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에 다시 돌아온 볼리비아
볼리비아는 21세기형 사회주의 국가다. 사회적 경제 생산 공동체 모델(Modelo Económico Social Comunitario Productivo)에 따라 정부가 시장 경제를 강하게 통제한다.
이에 따라 국영 기업의 존개감이 크다. 2007년부터 2022년까지 사회주의 정부하에서 만들어진 기업은 21개에 달한다.
그중 여러번 논란에 섰던 국영 기업은 바로 컴퓨터 제조 기업 '키푸스'다.
나는 이 기업에 대해 현지인 친구와 대화하면서 알게 되었다. 이 친구는 키푸스를 이렇게 표현했다.
'볼리비아 자체 기술로 휴대폰과 컴퓨터를 제조했으나 국유화되면서 경쟁력을 잃은 기업'
평소 국가 경제의 흥망성쇠는 고부가가치 산업과 기업의 성장이 결정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내게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그래서 이 기업에 대해 좀더 검색을 해보았다.
친구의 말 자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해당 기업은 2013년 아보 모랄레스 대통령이 야심차게 설립한, 태생부터 국영 기업이다. 헌법(supremo) 제1759호에 따라 설립되었으며, 생산개발 및 다원경제부에서 관리 감독하고 있다. 우리나라로 비유하자면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삼성전자를 설립한 셈이다.
왜 정부가 직접 나서서 휴대폰 및 컴퓨터 제조 기업을 설립했을까? "학생당 컴퓨터 1대"라는 기치를 내걸고 청소년 사이 디지털 정보 격차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볼리비아 정부는 설립 이래로 그간 공립학교에 시중 제품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데스크톱과 노트북을 보급해왔다. 또 저렴한 가격으로 휴대폰을 시중에 판매해왔다.
즉, 키푸스는 민간 기업이 국영화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영 기업이라는 태생 자체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던 것으로 보인다. 해당 기업은 적자를 지속해왔다. 2019년 기사에 따르면 키푸스는 설립 이래 5년 동안(2013~2018) 3860만 볼리비아노 손실을 기록했다. 컴퓨터의 경우 지자체나 교육기관과 지자체와 계약이 지지부진했다. 휴대폰의 경우 연간 3만5000대 생산을 목표로 2015년 말 볼리비아 시장에 중저가형 2개 모델을 선보였지만 수요는 충분하지 않았다.
우선 휴대폰의 경우 시장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분석이 있다. 한 칼럼에 따르면 볼리비아 휴대폰의 95~98%는 암시장에서 거래된다. 세금을 내지 않기에 저렴한 가격으로 타사 제품이 판매되는 상황에서 키푸스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 (볼리비아에서 암시장이나 비공식 경제가 발달한 이유가 있는데 이것은 다음 게시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기술력 자체에서 뒤쳐지기도 한다. 직접적으로 아시아 기술 기업, 즉 한국 기업이 경쟁 상대로 거론됐다. 2018년 생산개발 및 다원경제부 장관은 키푸스의 핸드폰 생산 중단을 선언하며 이렇게 말했다. “핸드폰 산업은 매년 갱신되는 중국이나 한국 기업과 경쟁이 심해 경쟁이 어렵다."
컴퓨터의 경우 시장이 지나치게 한정적이었다. 공교육상 디지털 격차 해소가 목적이므로 수주 기관이 정부 지자체뿐이다. 더군다나 2019년과 2021년에 나온 기사들에 따르면 키푸스 노트북은 전체 학교의 10분의 2밖에 보급되지 않았으며, 이곳에 보급된 노트북 마저도 정비나 부품 교체가 어려워 무용지물이 되어 있는 상태라고 한다.
볼리비아 정부의 키푸스 설립은 수입대체 공업화를 노린 흥미로운 전략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볼리비아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가 현저히 낮으며, 인구도 1200만 명에 불과한데, 내수 시장, 그중에서도 공교육 시장만을 공략한 것은 다소 이상적이지 않았나 싶다. 국제적인 시장에서 첨단 기술 경쟁을 겨루는 품목을, 국영 기업이 개발해나가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