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으로부터> #1
발가락이 부러져 반깁스 보호대를 차고 한 달이 지났다. 세 번의 엑스레이 사진을 찍었고 마지막 사진을 보니 뼈가 80프로 붙었고 다행히 틀어지거나 벌어지지도 않아서 그대로 잘 붙을 거라는, 이제 발 보호대를 차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뛰거나 심한 활동만 아니면 괜찮다고 들었지만 며칠간은 외출할 때 보호대를 차고 나갔다.
그 한 달이 어느새 익숙해져서 보호대를 풀고 나가는 게 왠지 불안해졌다.
그러다 이제 완전히 보호대를 하지 않게 되었다.
보호대를 빼고 그냥 신을 신고 걸으니 안 쓰던 발이 조금 아팠다. 부러진 발가락이 아닌 다른 발가락들도 좀 아프고. 한 달 동안 딛지 않았던 부분으로 걸음을 걸으려니 뭔가 부자연스럽고 혹시 어디 부딪히지 않을까 싶은 걱정이 남아 더 그런 듯했다. 다행히 통증은 며칠 만에 거의 사라졌다.
겨우 한 달인데 걸음이 달라졌다.
안 쓰던 곳을 사용하니 아픔이 있었다.
보호대를 푸니 왠지 불안해졌다.
처음 선생님에게 뼈가 빠르게 붙으면(문제없을 시) 한 달 정도, 조심하는 기간은 최소 6주 얘기를 들었다.
예고된 시간표대로 붙었고 부러진 발가락 위를 보호하던 플라스틱 판은 사라졌다.
짧지만 긴 한 달 동안 사용량이 절반이하로 줄어버린 발은 며칠 동안 어색하고 아팠다.
겨우 한 달인데.
몸의 어딘가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나는 시간의 개념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빠르게 낫고 싶지만 그런 건 없다.
그저 시간표대로만 나아져도 다행이다.
망가진 것들이 복구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 걸린 만큼 흔적을 남기고 어떤 흔적은 꽤 오래간다.
한 달 동안 보호대를 차느라 불편했다.
보호한다는 건 대부분 그런 것이다.
불편함이 따른다.
자연스러운 관절의 움직임을 보호의 이름으로 막아 붙잡아 놓으면
부러진 뼈는 붙지만 원래 사용하던 근육과 다른 부위들은 약해진다.
우리는 그중에 뼈가 붙는 쪽이 더 이익이라 선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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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삶의 대부분의 일들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선택이 필요하다.
모두를 다 선택할 수 없고 그저 이게 더 최선이라 생각하는 쪽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결과는 모른다.
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시간이 필요한 것은 꼭 그 시간만큼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받아 든 선택지는 다 달라도
지불하는 시간의 양은 미세하게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꼭 그만큼을 보내야 한다.
가끔 이 시간을 단축하려고 꾀를 내다 더 많은 시간을 지불하는 오류를 범하곤 한다.
부러진 발가락은 무슨 짓을 해도 최소 4주는 걸려야 하고 그 시간 동안 불편하더라도 보호대를 꼭 차야 하는 것이다.
내 젊은 날의 오류들은 대부분 시간을 줄이고자 하다 벌어진 일들이다.
어떤 일에서 줄일 수 있는 시간은 물리적인 한계가 반드시 있다.
더 빨리 낫고자 하는 마음,
더 빨리 좋아지고자 하는 마음,
더 빨리 얻고자 하는 마음이
더 늦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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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짜리 미술대학 입시에서 8시간만큼 그린 효과를 내려다 시험을 망친적이 있다.
점수가 모자란 나에게 유일한 합격의 길은 내가 속한 입시장안에서 가장 잘 그리는 수밖에 없었고
남들보다 더 잘 그리기 위해 시간을 당겨 쓰다 그림을 망쳤다.
그때 나는 입시생을 가르치는 선생이기도 했는데
가르치는 내가 시험에 들어가서는 하지 말라는 짓을 했다.
그림을 잘 그리면 완성 시간을 줄일 수는 있지만 자칫하면 가벼운 그림이 되는 함정이 있다.
그리고 줄일 수 있는 시간도 한계가 있다.
검은색의 연필로 흰 도화지에 색을 칠하는 데
그 안에 시간이 잘 쌓여야 그림이 단단해진다.
나는 그걸 기술로 줄여보려다 한계를 지나쳐 망쳐버린 거다.
뛰고 싶어서 빨리 뼈를 붙이려다 핀 박고 수술하게 되는 것과 같은 것처럼.
이제 보호대가 없으니 당분간은 더 조심해야 한다.
그래야 이 낯선 통증도 사라지고 더 단단해질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