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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럽고 두려워요... 그리고 침묵해요"

21. 관계에서 침묵하거나 잠수를 타는,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 앉기

by 로지

[읽기 전, 안내]

본 칼럼은 커플과 부부의 건강한 관계 맺기를 도와드리기 위해 무엇을 알고 함께 노력해야 하는지를 담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평가하거나 판단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을 지양합니다.

본 칼럼은 시스젠더 이성애 커플만을 중심으로 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성별정체성, 성적지향성, 애정지향성을 존중하여 작성하였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인물, 상황 등은 실제가 아니며, 이해를 돕기 위해 창작되었습니다.

본 칼럼은 정서중심치료(Emotion-Focused Therapy)를 기반으로 합니다.







지금까지

so far




"상대가 말을 안 하는지 도통 모르겠어요"


"그냥 말을 안 하고 잠수를 타거나 결론을 혼자 내려버린다니까요"


"그렇게 혼자 말 안 하고 있으면 어떻게 해??"





같이 있지만 같이 있지 않은 관계

며칠 전에 카페에서 있었던 일이다.


몇 분이 지나지 않아 한 커플이 옆 테이블에 왔다. 처음에는 별생각이 없었으나 어디선가 날 선 분위기가 파고들었다. 대화에 안정감이나 다정함보다 짜증과 언짢음 같은 날 선 감정들이 담겨있기에 한 공간에 있던 타인인 나에게도 그 느낌이 전해진 것이다. 아마 여러분도 경험했을 텐데, 길을 걷다가 한 쌍의 사람들이 모여서 말하고 있을 때 지나가는 순간 뭔가 쎄-함이 느껴질 때 다시 돌아보면 그들은 최소 논쟁을 하고 있거나 싸우고 있는 모습 말이다.


그들의 언성은 조금씩 커졌고, 워낙 카페 안이 조용했기에 그들의 대화는 퍼져나갔다. 듣고 싶지 않아도 모두가 듣게 되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들은 커플이었고 결혼한 지 약 1~2년 정도의 부부였다. (성별 고정관념을 지양하기에 성별은 빼고 얘기하겠다.)


A는 처음에 차분한 목소리로 얘기를 시작했지만, 쌓인 것들이 점점 나오면서 점점 더 격양되었다. 그래서 B가 했던 말이나 행동을 가져와서 계속 쏘아붙이며 쏟아냈다. 언어 표현만 들으면 전혀 공격적이지 않았지만 톤이나 말투, 표정 등은 뾰족한 감정이 솟아있었다. 중간마다 새어 나오는 한숨과 지친다는 듯의 행동도 계속되었다.


B는 한동안 계속 듣기만 했다. A가 다섯 마디 이상 쏟아내고 나면 가만히 듣다가 한두 마디를 겨우 내뱉는 것이 전부였다. B의 말투는 담담했으나 감정이 상당히 묵직하게 묻어났다. 감정이 서려있는 느낌이 들었고 상당히 위축된 느낌이었다.


그들의 대화를 반강제적으로 들으면서 주제와 내용은 다르지만 대화할 때 두 사람이 보이는 모습은 내가 위태롭다고 여기던 관계에서의 모습과 정말 비슷했다.



위 모습에서 당신도 느꼈을까?








관계에선 모든 것이 상대적으로 나타난다. 절대적인 기준에서 잘못되고 과도하거나 과소한 양상도 있으나, 임상적인 수준을 제외하곤 대다수의 경우에는 상대적인 차이로 나타난다. 커플, 부부, 가족, 친구, 동료 등 모든 관계에서 그렇다.



필자의 친구 관계에서도 동일하다. 어느 관계에선 내가 상대적으로 더 표현하고 감정적이기도 하지만, 어느 관계에선 내가 더 과묵하고 무딘 쪽이 된다. 여기서 조금 더 주목해 보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침묵과 회피이다.



모두가 침묵하고 회피하고 싶어지는 때가 있다.

그리고 실제로 꽤 많은 순간 우리는 침묵하고 회피한다.


도대체 왜? 뭐 때문에?






* 이를 설명하기엔 다양한 부분(성격, 기질, 역할, 문화 등)이 필요하지만, 필자는 정서중심치료, 필자가 기반으로 하는 이론 중 정서와 정서도식의 관점에서 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지금, 현재

here and now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고


이해받지 못할 것 같아 두렵고


선택하지 않기로 선택하다





침묵은 선택을 유보하는 것이다? 틀렸다. 관계에서 침묵하고 회피하는 사람들에게 명확하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들이 정말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다. 때로 그들은 착각한다. 혹은 알면서도 거짓말을 한다. "잠시 시간이 필요해서 그랬어. 생각도 정리하고 할 말을 준비할 시간 말이야."라고 나중에서야 말한다.



아니. 그랬으면 처음부터 말했어야 한다. 당신은 침묵하고 회피하기로 그 순간의 선택을 한 것이다.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이라고 변명은 하지 말자. 당신은 분명한 선택을 했다. 최소한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자신의 선택을 부정하지 말라. 당신을 부정하지 말라. 그건 상대방과 상관없이 당신에게 건강하지 않다.






실존주의에선 말한다. 인간의 선택과 책임은 건강하고 성숙한 삶의 척도 중 하나라고. 선택이 있기에 책임은 따라온다. 인간의 삶에서 매 순간이 선택이고 책임이다. 자신의 선택에 대해 존중하고 이해하며 책임지는 사람이야말로 성숙하고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자유'가 개인에겐 매우 중요하다. 한 개인이 자유를 추구하고 자유는 선택과 책임과 함께 존재한다. 자유가 중요하다면 선택과 책임 역시 중요한 것이다.



관계에서도 똑같다. 단지 두 사람 이상의 경험이기에 관계에선 그 양상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키는 것이지 그 본질은 동일하다. 자유, 선택, 책임이 결여된 관계는 건강할 수 없고 성숙할 수 없다. 그런 관계는 충만할 수 없고 대화는 깊어질 수 없고 오랫동안 유지되기도 어렵다.






자신도 모르겠는 혼란감 침묵하는 사람은 자신이 마음이 어떤지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자신 안에 이것이 기분인지 생각인지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기에 혼란스럽다. 본인도 잘 아직 갈피가 잡히지 않기에 누군가에게 표현하고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 밖으로 설명하고 표현한다는 것은 우선 최소한 자신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해하지 못하고 자각하지 못하는 것을 말로 표현할 순 없다. 정리되지도 이해되지도 않은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된다.



심리상담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면 상담자와 이에 대해서 나누면서 답을 찾기도 하지만, 일상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돌아보거나 자기 이해가 충분하지 않은 사람에겐 어려울 수밖에 없다. 꼭 상담일 필요는 없다. 주변에 깊은 수준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있어도 이 부분은 충분히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거나 대인관계에서 고립된 경우에는 쉽지 않다.



말로는 안되기에 행동이 우선 앞서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이 바로 연락을 단절하고 잠수를 타거나 버럭 감정을 터트리거나 행동으로 옮겨버리고 나중에 자신이 그땐 제정신이 아니었다며 말하곤 한다. 하지만 이 표현은 자기 자신을 비난하는 말이기에 절대 좋지 않다. 그러면 이후에는 더 표현하기 어려워진다.



뭐라고 말을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어. 그 순간엔 이걸 설명하기가 너무 어려워.

나조차도 잘 이해가 안 되는걸..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나 봐. 다음부턴 그러지 않을게








이해받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과 불안 자신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표현을 했을 때 상대방이 이를 이해하지 못할까 두려워한다. 자신이 말한 것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을 때는 이 두려움은 더욱 커진다. 커진 두려움은 불안으로 이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전하려는 메시지와 자기 자신을 동일시한다. 즉, 메시지나 의견에 대한 거절이나 반박을 자기 자신에 대한 거부나 거절로 여긴다. 그렇게 되면 두려움은 더욱 커진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존재가 거절당하거나 거부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회복 탄력성이나 자존감 등이 충분하지 않을수록 더욱 그렇게 여겨질 수 있다.




이해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요. 이전에도 다른 관계에서 그랬거든요.

누구도 기다려주거나 이해해 주지 않았어요. 오히려 쏘아붙이기만 했거든요.







선택하고 책임지지 못하겠는 어려움 앞서 말한 대로 침묵하는 사람은 선택을 내리기 꺼려한다. 혹은 선택을 내릴 심리적/정신적인 여력이 충분하지 않다. 심리적 또는 신체적 에너지가 충분하지 않을 때도 그렇다. 왜냐하면 그에 따라오는 책임감이 무겁기 때문이다. 뭔가를 말하고 표현하고 났을 때 그로 인해 초래되는 상황이나 상대방의 반응이 예측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뭔가를 그 순간에 말해버리면 주워 담을 수가 없잖아요.

그럴 바에는 그냥 연락을 끊거나 멀리하는 방법으로 회피하곤 했어요






관계 속 안정감 부족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지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커플 상담을 찾아오거나 일상에서 갈등이 생기는 지점을 살펴보면 거의 100%가 여기에 해당된다. 앞서 말한 모든 것이 이 부분이 없으면 더욱 어려워진다.



관계에서 안정감은 필수이다. 처음 언급했던 A와 B 커플. 그들의 대화에도 안정감은 없었다. 그래서 둘의 대화는 더욱 날이 서고 긴장은 올라가지만 이해는 줄어들고 대화는 부서진다. B는 두려워지고 A는 이를 보고 더욱 답답해하면서 자신 역시 이해받지 못했다고 여기며 더욱 언성이 높아진다. B는 상대의 격양된 모습을 보면서 더욱 불안해하면서 입을 닫는다. 여기서 자신이 뭐를 말하든 저 사람은 이해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은 더욱 단단해진다.








지금부터, 앞으로

from now





평가와 판단은 내려놓고


내가 느낀 취약한 부분부터 인정하기


따지지 말고 이해하기부터 시작하기






토론과 설득은 정말 도움이 안 된다 간혹 그런 관계가 있다. "거봐 내 말이 맞지? 아니야? 그럼 근거를 대봐. 나를 설득해 봐"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정말 많이 봤다. 도대체 관계를 뭐라고 생각하는 건가? 누군가가 승리를 차지하고 승패가 나야 하는 경쟁인가. 논리로 찍어 누르거나 설득해서 답을 얻어내야 하는 것으로 보는가. 그런 관계는 결론은 나겠지만, 절대 심리적으로 안전하진 않다고 확신한다.



관계라는 건 상대와 경쟁하는 것도 아니며, 이기고 지는 것은 더욱 아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 생각부터 틀렸으니 뜯어고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혹시라도 당신의 상대가 그런 관점을 가지고 당신과 관계를 맺고 있다면, 정말 진지하게 그 관계를 재고하길 바란다. 그건 심리적으로 건강하고 성숙한 관계가 아니다.



안정감을 형성하는 것이 가장 우선되어야 하며 마지막까지 유지되어야 한다. 관계에서 우리가 평안함을 느끼는 이유는 안정감에서 비롯된다. 안정감을 만들어가는 것은 구성원 모두의 몫이고 책임이다.





안정감의 첫 단계는
각자가 경험하는 가장 걱정하고 불안하고
취약한 부분을 나누는 것이다.





안정감의 첫 단계는 각자가 경험하는 가장 걱정하고 불안하고 취약한 부분을 나누는 것이다. 이렇게 한 문장으로 적었으나 이는 상당히 어렵다. 심리상담에서도 몇 회기에 거쳐서 진행되는 부분이다.



위태로운 관계는 이 안정감이 상당히 결여되어 있다. 상대를 공격하기에 바쁘다던가, 정서적인 대화가 결여되어 있거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비이성적이고 문제적으로 여겨진다거나, 나의 어려움을 나누기보다 감추고 부정하기 바쁘다던가... 수많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안정감이 없는 모습은 그렇다.



아이러니하게 들릴 수 있어도, 각자가 가진 취약함을 드러내고 받아들여지는 관계야말로 안정감이 자리 잡은 관계이다. 왜냐하면 취약한 부분을 드러내고 말한다는 것은 이를 기꺼이 꺼내도 괜찮음을 공유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믿고 상대를 신뢰할 수 있을 때 두렵고 불안하고 괴로운 것들을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상대가 당장 바로 원하는 만큼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당사자도 그에 깊게 상처받지 않고 기다릴 수 있다는 의미이다. 말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닌 이를 받아들이는 것도 상당한 연습이 필요하다.




이는 말은 단순하지 절대 단순한 과정이 아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커플 상담을 받거나 개인 상담을 받으면서 연습하고 경험하고 또 경험하고 연습하고 반복하면서 변화해 간다. 한 번에 바뀌는 과정이 아니다. 그러니 한두 번으로 바뀔 거라고 혹은 바뀌어야 한다고 자기 자신이나 상대를 닦달하지 말라. 이는 오히려 관계를 악화시킨다.






여기서 글로 한 번에 전부 설명할 수 없지만, 오해하면 안 된다. 서로의 상처를 나눈다는 것을 서로의 태도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고름을 짜내듯 상처를 내던지는 것으로 오해하는데 이는 완전히 다르다. 때로 이를 잘못 이해해서 "상담자가 그랬잖아! 속에 있는 얘길 나눠야 한다니까?!!! 또 말 안 하고 이럴 거야???" 라며 얼마 없던 안정감을 산산조각 내는 경우가 있다.




두려움, 불안함, 어려움, 부담감 등으로 침묵하기를 선택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만 바뀌길 하염없이 기다리는 건 별 소용이 없다. 우린 이해했다. 그들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들이 무엇인지. 한쪽을 탓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조금 더 여유가 있고 인내할 수 있다면 나의 취약함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상대의 마음을 짜내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을 먼저 내보이는 것 그리고 상대를 존중하고 공감하는 것.




"당신이 말하지 않거나 거리를 두면, 내 입장에선 우리가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아서 두려워.

분명 말하기 어려운 마음이 있는 걸 텐데, 가능하다면 그 부분만이라도 나눠주면 좋겠어.

그러면 초조하게 조급하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나도 조금은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도 정말 두렵고 불안하거든..


전부는 아니겠지만 나도 나름 당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어.

이 대화도 당신에게 부담이 될 수 있음을 이해해하지만, 나름 노력해 보려고 이렇게 말하고 있어.

당신이 혼자 안고 괴로워하거나 불안해하길 바라지 않아. 나 역시 그래.

관계라는 건 좋은 것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의지하고 믿을 수 있는 거라잖아.

나는 우리가 서로에게 조금 더 기대고 신뢰할 수 있고 그 안에서 같이 평안하길 진심으로 바라"






로지 상담심리사 ㅣ Semicolon 심리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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