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마음을 더하면 어떻게든
<우리는 매일 1센티씩 좋아지고 있다>
나는 좋아지고 있나?
이 작은 고양이와 우리가 만나 같이 산 지
어느덧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같이 살 수 있을까, 고민하던 시기에
만화를 그리게 되었고
사진을 찍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하루를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하루에 딱 1센티미터만큼씩만 좋아지면, 나아지면 같이 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오랑이가 오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오랑이의 사진을 본 SNS 친구들이 이런 댓글을 남겨주었습니다.
“오랑이 발 젤리가… ㅜ_ㅜ”
“오랑이가 많이 고생했나 봐요.”
“발 젤리가 아픈가 봐요.”
“길 생활을 오래해서 그런가 봐요.”
그 댓글을 보고 오랑이의 발 젤리(고양이나 강아지 발바닥의 말랑말랑한 부분)를 봤어요.
거칠다 못해 굳은살이 박혀 있고 상처도 좀 있는 듯했습니다.
당시 ‘고알못’이던 저희는 오랑이가 집에 오고 며칠이 지나도록 그것조차 몰랐죠.
그냥 고양이 발은 다 핑크색 젤리인 줄 알았습니다.
댓글을 보니 잘 먹이고 관리해주면 발 젤리가 돌아온다는 얘기가 많아서
잘 관리해주며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오랑이의 발 젤리는 매일매일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습니다.
오랑이의 발 젤리에 새살이 돋는 것을 보며 옛날 제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제 몸에는 자잘한 흉터와 화상 흔적 같은 것이 있습니다.
피부색이 완전히 달라서 경계가 뚜렷한 부분인데,
예전 아토피로 몸이 가장 안 좋았을 때 (스테로이드 부작용이 겹쳤던 시절) 가장 크게 망가졌던 부위입니다.
거의 20년이 지났지만 그 흔적들을 보면
약간의 공포와 안도가 같이 밀려옵니다. 이 정도로 흉이 남으려면
정말 상처가 깊고 심하며 오래가야 합니다.
그때 저는 제 팔과 발이 떨어져나가는 줄 알았습니다.
(너무 자세히 묘사하면 저도, 당신도 힘들까 봐 최대한 간략하게…. -_-;;)
그 상처들이 나아가는 과정을 아주 천천히 오랫동안 보았습니다.
정말 한 달에 1센티씩 살을 채워나가는 느낌이었어요.
그때 생각했어요.
‘이렇게 느리게 나아져서 나는 과연 살아날 수 있을까?’
그런데 20년쯤 지나니까 그냥 살 만해진 거예요. 얼마나 지났을까.
오랑이의 발 젤리가 돌아왔습니다. 상처도 없어졌고, 거친 부분도, 굳은살도 거의 없어졌어요.
핑크색 말랑말랑한 발 젤리! 우리가 뭐 대단하게 한 것은 없었습니다.
그저 좋은 거, 맛있는 거 주고, 춥지 않은 곳에서 같이 자고, 좋다는 거 발라주고,
같이 산 것뿐입니다.
느릿느릿 시간을 쌓으며 얻는 치유의 힘은 대단합니다.
경험으로 알고 있기에 더욱 믿음을 갖고 있지만 이번에 다시 한번 그 힘을 경험합니다.
하루도 힘들 것 같던 시간에 놓였을 때 마음을, 몸을, 생각을
무엇이라도 차곡차곡 1센티씩만 움직이면
그때는 모르지만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면 모든 게 좋아졌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 와 있을 테고
그곳은 전보다 훨씬 좋은 곳일 겁니다.
1센티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 1센티로부터 (오랑이와 함께한)
2,000여 일의 시간이 쌓이면, 20년의 시간이 쌓이면 꽤 많은 것들이 바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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