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으로부터 #6
<자판기 커피와 크래커>
커피를 마시며 살아남기(?) 시작한 후 유명하다는 카페는 꼭 가보고 맛있다는 빵집도 많이 다녔다.
아주 비싼 디저트, 수제로 만든다는 집, 서울, 강릉, 제주까지 정말 다닐 수 있는 곳은 다.
그중에서 가장 맛있었던 것을 꼽으라고 하면….
———
1997년의 나는 커피를 거의 마시지 않았다. 주로 차나 우유를 마셨다.
미술학원에서 입시생을 가르칠 때 같이 있던 선생님들은 대부분 커피를 입에 달고 사셨다.
(담배도….-0-)
지금처럼 커피 머신이나 드립커피를 마시던 시절은 아니어서 학원 건물 계단에 있는 자판기에서 뽑아먹거나 인스턴트커피를 타 마셨다.나는 그때도 율무차나 코코아 같은 것을 먹었다.
(인생 정말 모른다. 나도 내가 이렇게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 될 줄 몰랐다.)
그날 수업이 끝나고 왁자지껄하며 소묘실기실을 청소하던 아이들 사이로 한 친구가 내게 작은 쪽지를 주었다. 얼마 전 학원에 들어온 친구였는데 나이로는 21살이었고 입시 8개월을 앞두고 미술을 처음 시작하는 친구였다. 쪽지를 펴보니 이렇게 쓰여있었다.
‘커피랑 과자 구성실에 놨어요’
(그 당시 디자인을 미술학원에서는 '구성'이라고 불렀다.)
아이들이 모두 간 뒤 구성실에 들어가 보니 책상 위에 자판기 커피와 크래커한봉이 놓여있었다.
‘나 커피 안 먹는데….’
반쯤 불이 꺼진 실기실에 앉아 커피랑 크래커를 먹었다.
그런데 크래커랑 같이 먹어서 그런가 눈이 동그래 질정도로 맛있었다.
‘뭐지? 아니 과자가 맛있는 건가? 아니 커피인가? 커피 안 좋아하는데..’
뽀작뽀작 어느새 커피 한 잔과 과자 한 봉을 다 먹었다.
——
커피를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한 것은 2010년부터였다.
보라요정님과 거의 매일 카페를 갔다.
저녁이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얘기하는 게 하루의 마지막코스가 되었다.
커피에 대해서도 조금씩 알게 되었고 우리가 좋아하는 커피가 어떤 건지도 하나하나 알아갔다.
커피와 맛있는 디저트를 먹으러 몇 시간을 운전하고 가기도 했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 우리의 일상은 늘 카페 그리고 커피와 함께였다.
우리는 커피도 좋아했지만 새로운 공간에 가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코로나 이후 2년간 우리는 카페에 거의 가지 못했다.
하루에 한 번씩 카페에 가던 그 루틴이 갑자기 중단되었다.
내가 면역력이 약한 탓에 더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야외에 갈 수 있는 계절에는 가끔이라도 갔었는데 코로나가 점점 심해지고 난 뒤에는 정말 못 나가게 되었다. 대신 원두를 사서 집에서 매일 내려먹게 되었다.
코로나가 한창인 시절 어느 날 보라요정님이
“아 000 도넛 먹고 싶다”
“그래? 그럼 내가 사 올게”
나는 쫄래쫄래 차를 타고 나가서 우리가 자주 가던 카페 디저트를 사 왔다.
돌아와서 커피를 내리고 오랜만에 ‘외부의 달달한 맛’을 보았다.
“맛있다! 오빠는 혹시 뭐 먹고 싶은 거, 생각나는 거 없어?”
“음…. 엄청 많지. 진짜 자기랑 정말 많이 다녔는데….”
맛있는 것을 몇 개만 꼽으라고 하면 그때그때 달라져서 딱 꼽을 수가 없다.
제주에 처음 갔을 때 첫 카페에서의 마셨던 커피와 진한 녹차케이크 생각도 나고
오랑이를 만나던 날, 양평의 카페에서 마셨던 커피와 피칸파이도 떠오른다.
깡통 휘핑 말고 손으로 친 쫀쫀한 휘핑이 올라간, 보라요정님이 하던 가게 옆집 비엔나커피도….
생각나는 커피와 디저트가 너무 많다.
그럴 때마다 아주 오래전, 커피를 잘 마시지 않던 시절의 자판기 커피와 크래커 생각이 꼭 난다.
어떤 기억은 참 대단하다.
그때의 공기와
그때의 분위기
그때의 맛이 아직도 생각난다.
커피를 거의 마시지 않던, 커피맛을 제일 몰랐던 시절에 마신 커피와 과자 하나가 이렇게 오래 기억에 남을 줄 몰랐다.
“뭐 생각났어?”
나는 그냥 씽긋 웃고 말았다.
1997년, 그 해
내가 입시생을 가르치던 미술학원에
21살의 보라요정님이
미술을 처음 시작하러 왔다.
우리는 아직도 같이 커피를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