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좋아집니다.
<어떤 밤의 기억은 너무나 생생해서 떠올릴 때마다 기분이 좋아집니다.>
다음 주면 책이 나옵니다.
당분간 저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할 거예요.책
에 싣지 못한 이야기들도(400쪽을 꽉 채웠지만 못다 한 비하인드가 많습니다.)
계속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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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주 오래전에 무언가 기록하는 일이 삶의 얼마나 큰 힘을 주는지 경험했습니다.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어딘가에 남기는 일 모두가
그냥 지나치는 일들의 한순간을 잡는 행위거든요.
그러다 보면 너무 슬픈 일들과 아픈일들은 희석되고
좋은 것들은 선명해집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밤의 시작에
보라요정님의 가게 앞 골목,
저 의자에 앉아
서로 커피를 나눠 마시며 얘기하던 순간은
몇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생생합니다.
우리가 만나는 인생의 고비마다
이런 골목과 그런 순간이 있어요.
절망적인 순간에 무지개가 뜬다든지
생각지 않았던 친구가 도움을 준다든지
어느 영화의 한 장면, 어느 노래의 한 소절이 우리를 쓰다듬어 주고 갑니다.
둘이 저 의자에 앉아 온갖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다
저 아래 골목에서 손님이 올라오면
보라요정님은 가게로 들어가고
저는 그 모습을 보며 커피를 홀짝홀짝 마셨어요.
그렇게 10년 동안 마신 커피의 양,
나눈 이야기의 크기, 만났던 사람들, 사건들,
그게 모두 모여 지금의 우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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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골목은 차가 지나지 못하는 막다른 길인데
그걸 모르고 끝없이 올라오는 차들이 있었어요.
골목이 좁다 보니 잘못 올라온 차는
의자를 부수기도 하고 여기저기 상처를 내곤 했습니다.
골목 앞에 막다른 길이라 입간판도 놓아보고
무슨 짓을 해도 10년 동안 이 골목으로 차가 올라왔어요.
차가 올라오면 막아야 하고 설명해야 하고 주차하면 안 된다고 말해야 하는 반복을
10년 동안 하면서 보라요정님은
'사는 게 뭐 이런 거지'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 말을 듣고
저도 참 동감했습니다.
무슨 짓을 해도 막을 수 없는 것들이 있어요.
벌어지고 대응하고 받아들이고 어느 정도는 포기하고.
이 골목이 주던 스트레스 말고도
다른 게 있었으니까요.
골목 위 정독도서관에서 야외 영화 상영행사가 있었던 날 밤
시네마천국의 테마가 흘러나오고 그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던 순간들,
봄의 한가운데가 되면 이 골목에 비처럼 내리던 벚꽃잎들.
사는 게 그렇죠.
나쁜 반복과 좋은 반복 사이에서
우리만의 기쁨을 찾고
우리만의 행복을 수집하는 겁니다.
그렇게 10년을 지나왔으니
이 골목에서 우리의 10년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귀여운거그려서20년살아남았습니다
#페리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