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 버니, 다문화, 그리고 메타인지

배드 버니가 스페인어로 슈퍼볼 하프타임 무대에 섰다는 사실이 화제다. 미국 내 일부 보수 진영, 특히 MAGA를 중심으로 “왜 미국의 대표 스포츠 행사에서 영어가 아닌 언어를 쓰느냐”는 반발이 뒤따랐다. 메타인지가 부족한 데서 나오는 반응이라 생각한다.


사실 제2언어로 노래를 듣는 일은 너무도 흔하다. 미국은 오랫동안 영어 음악을 전 세계로 수출해왔고, 가사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청중이 다수라는 사실은 단 한 번도 문제가 된 적이 없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은 영어 가사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 팝송을 듣고 즐겨왔다.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바이링구얼 비율이 낮은 미국은, 언제까지 언어적 편리성을 당연한 전제로 누리는 위치에 머물러야 하는가.


더구나 미국의 인구 구조를 생각하면 이번 백래쉬는 더욱 설득력을 잃는다. 미국은 법적으로 ‘공용어(official language)’가 존재하지 않는 국가다. 그런데 2023년 기준 미국 내 히스패닉·라틴계 인구는 약 6,300만 명, 전체 인구의 약 19%에 달한다.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인구만 해도 약 4,100만 명이며, 제2언어 사용자까지 포함하면 6,000만 명을 훌쩍 넘는다. 미국은 멕시코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스페인어 사용자가 많은 국가다. 다시 말해, 스페인어 공연은 미국 사회의 ‘예외’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현실의 반영에 가깝다.


이 언어적 다양성은 트럼프 정부가 견제하는 이민의 결과만도 아니다. 미국 남서부 지역—캘리포니아, 텍사스, 뉴멕시코, 애리조나—는 원래 스페인 식민지였고, 이후 멕시코의 영토였다. 미국은 1846년부터 1848년까지 벌어진 멕시코-미국 전쟁 이후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을 통해 이 지역을 편입했다. 여기에 더해, 1898년 스페인-미국 전쟁을 통해 푸에르토리코를 획득하면서 미국은 스페인어 문화권을 공식적으로 품게 되었다. 이곳의 스페인어 문화는 자체적인 영토 확장의 결과다.


세계적으로 보면 유사한 역사적 배경 속에 다언어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국가도 많다. 캐나다는 영어와 프랑스어를 헌법상 공용어로 인정하며, 퀘벡 지역에서는 프랑스어 사용 권리를 강하게 보호하고 있다. 스위스는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로만슈어 등 네 개의 공용어를 인정하며 행정과 교육에서 언어 다양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한다. 인도는 헌법에서 22개 공식 언어를 인정하고 있으며, 중앙 행정에서는 힌디어와 영어를 병행 사용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아파르트헤이트 이후 사회 통합을 위해 11개 공용어 체계를 채택했다. 볼리비아는 2009년 헌법 개정을 통해 스페인어뿐 아니라 36개의 토착 언어를 공식 언어로 인정했다. 뉴질랜드 역시 마오리어를 영어와 함께 공식 언어로 인정하며 식민 역사 속에서 약화된 원주민 정체성을 회복하려 하고 있다.


이와 비교하면 미국은 오히려 특이한 사례다.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민족 구성을 가진 국가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영어 중심의 단일 문화 모델을 유지해 왔다. ‘멜팅 팟’이라는 개념은 다양성을 공존시키기보다는, 궁극적으로 하나의 문화 중심으로 수렴시키는 구조에 가까웠다.


그래서 이번 논쟁은 음악이나 언어를 둘러싼 갈등이 아니라, 메타인지의 문제로 보인다. 자신들이 오랫동안 영어 문화를 전 세계로 확산시켜 왔다는 사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타인들은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은 청중’으로 존재해 왔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다. 반대로, 자신들이 단 한 번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자 즉각적인 불편과 분노를 표출한다. 이미 다른 다문화 국가들에서는 다양한 언어를 제도적으로 인정하는 모델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말이다.


배드 버니의 무대는 단순한 공연을 넘어, 미국 사회가 가진 자기중심적 문화 인식을 흔드는 상징적 장면이었을지도 모른다. 미국이 오랫동안 유지해 온 문화적 헤게모니는 이미 균열이 시작되었고, 앞으로 더욱 다극화될 가능성이 크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세계 질서 속에서 단일 제국의 독주 체제는 영구적으로 지속되지 않았다. 패권은 언제나 변화와 재편의 과정을 거쳐 왔다. 근대 국가에 기반한 현 헤게모니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00년도 채 되지 않든 모델에 불과하다.


극단적인 가정일 수 있지만, 만약 세계 질서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대규모 지정학적 충돌—예컨대 세계대전과 같은 사건—이 발생한다면, 미국 내부의 정치적·문화적 균열 역시 더욱 심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연방 국가라는 구조 자체가 통합의 장점이자 동시에 분화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가능성 자체가 반드시 ‘문제’인지는 다시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 영어를 사용하는 백인 중심의 단일 문화 모델이 영구히 유지되어야 하는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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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 주는 시사점도 있다고 본다. 미국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 아웃리치를 하면 인바운드가 있기 마련. 케이팝을 적극 수출하는 우리나라는 과연 그로 인해 유입될 다른 나라 문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얼마나 되어 있는가. 벌써 내 주변에만 케이팝이 좋아서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에 정착하려고 오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나? 그리고 중심축이 언젠가 그쪽으로 변하더라도 다양성을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나.


일례로 나는 무슬림인 인도네시아 외교관 코호트가 있다. 그중 한 명은 우리 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한국 배치를 받았다. 그런데 불과 지난주에 친한 한국인 친구로부터, "우리나라에서 히잡 쓰는 여자가 지나가는 현실을 견딜 수 있겠느냐"는 발언을 들었다. 그런 시선을 받을 나의 인도네시아 친구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미래 사회의 지난한 문화 충돌 현상이 그려진다. 우리도 메타인지를 기반으로 다양성에 대한 교육을 일찍이부터 시작해야 할 텐데 말이다.


우리가 세계로 나아간 만큼, 세계가 우리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는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준비의 문제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