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막고정술 3년하고 3개월차
#무해하게살고싶습니다
망막수술 후, 3년 하고 3개월이 조금 지났다.
어제는 6개월 검진받는 날.
아토피로 항상 잠을 못 자는 내게 눈수술은 더 잠을 못 자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백내장조차 스테로이드 부작용+아토피 콤보로 온 것이라
백내장 수술 후에는 불안함이 가중되어 더 잠을 못 자게 되었는데,
결국 백내장 수술한 눈 한쪽에 렌즈가 탈구되어 망막수술을 하게 되었다.
자는 동안 비비거나 건드려서 렌즈가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극에 달해 정말 잠을 못 자게 되었다.
아토피의 악순환 고리 중에 하나가 더 증폭된 것이다.
잠을 못 자니 당연히 몸은 더 안 좋아지고, 안 좋아진 몸에+불안감 콤보가 쌓이니 더 잠을 못 자고,
마치 시지프스가 돌을 끝없이 굴려 올리는 것 같은 병이 아토피다.
몇 개월이 걸려 몸을 좀 괜찮게 만들어 놓으면 단 하루 만에 박살 내주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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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피 신약치료 듀피젠트 후 나는 이제 잠을 잘 잔다.
밤에 눈을 감으면 아침이 되어있는 거다.
'와아! 이런 거야? 잔다는 게?' 정말 눈을 감고 뜨면 아침이다.
원래 잠도 늦게 들지만 그 사이 열 번 이상은 깨고,
그 잠들었다는 느낌조차 기억날 정도로 얕은 잠을 자거든.
그런데 이제 잠을 잔다.
그래봤자 겨우 잠 좀 자기 시작한 게 5개월 조금 넘은 건데,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것 같다.
잠을 못 자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힘든데,
동반되는 아토피 증상을 더하니 죽을 것 같았던 기억이 단 5개월 만에 거의 다 사라졌다.
그동안은 잠자기 전에 눈에 보호대 이중삼중으로 붙이고,
자는 동안 떼어낼까 봐 온 신경을 계속 곤두세우고 잠자리에 드니
그 불안함이 지수가 어마어마하게 올라간 상태로 누워있는 셈이었다.
그러니 잠을 잘 수가 있나.
이게 그냥 불안이면 최대한 지우려고 해 볼 텐데 '근거 있는 불안'이기 때문에 어디로 치울 수가 없었다.
불안이 사람을 얼마나 갉아먹는지 나는 아토피를 앓으면서 계속 느낀다.
이 병은 그런 병이다.
사람을 말라 죽이는 병, 희망을 줬다 뺐다 하면서 고문하는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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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달 동안 정말 단잠을 자고 있다.
이제 보호대 같은 거 하지 않고, 안경을 쓰고 잠들지 않는다.
너무 생경해서 딱 뭐라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깊게 잠을 잔다.
그리하여 내 불안은 전부 사라졌나?
아니, 진짜 사람이 간사한 게, 나의 가장 큰 불안이 해소되자 슬금슬금 다른 불안이 올라온다.
다만 그 불안들은 근거 없는, 이유 없는 불안들이 많다.
그런 것들은 저 멀리 치울 수 있을 정도의 나이가 되었다.
근거 있고 이유 있는 불안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동력으로 삼는다.
살아보니 불안을 태울방법은 그것밖에 없더라.
너무 짙은 불안이 오면 온몸으로 헤엄쳐 나가는 것이고,
얕은 불안이 오면 천천히 배를 몰아 부드럽게 나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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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만에 받은 정기검진에서 다행히 망막은 이상 없었다.
다음 6개월 후까지 불안의 바다에서 천천히 바람을 타본다.
#페리의무해한대모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