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정말 오래된 가게가 되었다
<귀여운 거 그려서 20년 살아남았습니다 > 의 비하인드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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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래된 가게가 되고 싶었다.
보라요정님이 2012년에 가게를 오픈하고
나는 (거의) 매일 저녁마다 보라요정님을 데리러 갔다.
(심지어 내가 가게를 하는 줄 아는 사람도 있었음 -_-;;;)
데리러 갔다는 표현보다는 그냥 저녁에 같이 가게문을 닫고 돌아오는 시간이 일종의 데이트였다.
문을 닫기 전까지 나는 이 골목에 앉아 커피 한잔을 마시면 정말 하루의 행복을 다시 충전하는 기분이었다.
가게오픈하고 처음 몇년간은 사입을 하러 동대문도 같이 갔다.
소위 '사입삼촌'의 역활을 내가 했었다.
새벽에 동대문 도매시장은 내가 알지 못하던 세계였고
내가 모르던 세계를 보는 일은 아주 흥미롭고 즐거웠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의 동대문의 밤은 정말 대낮보다 더 활기차고 뜨거운 사람들로 가득해서 그 에너지가 대단했다.
나는 작업도구를 들고와서 보라요정님이 사입 하는 동안 근처 카페에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보라요정님이 몇 시간동안 사입을 마치면 들고올수 있는 물건들을 바로 가져와서 가게에 넣어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처음 몇 년간은 일주일에 많으면 세번까지도 갔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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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요정님이 10년간 가게를 하는동안
많은 이웃들을 만났다.
우리만큼 오래 있었던 가게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바로 이웃인 카페 커피방앗간은 아직 그대로다.
우리도 한참 다니던 가게가 어느순간 사라지는 것을 보면
뭔가 마음 한켠이 허전해지곤 한다.
마지막으로 제주에 간지도 5년이 넘었으니
제주에 가면 들르던 가게들도 이제 많이 사라졌을 것 같다.
특이 이 동네는 관광객의 물결을 타고 수없이 많은 가게들이 빠르게 쓸려내려갔다.
10년의 시간을 채우는 동안
보라요정님의 가게에 들르는 손님들중 처음에 왔었다가
4-5년 만에 오는 사람들은 아직도 가게가 있다는 것에 놀라곤 했다.
그만큼 빨리 사라지니까.
오랜만에 온 손님들이 자신이 몇 년전 온 가게가 아직 있다는 것에
놀라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보라요정님은 뭔가 뿌듯해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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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요정님이 힘들지만 한 해 한 해 가게의 시간을 쌓는 것을 보면서
언젠가 우리는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나는 오래된 가게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오빠, 이미 오래된 사람이잖아! 큭큭! ^-^"
맞다. 그 시점에 이미 십 몇 년을 귀여운 거 그려 먹고 살았으니 이미 오래된 가게 같았다.
아주 오래전에 나의 그림을, 글을 만났던 사람이
5년. 10년이 지나서 어느곳을 지나다
다시 나의 그림과 글을 보고
"와아! 이 사람 아직도 있네!"
라는 반가운 소리를 듣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온라인이지만 나는 그 늬앙스를 읽을수 있다.
다행히
"이 사람 아직도 하고 있어?" 보다는
"이 사람 아직도 하고 있네!" 가 더 많은 것 같아 기쁘다.
나는 오래된 가게가 되고 싶었는데
정말 오래된 가게가 되었다.
행복하게 오래된.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던 오래된 단골 가게에서
커피 한잔과 작은 와플을 먹으며
작은 이야기를 나누던 작은 밤을 기억한다.
언젠가 보라요정님이 다음 가게를 열고
몇년의 시간을 더 채운다면 그때는 내가 놀릴 생각이다.
"오래된 가게의 요정이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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