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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정서적 교류를 꺼려하고, 피상적 관계에 머무르는

24. #선택 #경계 #건강한관계

by 로지


본 칼럼은 정서중심치료(Emotion-Focused Therapy)를 기반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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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so far




"가볍게 농담하고 노는 건 괜찮아요"

"뭔가 깊게 얽히는 건 부담스러워요"

"깊은 곳에 벽이 있는 그런 느낌"




깊어질 것 같으면 멀어지는 우리 곁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런 그들 혹은 그런 나이기에 지치고 외로워졌을 그런 경험을 나눠보려 한다.


그 사람은 그랬다. 참으로 가까워지기 수월했던 사람이었다. 사람들과 지내는 것이 어렵지 않고, 새로운 자리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두렵거나 꺼려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주변엔 사람이 언제나 끊이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그 사람 주변에 있는 것을 좋아했고 즐거워했다. 재미있는 사람이기도 했으니 당연했다.


그 사람은 여러 사람과 좋은 관계를 잘 유지하는 듯 보였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그 사람에 대해 좋은 평을 하거나 그 주변에 머무는 것을 좋아했다. 대화는 가벼우면서도 때론 진중하기도 했고, 관계에서 진솔해 보이는 사람이라 여겨졌다.


하지만 유독 무게감 있는 감정이 담긴 이야기라던가, 서로의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말이 줄어들거나 그저 끄덕이며 웃어넘기는 사람이었다. 각자가 다를 수 있는 주제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조용해지곤 했다. 주변 사람들은 의아했다.


가벼운 주제나 즐거운 주제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쾌활해 보이는 그였으나, 유독 조금만 깊어지는 이야기가 시작될 때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침묵은 길어지고 공기는 무거워졌다. 주변 사람들은 의아했다. 의아함은 조금씩 혼란감으로 변해갔다. 그의 진심이 무엇인지 헷갈리게 되기도 했다. 그렇게 대화는 점점 얕아졌고, 좀처럼 깊어지지 못했다.


마치 어떤 벽에 막아서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대화는 이어지기 어려웠고, 어색함이 길어지는 공기가 가득해졌다.


#어색함 #거리감 #침묵






그러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되돌아갔다. 그는 이전처럼 쾌활했고, 자주 웃어 보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전만큼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무엇이 그의 진심인지 의구심이 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깊어지는 관계를 기대했던 이는 떠나가기도 하고, 그와 그렇게까지 깊은 관계로 남지 않길 바라는 이는 남았다.


#억압 #부정 #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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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현재

here and now




깊이가 부담이 되는

가까움이 불안함이 되는

마음속 벽을 견고하게 쌓아가는 사람들




가까워지는 것이 두려운 사람들 우리 모두는 두려워한다. 가까워지고 싶다가도 멀어지는 그 순간을 떠올리곤 한다. 이는 당연하다. 당신이 문제라는 의미가 아니다.


한 번쯤은 만나봤을 것이다. 꽤나 가깝다고 느꼈는데 그들이 보이는 반응을 보면 전혀 그렇지 못하다고 느끼는 순간을 경험. 처음엔 의아할 수도 있고, 실망과 아쉬움, 그리고 미움과 좌절이 밀려올 수도 있다. 이 역시도 당연하다.



가까워지는 것이 두려운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진정으로 가까워 지길 바라지 않는 것일까?

필자는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보이는 말과 행동을 보면 상당히 괴리가 있다. 그들의 마음과 행동은 상당한 거리가 있다.



우리는 감당하기 어려운 경험을 감지하면, 움츠려 든다. 두렵기 때문이다. 그 두려움은 때로 엄청난 괴로움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도망치기도 숨어버리기도 한다. 혹은 아예 그런 경험 자체가 없다고 부정하거나 회피하기도 한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건 각자의 생존 방법이다. 그러니 무작정 비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이를 마주하는 사람들도 참으로 괴롭다. 왜냐하면 그들이 숨어버리고 부정할 때 그들이 남기고 간 빈자리를 혼자서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관계는 상호적이다. 혼자 만드는 공간이 아닌, 함께 만드는 공간이다. 함께 만들던 사람이 갑자기 눈앞에서 말도 없이 예고도 없이 사라져 버리면 어떤 마음이 들까?


궁금할 수도, 어이가 없을 수도, 의아할 수도, 화가 날 수도, 실망스러울 수도... 여러 감정이 들것이다.


#부정 #회피 #무반응





건강한 관계는 뜨겁다.




관계는 쉽지 않다. 전혀. 어느 누가 술술 풀리고 즐겁기만 한다고 말하겠는가. 관계는 어렵기도, 골치 아프기도 하다. 하지만 이를 뛰어넘을 만큼 가치가 있고, 혼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하고 황홀한 경험을 안겨준다. 그래서 사람은 관계 안에서, 관계 곁에서 살아간다.



건강한 관계는 뜨겁다. 열정적이라는 의미보단, 잔잔하고 평온하지만은 않다는 의미다. 긴장이 높아지기도 하고 때론 어떤 말을 어떤 타이밍에 건네야 할지도 모르겠고, 마음속에서 복잡하고 엉켜 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는 당연하다.



관계는 그래서 진솔하다. 진솔할 수 있는 사람은 담대한 사람이다. 진솔함은 많은 것을 담고 있다.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누군가와 맺는 관계에서 진심을 다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이다. 나를 내보이고, 상대방의 것을 마주하는 경험이다.



그래서 쉽지 않다. 우선은 나의 것을 내보인다는 것은 많은 것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거기엔 자기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여길지 등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



자기 자신을 좋지 않게 본다면 이는 더욱 두렵고 괴로운 경험이 된다. "나는 부족해. 나는 사랑받지 못할 거야. 나는 이해받지 못할 거야. 저 사람은 나를 비난할 거야" 수많은 비난으로 자신을 가둬두고 있는 경우라면 이는 더욱 심각해진다. 이는 두려움을 떠나서 엄청난 괴로움이 된다. 자기 자신을 수치스럽게 느끼고, 비난받아야 할 대상으로 보는 사람은 누군가에게 자신을 진솔하게 내보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자체로 무너지는 경험이다.



어느 누구도 미움을 사고 싶지 않다. 버림받고 싶지 않다. 이별하고 싶지 않다. 거절당하고 싶지 않다.




관계는 그래서 진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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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두렵다.


그들에겐 누군가와 가까워진다는 것이 너무나도 취약해지는 경험 그 자체다. 그래서 벽을 쌓는다. 견고한 벽을 쌓는다. 그 벽은 계속해서 두꺼워진다. 그래서 이후엔 그 벽을 허물고 싶을 때도 혼자서는 안될 것 같은 무력감과 좌절감을 느낀다. 그렇게 포기하고, 체념한다. "이게 원래 현실이야. 원래 그런 거야. 바뀌지 않을 거야"라는 말로 벽을 공고하게 만든다.






그들은 외롭다.


그들의 가까운 관계는 그들의 벽에 홀로 매달린 사람들만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상호적이고 건강한 관계를 맺고자 하는 사람은 곁에 남지 않는다. 당연하다. 한쪽만 퍼주는 그런 동화 같은 관계는 없다. 그리고 그건 건강하지 않은 기울어진 관계이다. 한쪽만 희생하고 소모하는 관계는 절대 건강할 수 없다.






그들은 취약하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분명하다. 개인마다 경험은 다르겠지만, 그들 마음속에 자리한 취약함이 건드려진다. 그래서 감정적 교류를 하려는 누군가의 시도는 그 지점을 건들게 된다. 그들은 그것에 경계한다. 당연하다. 그건 잘못된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취약함에 가까워지면 조마조마하고 불안하다. 예민해지고 도망가고 싶어진다. 그들도 역시 친밀감은 원하지만 동시에 두렵다. "가까워졌다가 거절당하면?" "나를 떠나면?" "내가 예상하지 못한 것을 겪으면?" 그래서 그들조차 스스로 버겁고 힘들 것이다. 그 갈등은 계속되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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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놓지 못하는, 그들을 놓는 것보단 혼자서라도 그 두터운 벽에 매달려서라도, 손과 발이 까지고 일말의 에너지가 다 소모될 때까지 버텨야지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남는다. 그러니 벽을 새워둔 그들은 달라질 이유가 없다. 벽을 허물지 않아도 자신에게 매달릴 사람은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자신을 여전히 갈망한다는 그 느낌일까. 하지만 그건 그들 자신에게도 안정감을 가져다줄 수 없다. 오히려 체념과 불안을 가중할 뿐이다.



안정감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닌, 함께 빚어 가는 것이다.

한쪽이 자신의 존재를 불태우고 갉아 내리면서 다른 한쪽에게 희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안정감이 아니다.

자기 학대에 가까운 불안정이다.

그건 건강한 관계가 아니다.



#안정감 #외로움 #공허함




안정감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닌, 함께 빚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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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앞으로

from now






분명하고 단단한 경계가 필요하다

경계가 희미해지는 순간이 반복되면

그 틈은 불안함으로 가득해질 것이다




나를 위한 중요한 선택: 경계 상담실에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그런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죠?" "저는 어떻게 해야 하죠?"


정말 중요한 질문이다. 그 선택은 당신의 앞으로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깊은 정서적 교류를 어려워하거나 두려워하는, 그래서 피상적인 관계에만 머무는 사람을 마주할 때 우리는 참으로 괴롭다. 그들이 완전 멀리 있다고 여겨지지 않기 때문에 더욱 괴롭다.




뻗으면 닿을 것 같다.

-고 착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그들의 벽을 허물겠다고 자신을 태워가면서, 갉아먹으면서 누구보다 자신을 존중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보호하지 않는 방식으로 관계에서 소모되어 간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 선택한 관계인데, 나의 행복은 옅어진 지 오래다. 빛을 바란 먼지가 가득한 사진처럼 "어쩌다가 내가 여기에 와있는 거지?" 하고 허탈해진다.





당신은 치료자가 아니다.



당신은 양육자가 아니다.



당신은 상담자가 아니다.





그들만의 벽 안으로 숨어버리는 사람들과 맺는 관계가 유독 피곤하고 괴로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당신을 바라볼 여유가 없다. 이미 자신의 벽을 세우고 지켜내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마음은 가득하다. 그 외 누군가에게 진심을 다하기엔 너무 두렵다. 그래서 다가오는 사람들을 밀쳐내거나 혹은 상대가 알아서 떨어져 나가도록 내버려 두게 되는 것이다.



마치 "그 선택은 네가 한 거야"라고 매몰차게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깊은 관계, 교감하는 친밀감을 맺기엔 그들은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우리는 그 사실을 받아 들어야 한다. 그 사실을 부정하거나 "나는 다를 거야. 내가 온 힘을 다해 어떻게든 해보면 달라질 거야!"라는 말은 자기 자신에게 못 할 말이다.


그들의 세워둔 벽을 허무는 동안, 나 자신은 누가 돌봐주고 있고, 누가 존중해 주고 있는가? 그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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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필자가 상당히 싫어하는 말이다. 사람은 누군가가 바꾸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바뀌는 존재이다. 당신이 그들을 바꾸는 게 아니라, 그들이 변해야지만 진정한 변화는 이뤄진다. 변화는 자기 자신이 이뤄가는 것이다.



누군가가 틀이 끼워 맞추고 고집하고 강요해서 벌어지는 게 아니다.




변화는 자기 자신이 이뤄가는 것이다.





그들을 바꾸려는 시도가 아닌, 나를 위한 경계와 선택이 중요하다. 그 선택은 절대 쉽지 않다. 절대 마음이 편할 거라고 말하지 않겠다. 때론 씁쓸하기도, 서글프기도, 억울하기도, 사무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건강한 관계를 맺는 중요한 선택이다.




당신은 그들의 치료자가 아니다.


당신은 그들의 양육자가 아니다.


당신은 그들의 상담자가 아니다.




당신이 그들을 애정하고 아끼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자기 자신을 애정해 주길 바란다. 그들을 향하는 당신의 애정이 별거 아니라는 의미가 절대 아니다. 당신의 마음은 그 누구의 것보다 당신에게 소중하다. 최소한 그 마음에 존중을 다해주길 바란다.



그들에게 안정감이 중요한 만큼, 당신에게도 관계에서 경험하는 존중과 이해가 중요하다. 그들의 반복되는 거리 두기에 기대를 거두는 것 자체가 하나의 자기 돌봄이다. "나만 계속 다가가는, 인내하는 관계인가?"라고 물어보자. 이는 당신이 관계에서 균형을, 경계를 짓는 중요한 순간이다.



정서적 소통이 불가능한 관계라면, 나를 위해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담대한 결심과 선택이다. 그것이 지금의 관계와 이후의 관계를 더욱 건강하게 맺어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나를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고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



누군가를 위한 희생만이 가치롭다고 여겼다면,

이제부턴 나를 위한 담대한 선택 또한 가치롭다 여기길 바란다.



자기 돌봄, 자기 존중감 등은 다른 곳에서 오는 것이 아닌, 내가 얼마나 나의 감정, 마음, 생각을 존중하는 경험이 누적되어왔느냐에서 비롯된다. 자신을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타인에게 존중을 받을 것이며,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누군가를 돌봐줄 수 있다. 그것이 건강한 관계이다.



#자기돌봄 #자기존중감 #책임

#경계 #결심 #선택




로지 상담심리사 ㅣ Semicolon 심리상담센터

https://linktr.ee/semicoloncoun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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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