의 일부이며, 당연하게 반응하는 경험이다. 경험을 어떻게 뜯어내겠는가? 그건 애초에 잘못된 목표이자 결론이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도 이해가 된다. 우린 정말 오랫동안 몰랐다. 감정이라는 것을 마주하고, 이해하고, 적절한 관계를 맺고, 돌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 것 자체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몰랐을 뿐이다. 그래서 어색한 것이고 때론 겁이 나기도 하고 피하고 싶어진다.
...
"뚝 안 해!? 뭘 잘했다고 울어!!"
"뭘 잘했다고 노려봐?!! 입 안 집어넣어!!??"
"왜 그게 화날 일이야? 그거 화날 일 아니야. 유난 떨지 마"
"너 진짜 예민하다. 너 감정적이다. 아무도 그런 거 안 좋아해"
"너만 그래. 누가 그런 걸로 서운해하고, 상처받아? 네가 나약한 거지"
"감정은 집어넣으세요. 애같이 굴지 마세요. 이성적으로 행동하세요"
...
특히 한국 문화에선 감정은 혹독하게 다뤄진다. 온갖 비난을 받고 지나왔다. 뭐만 하면 "감정적이다. 예민하다. 그러면 안 된다. 그건 용인될 수 없다." 식으로 문제로 보고 있다. 이는 여전히 그렇다.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된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은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어한다. 상황 자체도 벗어나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러니 어떻게 우리가 정서라는 것을 돌볼 수 있다고 여길 수 있었겠는가? 존중하면서 따뜻하고 다정하게 바라볼 수 있겠는가?
변화의 시작은 그저 '확인'에서 시작된다.
당신의 그 마음은 그래서. 당연하다.
적어도 정서중심치료를 하는 상담자인, 필자의 마음은 그렇다.
당신의 그 마음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방법이 잘못되었다 해도, 그 심정을, 그 경험을 우선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이해받고 싶었던 마음이 깊었던 사람일수록 있는 그대로의 진정한 이해를 경험하면, 믿기지 않는다. 특히 수없이 좌절하고 상처받은 사람은 공감조차 처음에는 밀쳐내고 싶어진다. 두려움. 불안함. 취약함.
"내 감정을 이해한다니? 그런 게 어떻게 가능해!!! 말도 안 돼!! 그럼 내가 지금껏 버틴 건 뭔데, 어떻게 되는 건데..." 밀어낸다. 부정한다. 때론 심한 말과 행동으로 필사적이다. 하지만 그 조차 이해한다. 당연하다.
그 순간 나는 비로소
당신의 깊은 아픔을 바라본다.
감정을 만나는 작업은 절대 쉽지 않다. 다시 말한다. 절대 마음이 편하고 가볍고 즐거운 과정만이 아니다. 단, 처음에만 그렇다. 진정으로 정서에 다가가고, 잠시 곁에 머물고, 작은 대화부터 시작해 가고, 존중을 보내고, 잠시 또 기다리고, 그저 살펴보는 그 과정이 먼저 필요하다.
여러 차례 무시하고 비난을 해오던 감정에 어떻게 갑자기 듣기 좋은 다정한 말을 한다고 바로 스며들겠는가? 당신이라면 그렇게 쉽게 바로 되겠는가? 수십 년간 나를 비난하고 괴롭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미안해. 이제 다시 잘 지내자. 기분 풀어" 하면 마음이 싹- 하고 풀어지겠는가? 절대 아니다. 정서를 다루는 작업은 그와 똑같다.
그래서 정서에서 평안함을 느끼기까지 과정은, 지난하고 어색하며 불편하기도 하고 괴로울 수 있다.
하지만 그 경험은 절대 이전과 같지 않다.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이 과정에서 느끼는 '괴로움'은 지금껏 돌봐주지 못했던 나의 감정에 대한 반응이다. 속상함과 좌절감에서 비롯된 뭉클함이다. 이는 억누르고 무시하고 짓밟았을 때 느꼈던, 과거의 '괴로움'과 다르다.
필자의 심리상담에선 이 과정을 가장 중요하게 보는 시작으로 본다. 그 순간은 때론 상당히 불안하고 고독하기에 상담자는 그 순간 내담자와 함께 서로를 붙들며 나아간다.
정서를 마주하고, 허용하는 그 과정에서 오는 평안 "감정을 충분히 만나고 나니, 잔잔함을 느껴요"
상담실에 처음 찾아왔던 내담자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 내담자는 처음에 자신의 괴로움조차 부정했었다. 오히려 별거 아닌 것처럼 옅은 미소를 보였다. 하지만 상담이 진행되면서 내담자는 점차 자신의 괴로움에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때론 뒷걸음질 치기도 하고, 부정하기도 하며 힘겨워했다.
때로는 자신의 행동을 생각으로 설명하기도 하고, 감정을 살펴보는 것 자체가 자신에게 얼마나 어렵고 괴로운 일인지 표현했다. 내담자는 그 순간에 몰랐을지라도, 상담자인 필자에게 그 순간은 그조차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이는 그 순간만큼은 내담자가 '정서'를 부정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며, 다른 말로 덮지 않고 상담자와 나누는 것이니. 때로 내담자는 자신이 이전과 다르게 감정에 머물고 표현하고 있다는 것 자체를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괜찮다.
변화는 경험이고,
경험은 언제나 말로 표현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일단 느끼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때가 많다. 필자와 내담자는 그렇게 한 겹 한 겹 정서에 다다르는 길을 걸어갔다. 그렇게 수차례가 지나고, 내담자는 상담자인 내가 따로 뭔가를 하지 않아도 스스로 감정이 올라왔을 때 누르기 보다 온전히 느끼려고 시도했다. 노력했고, 필자는 그저 그 순간을 가만히 함께 했다.
내담자는 순간 처음에는 괴로워했다. 하지만 이윽고 표정은 달라졌고, 그 순간에 필자는 물어보았다. 방금 어떤 것이 떠오르는지 말이다. 내담자는 나지막이 말했다. "괴롭긴 한데요.. 근데 뭔가 잔잔함이 같이 느껴져요. 이전처럼 괴롭기만 하지 않아요."
내담자의 경험은 그러했다. 괴로웠던 그 느낌이 이전처럼 올라왔으나, 그 거슬리는 느낌은 이전보다 가볍고, 짧아졌으며, 오히려 뒤이어 마음이 잔잔하고 평안해지는 느낌이 따라온다 했다. 그 부분이 분명 느껴졌다고 했다. 그 느낌은 요즘 들어 한 번이 아니라 자주 찾아온다고 했다. 그리고 그 경험이 반복되면서 예전처럼 자기 자신을 비난하거나, 평가하지 않게 된다고 했다.
오히려 괴로웠을 자신의 그 부분을 살펴주게 되었고, 과거의 아픔도 "그래 그런 일이었지. 그럴만했어."라는 말을 스스로 건넨다고 했다.
예전처럼 억누르고 또 억누르다가 터질 것만 같은 불안함은 사라졌다고 했다.
필자는 진심으로 그 순간을, 그 찰나를
내담자와 환영했다. 함께 확인했다.
진심으로, 깊게, 얼마나 이 과정이 지난했는지,
이 과정이 얼마나 가치로웠는지 안아주었다.
그리고 찾아온 이 변화의 순간을 충분히 음미했다.
#머무름 #공감 #이해
#변화 #평안
도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떠날 수 있다.
그 과정은 더 이상 괴롭지 않으며,
평화롭고 평안하고 잔잔해지다.
정서는 진정으로 마주할 때, 평안을 가져다준다 언제나 정서에 대한 이야길 나누다 보면, 비슷한 메시지로 귀결되곤 한다. 그 이유는 모두가 경험하는 사건이나 상황, 사람, 감정은 저마다 다르지만, 그 과정에서 지나가는 부분은 꽤나 비슷하기에 그럴 것이다.
정서, 감정은 피하고 무시하고 누르고 부정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정서중심치료 #EFT 에선 "정서에 진정으로 다다를 때, 비로소 떠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이 과정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표현이다.
특히 한국 문화에서 우리는 이 방법이 생소하고 때로는 피하고 싶을지 모른다. 알고 있다. 어찌 그 마음을 모르리. 필자 역시 한국 문화에서 한국어를 쓰고, 한국 사람들과 사회에 둘러싸여 한평생을 살아온 사람인데. 실제로 필자는 과거에 누구보다도 감정적이면서도 수도 없이 감정을 뜯어내고 통제하고 해결하려고만 애쓰던 사람 중 하나였다.
그래서 더욱 손 놓고 있을 수가 없다. 그 괴로움이 얼마나 진득하고 깊은지 이해하기에 그저 간단하고 간편해 보이는 방법을 번지르르하게 포장해서 건네고 싶지 않다. 포장할 수도 없는 과정이자 경험이기에, 그렇다면 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그 순간을 함께 버티리. 기꺼이 함께 존재하리.
그게 필자가 정서중심치료를 하면서 내담자를 지원하는 태도이자 방법이다.
당신의 감정은 문제가 아니다.
당신 역시 문제가 아니다.
문제가 아니라면,
떨궈내거나 평가할 필요는 사라진다.
심리상담에서 경험하는 괴로움은, 일상에서 당신이 홀로 버텨온 갉아 먹히던 괴로움과 다르다. 몸의 감각으로 비슷하게 느껴질지라도, 그 내용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그렇기에 정서를 다루고, 감정을 돌보는 이 과정은 상처와 좌절만 안겨주던 이전과 다른 평안함을 가져다줄 것이다.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의심의 여지 따윈 없다.
글을 통해 심리상담의 변화 과정을 모두 나눌 수는 없으나, 다만 그 과정 중 실제로 관찰되고 나타난 '사실'을 당신을 포함한,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자 한다.
상담실에 들어서기 전까진 막연하고 모호하게 느껴질지라도, 실제로 당신이 선택하고 결심을 내리기 전까진 '나의 감정과 상처, 괴로움'은 마음속 어딘가에 머물러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당신이,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나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며, 존중하는 태도로, 가장 진솔하고 일치된 마음으로 '우선' 존재하는 것이다.
로지 상담심리사 ㅣ Semicolon 심리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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