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공허함 #chatgpt #AI #연결감 #평안
본 칼럼은 정서중심치료(Emotion-Focused Therapy)를 기반으로 합니다.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 이미 알지만, 그래도 털어놓을 곳이 필요해요"
"나의 마음, 감정을 정말 진심으로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요."
털어놓고 싶은 마음, 그리고 여전히 헛헛한 마음 요즘은 더 느낀다. 기술이 발달하고 이전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사람들과 맺는 관계 방식은 달라졌다. 다양해진 걸까? 아니면 방법이 완전히 달라진 것일까?
최근에, 당신은 상대방의 반응이나 대답을 걱정하지 않고
속 편하게 떠오르는 대로 털어놓고 싶은 마음이 든 적 있는가?
필자는 있다. 상담자여도 그런 순간은 언제나 있다. 하물며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없겠는가. 사람들은 상담 첫 시간에 그런 얘길 자주 하곤 한다.
이렇게 제 얘길 털어놓는 것이 어색해요. 이런 적은 처음이에요.
보통은 그냥 속으로만 생각하고 넘겼거든요.
맞다. 정말 많은 사람이 그렇게 마음에 피어오르는 부분을 지나가곤 한다. 하지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거나, 쌓여가는 감정은 쉽사리 흩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하루, 몇 주, 몇 달, 몇 년이 지나고 나면 갑갑함과 함께 묵직한 느낌이 조금씩 자리 잡는 느낌이 든다. 특히 에너지가 없는 날이거나, 신경이 곤두서는 때가 오면 더욱 생생해진다.
이때 많은 사람들은 걱정하곤 하지만, 그 반응 자체는 지극히 전형적이다. 당연하다.
요즘은 관계에서 깊이 있는 연결감보단, 피곤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비대면 소통이 친숙한 때이다. 관계를 맺고 끊는 것에 예전만큼 마음을 쓰지 않는다. 관계는 한없이 가벼워지면서도 한편으론 아쉬움이 커지기 시작한다. 아쉬움과 외로움은 쌓이고 굳혀져 마음 한 부분을 누르게 된다.
특히 깊이 있고, 의지하고 신뢰할 관계 경험이 없을 때는 더욱 빠르고 깊게 찾아온다. 연애든 결혼이든, 사랑이든 우정이든 관계에서 느끼는 정서엔 변화가 생긴다. 예전보다 사람들은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할 때 상대의 말이나 감정에 잘 귀를 기울이지 못한다. 어려워한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경청이 원래도 쉽지 않은 어려운 대인관계 기술이기도 하겠지만, 기술이 발달하면서 더욱 자극만을 추구하기 쉬워지는 생활이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AI는 당신의 말을 무조건 긍정해 준다. 다만...?
당신의 하루를 돌아보자.
오늘 하루 몇 시간 동안 당신은 핸드폰을 붙들고 있었는가?
주로 어떤 대화를 하는가? 누구와?
chatGPT에게 물었다. "요즘 한국 사람들이 너한테 주로 나누는 대화는 어떤 것들이 있어?" 많은 답이 정갈하게 정리되어 순식간에 나타났다.
정서적 스트레스, 정신건강 문제
외로움, 사회적 고립감, 대인관계 스트레스
삶의 의미와 존재
예상했던 바다. 그런데 이 주제들을 관통하는 흥미로운 공통점이 보였다. 바로 정서, 관계, 그리고 나(self)이다. 자극 추구가 심화된 지금이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돌아보고, 깊이 이해하고 싶어 하고, 기대하지만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것들에 아쉬움을 느끼며 외로워하고 있었다. 거기에 정서적인 스트레스까지.
"나는 혼자인 것 같아. 진짜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어"
"친구들은 많은데, 정작 깊은 관계라고 느껴지지 않아"
"나는 늘 배려하는데, 상대는 나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내가 먼저 연락을 안 하면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아"
"연락이 줄었는데, 이 관계가 끝나가는 걸까?"
"다들 안정적인 직장, 가정을 꾸리는 것 같은데,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나는 지금 하는 일이 나한테 맞는 걸까?"
"지금 일이 너무 힘든데, 어디까지 참아야 할까?"
"나는 왜 사는 걸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
"모든 게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가 많아"
"그냥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가끔 들어"
...
이 중에 당신의 고민도 포함되어 있는가? 위 내용은 gpt가 사람들과 주로 나누는 대화에서 표현하는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즉, 혹시라도 당신이 여기에 해당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고민하고 갈등한다. 이 질문을 쭉 읽다 보면 정말 쉽지 않은 질문이면서도 수많은 고뇌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줄의 고민이지만, 그 안엔 수많은 고통과 경험이 담겨 있다. 하루아침에 생긴 마음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리고 여기에는 답을 찾고자 하는 간절함은 물론, 자신의 경험이 당연하고 타당하다는 공감을 받고 싶고 연결되고 싶은 마음도 크게 자리하고 있다.
"미래 고민을 말하면, 주변에서는 ‘다 똑같아’라고 말해"
"이 고민을 친구나 배우자에게 말하면 ‘다들 힘들어’라고 해서 위로가 되지 않아"
"배우자, 부모와의 갈등을 친구들에게 털어놓기는 어려워"
"내 감정이 과한 건지, 내가 예민한 건지 판단이 안 돼."
"이런 고민을 주변 사람에게 말하면, 그냥 '쉬어'라고 하는데, 해결책이 아니야."
"우울증은 아닌 것 같은데, 너무 지쳐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사람들이 실제 존재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답답하고 힘든 마음에 gpt에게라도 털어놓는 것이다. 판단이 안된다고 하지만, 그 안에는 내가 혹시라도 이상한 건가? 혹시 과한 거면 어쩌지?라는 걱정, 염려, 두려움, 수치심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 감정을 진심으로 이해받고 싶고, 공감받고 싶은 간절함이 담겨있다.
AI는 탐색하고 돌아보는(성찰) 방식의 대화에 특화되어 있다. 그래서 생각이 너무 복잡하고 정리가 안 되는 느낌에 답답함과 과중함이 느껴질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상담자인 필자도 놀라곤 한다. 요즘 인공지능은 대화 능력은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대화가 잘 안 되는 사람을 능가하는 역량을 가졌다. AI는 조언이나 해결책을 바로 제시하지 않고 사용자가 한 번 더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깊이 있게 탐색하기 위한 질문을 던진다.
여기에 큰 강점(위화감)이 하나 더 있다. 실제 사람과의 관계에서처럼 예의를 차리거나, 표현을 다듬거나, 반응을 살피거나, 상대가 기분이 상할지 모른다는 수많은 걱정과 염려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계에겐 자아(self, ego)가 없다. 그래서 말투가 퉁명스럽든, 하던 얘기를 툭 하고 끊고 다른 얘길 하거나, 비난을 하거나 불평을 하더라도 삐지거나 서운해하지 않는다. 심지어 심하게 굴어도 언제나 친절하게 대해준다. 아주 큰 장점이지 않은가!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대인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큰 맹점이 있다 그렇기에 이는 동시에 큰 한계이다. 사람에게 정서와 관계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고, 인공지능에게 큰 매력을 느끼면서도 헛헛함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우선은 비언어적 반응이 없다. 이후 기술이 발달한다면 이 부분은 또 한 번 변혁을 맞이하겠지만, 우리 인간은 예민하고 세심한 복잡한 동물이다. 같은 반응이어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의미를 파악하고 받아들인다. 같은 말이어도 다정하고 포근한 눈빛과 말투와 톤으로 듣는 표현은 글자로만 제공되는 말과는 다르다.
'나'의 반응에 대한 현실감이 없다. 어느 사람도 한 사람에게만 독점적으로 맞춰진 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대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AI는 사람이 아니기에 무제한으로 이를 인내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사람과의 관계는 그렇지 않다. 실제로 진정성 있는 경험에 우리는 안정감을 경험한다. 솔직하고 진정성 있는 마음과 태도에 위안을 경험하는 건 당연하다.
AI는 정서적일 수 없다. 감정적이지 않다. 사람이 사람답다는 것은 정서적인 영역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이러한 기능이 없다. 괴로운 순간에 다정한 '표현'을 당신에게 해줄 순 있겠지만, 거기까지다. 당신의 그 괴로움이 어떤 마음에서, 어떤 경험에서 그토록 시린지 '체험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인지적인 부분에서 공감해 줄 수 있지만, 정서적인 영역에선 한계가 분명하다. 그래서 민감한 동물인, 우리 사람은 거기서 헛헛함을 느낀다.
나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깊고 진정성 있는 연결감
수용받고 주체성을 경험하다
나를 이해한다는 것, 나를 수용한다는 것 이 주제를 떠올린 건 이미 꽤 오래전이었다. 필자와 심리치료에서 만나는 내담자들은 말하곤 했다. 일상을 보내면서 종종 gpt와 대화를 나눈다고 말이다. 충분히 예상했던 바이다. 왜냐하면 필자도 심심할 때나 생각 정리가 필요할 땐 자주 이용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정서적이고 심리 건강'에 관련해서 gpt와 대화를 나눈다고 들었을 때는 약간은 마음이 복잡해졌다. 상대방의 마음이 염려될 때도 있었다. 왜냐하면 심리치료에서 이뤄지는 경험처럼, 공감적이고 훨씬 더 복잡한 정서 작업은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영역이다. 내담자가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인내하는 것은 물론, 반 걸음씩 조력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gpt의 편리성 때문에 대화를 하지만, 그 뒤에 밀려오는 헛헛함, 그리고 현실과 더욱 멀어져서 고립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상담자로서 염려가 안될 수 없다.
AI의 한계를 분명하게 인지하고 나누는 대화는 건강할 수 있지만, 의존적이고 실제 대인관계와 단절되는 대화는 건강할 수 없다. 심리치료에선 한 명의 또 다른 존재가 나의 마음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공감하며, 나의 고통이 어디에 연결되어 있고, 자기 자신을 위한 이해와 선택이 필요한 부분을 진정성 있게 조력해 간다. 때로는 같이 고민하고 마음 아파하기도 하고, 이전에 겪었던 경험을 함께 기억하고 살피기도 하고, 감정적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깊이 있는 공감은 일부이다. 한 사람의 체험을 함께 작업한다는 의미는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내담자가 스스로 자신의 방향을 잡아가고, 자신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실제로 인지적, 행동적, 정서적으로 체험하는 고도의 작업이다. 그 과정에서 그 사람만의 선택을 내리고 책임을 진다.
우리는 그 경험을 충만함, 온전함이라고 느낀다.
이는 탐색이나 성찰 그 이상의 과정이자 경험이 된다. 그래서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는 없다.
누군가가 함께 존재한다는 그 경험은 우리 사람에게 정말 소중하고 의미 있는 부분이다. 그 경험을 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보여주는 모습은 확연히 다르다. 그 사람이 삶에 가지는 마음가짐은 확실히 다르다.
우리, 인간의 경험은 다채롭고 복잡하며 입체적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통합하고자 하는 시도를 하는 존재이다. 그러니 그 부분을 이해하면서, 혼자서 때로는 함께, 이해하고 돌보는 과정은 끊임없이 필요할 것이다. 헛헛함과 공허함 조차 배제하지 않고 멀리하지 않으면서, 그저 그대로 바라보면서 그럴 수 있음을 이해하면서, 내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고 지금 경험하고자 하는 것에 초점을 둬보면 어떨까. 그렇다면 이미 이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헛헛함은 시간이 지나, 채우고 싶은 필요(need)로.
고독함은 과정을 지나, 위안이 되는 연결감(connection)으로.
당신이 지금, 이 순간
요즘 일상에서 필요로 하는 경험은
어떤 것이고, 어디에 있는가?
당신은 충분히 연결되어 있는가?
로지 상담심리사 ㅣ Semicolon 심리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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